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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Feb 12. 2021

브런치를 위한 공간

나만의 장소를 찾아서

타닥타닥. 열심히 타이핑 중이다. 브런치나 인스타, 페이스북에 올릴 글을 쓰는 건 아니고 명절이라 카톡으로 안부 인사차 그리고 그간의 소식을 올려보기 위해 노트북에서 앱을 실행하고 써 본다. 기본적인 통화, 문자, 검색부터 시작해 쇼핑과 결제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것을 휴대폰만으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노트북, 더 정확히는 자판이 없으면 뭔가 2% 부족하다.


브런치에 입문하기 전에 한참 인스타에서 글을 쓰던 적이 있었다. 휴대폰의 아기자기한 이모티콘은 내 생각과 말 보다 더 효과적이고도 재미있게 전달을 해 준다. 이모티콘만으로 도배된 댓글은 싫지만 글과 적절히 버무려진 건 감칠맛을 더해준다. 댓글 위주로 시작했다가 아예 본문에까지 넣으니 글을 화장해 주는 기분마저 든다. 사진을 넣고 글을 쓰면서 이야기 곳간으로서의 재미를 맛보았다. 눈물 흘리며 웃어대는 이모티콘을 쓰건, 당황해서 시퍼래진 얼굴을 넣건 간에, 수다방으로서의 인스타는 내겐 새로운 세상이었고, 다양한 분야에 있는 분들을 친구로 두며 새벽 늦게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늘 처음 만나는 분들과 시간을 보내는게 일인 '투어 가이드'라는 업의 영향이었을까. 형식은 인스타였지만 내용은 카톡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스스럼 없이 얘기를 붙이며 친해지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별 부담없이 두런두런 나누었다. 이동제한이든 코로나 격리든 대화로 이어가는 인생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의외의 복병은 손가락이었다. 평소처럼 댓글에 답글을 달려고 하는데 양 엄지가 덜덜 떨렸다. 이런게 수전증인건가? 떨림은 첫사랑한테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엄지를 구부리자 검지마저 지진계의 바늘 처럼 미세하게 떨렸다. 처음엔 '이 나이에 벌써부터 뭔 수전증이야' 하며 웃었는데, 조금 지나자 약간의 통증이 왔고, 나중에는 내 몸 하나 내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점에 화도 났다. - 불혹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작은 일에 분을 내는 나로선 수신제가 치국평천화니 성화니 성불이니 하는 얘기는 참으로 요원하다.


인스타에 올리던 본문은 그래도 노트북에 미리 써 놓고, 나중에 휴대폰에서 복사해 옮기면서, 다시 이런 저런 이모티콘을 달며 때로는 분량 때문에 다시 지우고 쓰느라 고생이기도 했지만 나름의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원래 목적이었던 사람들과의 실시간 수다를 더는 그전처럼 진행할 수가 없어지자 그 분들께 미안하기도 하고 못내 아쉬웠다. 


인생의 꽃을 피웠던 가이드 생활 당시, 가장 견디기 힘든건 버스 안에서 손님들이 다 주무시고 있어 분위기상 감히 깨우지 못한채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혼자서 묵묵히 가야 할 때였다. 하물며 말에서 글로 수다를 넘긴 소셜 미디어의 공간에서 댓글에 제약이 걸린다는 건 어디다 힘들다고 말도 못할 고문인 것이다. 홀아비 심정 과부가 알아주면 좋겠는데, 애를 셋이나 두고 불혹을 넘긴 아재가 주책맞게 다른 것도 아니고 수다 떨고 싶은데 손가락 아파 못해요 라니. 아휴. 이걸 고민이라고 해, 말어.


그러다 브런치에 노크를 했다. 고즈넉한 수묵화 풍이 피어오르는 이곳에 멋모르고 총천연색 이모티콘으로 댓글을 달아봤는데, 처리가 안 되었다. 아, 여긴 순도 100 글만을 위한 공간이구나. 멋적스러워 머리를 긁었다. 이내 이곳의 분위기에 적응이 되었다. 인스타에서처럼 글자수에 제약이 안 따르니 타이핑이 작두를 탔다. 다만 시간과 공간 제약에 따른 집중과 몰입의 한계가 문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전히 글쓰기에 적당한 시간과 장소를 찾으려고 집안에서 탐색 중이다.




