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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r 19. 2021

재회

스페인 거리 공연사의 출장 공연

-스페인 사람이지만 이 날 거리 공연 목소리는 여성분장하고 나온 장동민 씨임을 감안하고 들으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거기 지나가시는 분, 이리로 오세요, 네, 겁먹지 마시고 오셔요, 오시라니까요.

에헤, 그냥 가버리시네, 뭐 그리 바쁘시데..

안녕 얘야, 아저씨가 안녕하면, 너도 같이 안녕 해야지. 그렇지, 잘했어.


자, 다들 모여 보세요. 여기가 어디죠? 아, 네, 알칼라 데 에나레스요.

네, 전 이 도시를 좋아합니다. 작년에 정말 힘들었죠.

어디를 맘대로 돌아다닐 수가 있길 하나요.

그렇다고 돌아다닌다 한들 이렇게 모일 수가 있나.

정말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라 그런건지.

저는 사람을 만나야 사는데, 집에만 있으라 하니 어떻게 살 수가 있어야 말이죠.


저도 애가 있어요. 그런데 보세요.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나가야 일을 하는데, 나가서 사람을 보고, 만나고, 모아야 하는데,

집에다 꽁꽁 묶어놓지, 풀어놨길래 나가 봤더니, 풀어 놓기만 했지,

모으는 건 안 된다 하지, 아니 그럼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애가 아빠 일 안 하냐 그래요. 아니, 아빠는 하고 싶어. 하지만 어떡해. 할 수가 없어.


다들 마스크 했죠? 그래요, 마스크 쓰고, 이렇게 트인 광장에서 하는 건데 뭐가 문제일까요, 참.

어쨌건 오랜만에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좋네요. 여기가 어디라 했지요? 아, 맞다, 알칼라 데 에나레스.

그래요, 세르반테스의 고향, 맞아요. 정말 예쁜 동네지요. 거기 학생도 예쁘네.


자, 여기 좀 보세요. 저 이렇게 볼링핀 돌릴거에요. 어머낫, 너무 오랫만에 했더니 잘 안 되네.

다시 해 볼게요. 자 자, 이거 좀 보세요. 됐잖아요. 저 잘 하잖아요, 그쵸. 그럼 여러분은 뭐 해야되겠어요.

그치그치, 박수 치는거야. 아니, 이런 거 보면서 왜 박수를 안 쳐요. 얼른 쳐 봐요, 응? 뭐라고? 안 들리는데요.

다시 좀 쳐 봐요. 좀 더 크게. 응? 아직도 안 들려. 더 크게! 그래, 잘 했어요.


자, 전 이제 자전거도 타러 올라갈거에요. 그런데 이거 하려면 병사가 필요해요. 잘 생긴 사람으로.

맞아요, 아저씨, 아저씨가 병사 1이에요. 그리고 저기 저쪽 멋진 아저씨, 아저씨는 병사 2에요.

자, 두 병사, 이리 와서 나 좀 잡아봐요. 올려봐요. 아이고. 아니, 그렇게 하면 나 떨어지잖아.

엄마야. 아니 지금 어디다 손대는 거에욧. 내 애있는 아빠 라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자, 보세요. 병사 1, 아까 볼링핀 올려주고. 병사 2, 볼링핀 좀 흔들어 봐요.

어때요. 저 잘 하죠. 오랜만에 하는 거라 불안불안 하지만, 그래도 잘 하잖아요.

어마얏, 거기 조심해요. 아니, 내가 어떻게 피해. 거기가 피해야지.


자, 이제는 전기톱을 켜서 공중에 돌려볼거에요. 이 전기톱 가짜 아니냐고요? 소리 좀 들어볼래요?

이 전기톱은 소리만 나는게 아니라 물건도 잘라요. 잘 봐요, 이 콜라캔 잘리는 거.

내가 이걸 갖고 보여주겠다고. 이런 거 나오면 뭐해야 된다고 아까 그랬어요. 그치, 박수 박수, 크게 크게.


자, 이젠 두 개 갖고 돌려볼게요. 짜잔. 두 개로도 잘 돌려요. 그렇다면...

자, 이젠 세 개 갖고 해볼게요. 쉿. 자, 이제 돌아갑니다. 박자 맞춰서 박수 쳐줘요.

붕 부웅 붕 부웅. 보는 여러분이 더 무서웠죠? 그래도 했어요.


우린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모두가 힘들었어요.

오죽하면 마드리드 시내에서 30km 나 떨어진 여기로 왔겠어요.

(이 분 실은 수백 킬로 떨어진 곳도 가서 공연하시는데...)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이미 마드리드 시내에서 봤던 분들도 있을거에요.

에이, 똑같은 거 또 한다고 그러지 말아요. 나도 먹고 살아야지. 안 그래요.

그래도 재밌었잖아요. 그쵸?


그런데 있잖아요. 실은 제가 더 재미있었어요.

오랜만에 이렇게 나오니까 너무나 좋고.

나와서 여러분들 보니까 정말 너무 너무 좋은거 있죠.


여기 알칼라 데 에나레스 주민 여러분들, 정말 친절하고 좋은 분들이에요.

저를 이렇게 환대해 주고 박수도 쳐 주니까요.

제 이름이 궁금하다고요? 저는 여러분의 광대, 막시모 옵띠모였어요.

반가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다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알칼라 데 에나레스의 세르반테스 광장에서 펼쳐진 거리공연이 끝나기 무섭게

가족 단위로 나온 부모들은 아이들을 앞세워서, 또는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막시모 옵띠모 아저씨에게로 달려 나가다시피 우르르 몰려 모자에 동전과 돈을 넣었다.


얼마나 순식간에 달려가든지 보는 나는 깜짝 놀랬다.

울 아이들도 스페인 사람들이 그렇게 빠르게 움직인 건 처음 봤을 것이다.

거리공연가 조차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이리라곤 예상치 못했을 것이기에

핀 마이크를 통해 나오던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코로나로 다 마음이 닫히고 어두워졌을 것만 같은 이 시대에.

수많으 사람들이 수입도 변변찮고 막연하게 버티고만 있을 이 시국에.

그렇게나 따뜻한 마음으로 푼돈이지만 손에 꼭 쥐고 달려가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한 시간이 넘게 목청을 높이고 열정을 뿜어내며 끊임없이 재미난 말을 쏟아내 좌중을 웃기는 사이

그의 머리칼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헝클어져 있었다.




그렇게 수고를 아끼지 아니한 공연사에게 거리의 관객들은 그를 내 아버지, 내 삼촌, 내 아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으로 보았을 것이다. 기실 처음부터 나는 줄곧 그를 나로 여겼다.


우리는 같이 버스 안에서 웃고 울었다. 성당에서 우리는 같이 숨을 멈추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미술관에서 우리는 작품 속 신화 이야기에 폭소를 터뜨렸다가 전쟁화 앞에선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이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며 연결고리를 가졌다.


지금은 추억이지만, 그저 추억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 되건, 다시 열정을 담아 일을 하며 시간을 의미로 채울 것이다.

하여 다시 일하는 그 날, 본인의 일에 희열을 찾던 막시모 옵띠모, 다름 아닌 나의 모습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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