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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Feb 15. 2021

아내는 이발사

14년 경력의 헤어 드레서

위잉. 바리깡 기계의 작동.

따르륵. 바리깡의 머리길이 맞추는 핸들 돌아가는 소리.

사각사각. 경쾌하게 빗질과 함께 움직이는 은빛 가위날의 움직임.


벌써 경력 14년차 이발사인 아내가 이발할 때면 언제나 욕실에서 울리는 소리다.

우리집 식구는 거의 무조건 한달에 한번은 이발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머리가 바로 더부룩 하게 자란다. 실은 나나 두 아들 다 본인들은 머리가 히피처럼 길어져 가든, 양털 마냥 덥수룩 해지든, 엑스맨 울버린 마냥 옆머리가 뻗쳐가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그걸 아내이자 엄마는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다.


아내가 처음부터 이발사를 자처하게 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환경이 그녀를 눈썰미 좋은 헤어 드레서로 변신 시켜주었다. 이야기를 하려면 14년 전 스페인에서 비행기 타고 두 시간 반 남짓 떨어진 슬로바키아 생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참고로, 스페인 마드리드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양국의 수도간 직행 노선은 여름 휴가철에만 라이언 에어에서 운행했으나 코로나가 그나마 있던 직항 마저 빼버렸다. 천벌 받을 코로나 같으니.




당시 슬로바키아에는 수도라 하더라도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대기업과 협력업체들이 대거 들어오며 5천여명까지 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한국인 미용실까지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당연히 머리는 현지 슬로바키아 미용실에서 잘라야 했다. 예약을 하고 가서 말을 해야 하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능청스러운 한량이 아니었다. 말은 잘 못해도 현지 언어에 관심 많은 사회초년생이었다.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도 컸다.


하여 남들처럼 잡지책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잘라달라고 부탁도 못하던 쑥맥이었다. 지금이라면 바로 몇 초만에 검색으로 바로 보여줄텐데. 오직 잘라달라는 strihat' 스뜨리핫뜨 단어와 조금이라는 말 trošku 뜨로슈꾸 만 어렵사리 외워 갔었다. 나머지는 오케이, 눈웃음, 그리고 바디랭귀지였다.


상아빛 나는 탈색된 머리에 코와 귀에 가벼운 메탈 피어싱하고 팔뚝에는 단색으로 장미를 그린 미용사 언냐와 분명 몇 번이고 뜨로슈꾸? 뜨로슈꾸! 라며 말과 오케이 싸인을 주고 받았다. 허나 눈을 떠 보니 그놈의 뜨로슈꾸는 잘려진 머리가 아니라 남겨진 머리였다.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의 슬로박 미용실 체험기는 그렇게 딱 두 번만의 시도로 막을 내렸다. 아, 뭘 어떻게 말 해도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두상이나 두꺼운 반곱슬모가 문제가 아니냐고. 네, 그래요, 그렇다고 할게요.


회사를 가니 동료들이 다들 웃었다. 군대 다시 가느냐고. 처음에 카투사로 갔더니 이번엔 해병대로 재입대 할거냐며 다들 깔깔댔다. 그 미용실 어디냐며, 거기만 피하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신은 공평했다. 다음 주가 되자 회사는 논산 훈련소가 되었다. 크하핫. 지금이야 당연 트렌드가 달라졌겠지만 그 당시에는 남자는 정말 머리들이 짧았다. 장발의 남자는 히피, 아니 대학생들이었고 대부분의 직장인은 단정하게 짧은 머리가 대부분이었다.


그 때였다. 미용실만 다녀오면 재입대를 준비하는 남편을 보며 본인이 구제해 줘야겠다 결심이 아내에게 든 것이다. 테스코 마트에 가서 당장에 바리깡을 샀다. 다행히 나는 금방 머리가 자라는 편이다. 안물안궁이겠으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생각하듯 그런 상상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유전자의 힘이었노라 당당히 밝힌다.




아내의 눈썰미와 손재주는 기대이상이었다. 처음인데도 나쁘지 않았다. 머리가 금방 자란다고 해도 하루 걸러 한번씩 깎는 것도 아니고, 한달에 한번일 뿐인데도 아내의 실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문제라면 딱 두 가지. 자른 뒤 머리카락 치우는게 의외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시간. 그래도 나는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아내는 무척이나 고민도 많고, 하고 나면 어깨며 허리가 늘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본인이 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딱히 이제는 남에게 내 머리를 못 맡기겠다.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는 밖에서 자를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잘라도 집에 오면 어딘가 마음에 안 드는 곳이 보인다. 그러면 아내는 솜씨 좋게 쓱쓱 감쪽같이 다듬어 준다.


그렇게 가위질과 바리깡을 든 지 십년이 넘었다. 바리깡 기계는 고장나서 한번 바꾸기도 했다. 아내의 머리손질은 나뿐만 아니라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아들 녀석에게도 간다. 머리를 자르고 나면 녀석들도 나처럼 만족해 한다. 한결 가벼워진 머리만큼 기분은 올라가고 다음날 아침에 젤 바르기를 기다린다.




어디선가 들은 얘기가 있다. 일 년 중 절반 이상을 외근과 출장으로 무척 바쁘게 사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이발은 꼭 집에서 아내의 손에 맡겨서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그렇게 해서라도 아내와 같이 있는 시간을 단 1분 1초라도 더 가지고 싶어서란다. 난 그렇게까지 바쁘지 않았지만 왠지 그 로맨틱한 사연이 마음에 들었다.


바리깡에 이어 아마 이발가위도 조만간 새로 사야 할 것이다. 빗도 이가 몇 개 빠졌으니 가위를 살 때 같이 셋트로 새로 구입하겠거니 싶다. 아내의 손길 속에 나는 오늘도 내 반쪽과 같이 하는 시간을 1분 1초 더 가져본다. 발렌타이 데이가 별 거 있던가.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자투리 시간이라도 보내면 되지. 머리야, 얼른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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