현재 5 식구가 자리를 잡은 이곳은 월세 아파트이다. 원래 계획은 작년 시월에 일년 월세살이 끝내고 근사한 별장을 마련하는 것이었지만 코로나 덕에 모든 건 영겁의 시간으로 아듀를 고했다. 그래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벗어나 근교 알칼라 데 에나레스 라는 곳으로 오니 한결 숨통이 트이는 물가 덕에 생활 환경은 전보다 나아졌다. 시골이지만 대학의 도시라 학구적인 분위기도 나름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마을이라는 자부심도 뿜뿜한 덕에 외부적 환경에는 만족했다. 


다만 아이들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루 있다 보니 집 안에서는 늘 정신이 없다. 하나를 둔 가정도 얘기해 보면 비슷하다. 육아는 언제나 유한한 시간을 무한으로 느끼게 하는 시지푸스의 돌이다. 체력은 몸에만 있는게 아니라 마음에도 있다는 걸 육아는 아이들이 붙어 있는 내내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언제나 제일 갈구하는 건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사실 그런 갈망은 이렇게 글을 쓰며 아웃풋 활동을 하는 나보다, 강의나 오디오북 시청으로 자투리 시간을 알뜰히 쓰며 인풋에 투자하는 아내가 더 바라는 바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니 오롯한 시간과 공간의 확보다. 


내 경우 보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브런치를 위해, 아니 내 삶의 소통 수단인 글쓰기를 위해 아무 소리가 없는 곳을 찾는다. 처음엔 분위기 있게 까페처럼 재즈를 켜놓거나, 좋아하던 클래식을 틀어보았다. 결과는 꽝이었다. 아내가 강의 영상을 듣는 동안 나는 맞은편에서 타이핑을 쳐 보았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학창시절 별명 중 하나가 사오정일 정도로 잘 못 듣고, 잘못 알아들었던 내가 어른이 되어 돌고래라도 된 것인가. 이토록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그래서 찾은 해결책은 각방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아내가 식사 준비 차 부엌에 있을 땐 안방으로 간다. 밤에 애들을 재우고 안방에서 아내가 강의를 들을 때면, 부엌으로 살곰살곰 나와 어떤 음악도 켜 놓지 않는다. 오직 시계 초침의 짤깍 거리는 소리만이 타이핑의 경쾌한 리듬과 함께 공간을 채울 뿐이다.


그나마 이건 세 아이들 중 초등학교과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 중 누구에게도 숙제와 시험이 단 하나도 없을 때의 일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상 아이들이 다니는 스페인 학교에서는 숙제가 닷새 중 사흘은 있는 기분이고, 단원평가 시험은 열흘에 한번꼴로 번갈아 가며 찾아오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느낌이다.


그러니 언제나 제목에 걸어놓은 사진과 같은 건 정말 사진 속 맛집과도 같다. 그럴 때도 있지만 아닐 때가 더 많다는 걸 디폴트 값이라 생각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그나마 정신적으로 덜 피곤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작가의 서재 같은 분위기도 (x폼이지만) 잡아보고, 부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를 피해 다니는 이유는 무엇인가 곰곰 생각해 본다.


여행처럼 글 또한 다름 아닌 '사람'이 명제이고 이유였다. 무엇을 보든 인생과 결부지어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그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도 마다하는 것도, 다 사람이 생각나서였다. 그가 떠오르고 그 분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통한다는 무거운 표현보다 그냥 얘기를 나눈다는게 좋다. 글이 가교가 되어 당신과 나를 이어준다는 사실이 너무도 좋다. 브런치를 위한 공간은 결국 나를 위한 사색의 장이다. 그리고 당신과 만나고자 공원에 마련한 벤치이다. 쫓기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마주 앉아 함께 나눌 브런치를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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