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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Feb 06. 2021

수세미

어쩌다 수세미를 쓰려고 보니 잘 안 보인다. 새 것을 꺼냈다. 가볍게 쓰고 햇볕에 말리려고 창밖에 내놓았는데 전에 쓰던 낡은게 있었다. 한참 전에 내놓고 잊었던 모양이다. 여기저기 뜯겨져 있다.


솥이나 팬 사용 후 바로 물에 불려 놓지 않고 놔두다 바닥에 눌어 붙고만 찌꺼기. 나중에 물을 부어 불린다 해도 제대로 떼어 내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대용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어떻게든 씻어내야 한다. 그러니 수세미에 세제를 양껏 풀고 손톱에 힘도 줘가며 박박 문댄다.


한창 쓸 때는 몰랐는데, 쨍한 햇빛에 내놓고 보니 낡은 수세미에서 동료애랄지 동질감이랄지 모를 무언가 애잔함이 밀려든다.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이렇게 한창 커가는 아이들 셋을 두어 행복하기도 하지만 문득 문득 진이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던게 생각나서였을까. 아니면 영상통화할 때마다 자꾸만 수척해져 가는 한국의 부모님이 떠올라서였을까.




부모의 마음, 자식일 때는 몰랐다. 안다 해도 그저 책으로 머리로 알 뿐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자식을 낳아 보니, 그 앎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겠구나. 나 또한 그리 되겠구나. 처음엔 뽀송뽀송 하면서도 거친 질감이 신선하다 느낄만치 온전했던 수세미. 허나 갈수록 신경쓸 거리는 많아지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일거리는 쌓여간다. 어디를 가든 치이고 빡빡한 삶. 지칠 법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긴 적도 없다. 때마다 맡겨진 일은 희생이란 값을 치루었다. 어느새 굵어진 손등의 힘줄, 휘어지는 어깨, 굽어가는 등, 빠져가는 얼굴의 살, 철부지 자식은 그제서야 부모를 본다. 


수세미가 쑤세미로 되기까지 거쳐갔을 모든 번잡스런 일들. 식기에 붙은 온갖 자잘한 것을 떨궈내는 동안 그 몸이 얼마나 찔리고 긁혔겠는가. 찬물 뜨거운 물 가리지 않고 몸사리지 않으며 뛰어든 덕에 그의 손길을 거쳐간 식기는 몇십 몇백 번을 써도 언제나 새 것처럼 깨끗해져 상차림에 올려졌으리라.




흔히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주인공처럼 부각받은 적이 없던 건 아니지만, 왠지 아직도 내 자리는 조연이자 서포터로 있는게 맞는 것 같다. 일부러 희생자나 의인 코스프레 하며 가식을 떨려는게 아니라 그냥 그게 편하고, 그렇게 해서 누군가를 도와줄 때가 만족스러워서이다. 물론 간간히 주인공 역할을 맡아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냥 있어도 혼잡스러운 서울을 벗어나 정 반대편인 스페인에, 그것도 한적한 중세풍의 마을에 나와 있어 그런 것일까. 가족을 제외하면 분명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같이 어울리는 것 또한 언제나 그리워 하는 걸 보면 헷갈린다. 아니, 이젠 그냥 그것도 내 모습이려니 한다. 해서 내 삶을 떠올리면 나 혼자 모든 걸 떠맡는 모노 드라마 라기 보다는 여럿이 나와  뒤섞여 가는 뮤지컬이나 오페라에 좀 더 가까울 거 같다. 말은 이렇게 쓰지만, 아직도 뮤지컬 공연이 내가 처한 현실인지, 내가 바라는 이상인지는 헷갈린다.


내 인생의 무대에 주인공이 나만이 아니라고 실망할 필요도 불평할 이유도 없다. 운명이니 숙명이니 하는 거창한 단어를 떠올릴 것도 없다. 그저 제일 편하고 만족스러운 길을 자연스레 따라갈 뿐이다.




부모님 덕에 잘 만들어졌고, 연이어 부모님의 보호 아래 돌봄도 잘 받았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지내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세상 밖으로 나와 '너만의 인생을 꽃피워 보라'며 야생의 무대 위로 내던져졌다. 내 생각대로 되는게 생각보다 별로 없는 쉽지 않은 삶. 조금이라도 내 의지와 계획대로 이뤄 보고자 애쓰던 몸부림. 


공장에서 순정품으로 잘 만들어져 창고에서 매장의 진열장에 옮겨지기까지 봉투 안에서만 있었을 수세미. 그러나 생각지 못하는 때에 누군가의 손에 갑자기 붙들려 사각통 개수대에서 벌이는 음식물들과의 전투. 온수를 머금고, 세제를 뱉어내고, 기름기를 닦아내고, 뜨거운 물에 씻기고, 고무장갑 안에서 비틀리고, 짜이고, 햇볕에 말려지는 싸이클. 재생도 회복도 없이 쓰이며 낡아져 가다 결국에는 버려지는 결말. 그렇다 해도 허투루 보낸 순간은 없었으니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수세미는 아직 뜯지 않은 비닐봉투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은 상태이지만, 그것이 그의 소임은 아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제일 안전하지만, 배의 역할은 항구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있던 곳에서 나가는 것. 나가서 세상을 마주하는 것.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있는 그대로 받아내는 것. 햇볕에 잘 말려져 다음 쓰일 때를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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