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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r 19. 2021

내 삶의 쉼표 하나

꼬르따도 한 잔

여느 때처럼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

오가는 길 중 볕이 잘 든 곳에 앉았다.

오늘은 평소 왔던 곳이 아니다.

하지만 주문은 익숙한 꼬르따도 한 잔을 말한다.


꼬르따도는 스페인 오는 분들이라면 금방 익숙해지고

한 두 번 마셔보기 시작하면

푹 빠지기 시작하는 흔하지만 좋은 커피다.


진한 원액에 살짝만 우유를 얹어 너무 쓰지도 너무 부드럽지도

않은 균형 속에, 양 마저도 잠깐 기분만 내어 보기에 좋은 정도다.

그래서 어디를 가건 커피 종류를 보지도 않고 항상

"운 꼬르따도, 뽀르 파보르 Un cortado, por favor

(one cortado, please)"라고 말한다.


골목이자 작은 광장처럼 사방으로 트인 이 곳은 봄빛이 가득하다.

하지만 바람은 수시로 추웠다 따뜻했다를 왔다갔다 한다.

그 바람에서 며칠간 갈피잡지 못하고 허둥지둥 대는 내 마음이 보인다.


뭔가에 집중하려 해도 자꾸만 뒤척거리고 주위를 맴는 마음.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도 진심을 알아줄거란 생각에 다가보지만

그러면 나댄다, 설친다, 들이댄다 라는 핀잔을 듣게 되고, 반면

적절한 거리다 싶으면 차갑다, 냉정하다, 이기적이다 라는

남들의 판단에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린다.


남들의 판단 때문이 아니다. 그건 그들의 것이고 실은

모든 것을 남탓으로 보려는 내 마음부터 직시해야 한다.


고마운 사람 보다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그라시안의 말을 되새겨 본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고마운 사람이자 필요한 사람의 페르소나를 쓴다.


혼자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꼬르따도가 나왔다.

일부러 만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커피 잔에 뚱그렇게 있는 쉼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혼자 동굴을 파고, 지하 몇 백 미터까지 갱도로 파들어 가던 피해의식에서 잠시 쉬란다, 쉼표.
숨의 출입도 의식하지 못한 채 머리로 온갖 공상을 하던 걸 멈추고 일단 숨을 내쉬어 보란다, 숨표.
잠시 눈을 감고 좋아하는 격언을 떠올려 본다, '자신을 깎아내리지 마세요-파울로 코엘료의 따옴표'


쉼표로 쉬고, 숨표로 숨을 고르고, 따옴표로 말을 따온다.

우유거품은 빙긋 미소 하나를 선사하고 입안 가득 기분 좋은 향을 남긴다.


생각을 멈추고, 근심의 숨을 내뱉고, 좋은 어구를 들여왔다.

내 마음의 쉼표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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