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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Mar 11. 2021

스페인 부동산 광고

por fin en casa 

-뽀르 핀 엔 까사, 드디어 집이다!


오래 전 마드리드 공항에서 마주한 스페인 부동산 업체의 광고 문구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마침이 있다. 아무리 쳇바퀴 돌리는 삶이라 해도 노트북 전원을 끄고 나면 그날의 일과는 마감한다. 경우에 따라선 휴대폰의 메신저 앱으로도 계속 이어진다지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개선될 것이라 믿는다. 


평소 있던 곳을 훌쩍 떠나 감성과 기분을 재충전 해 주는 여행이 즐거운 것도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귀환할 곳이 없다면 그건 결국 방황 에 지나지 않는다. 5성 호텔이라 해도 타인의 침대에서 뭐 그리 즐거울게 있겠는가.


스페인과 포르투갈, 거기에 모로코까지 오가는 문화·역사 가이드 일은 한 번 나가면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보름까지, 보통은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을 집 밖에서 사람과 계속 만나며 정신적으로 부단히 신경쓰며 보내야 한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회사원처럼 하루 일의 시작은 있지만, 끝은 어디인지 모르는 경우가 제법 생기는 육체적으로도 무척 고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매번 즐거운 여정일 수 있었던 건 일을 마치면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집에 가면 따뜻하게 반겨주는 가족이 있어서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올해로 한국을 벗어난지 햇수로 15년차가 된다. 이제는 굳이 고향이니 타향이니 하며 구분지을 필요도 없어졌다. 몸이 아닌 마음이 머무르면 그 곳이 고향이다. 이 곳이 내 라이프 스타일에 맞다 해도 문득 문득 떠올려지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매일 다듬어도 금방 다시 자라는 수염 같다. 하루에도 몇 번을 왔다갔다 하는 마음인데도 불구하고 잘 붙잡고 정착하게 만든 건 무엇 때문일까. 


사람과의 진심어린 만남이다


사람들은 보통 밥 한 번 먹자는 걸로 안부인사를 대신하는데, 입이 짧은 나로서는 자주 쓰지 않는 말이다. 나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집에 놀러오라는 말로 대신한다. 물론 나는 혼자가 아니기에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그렇게 말을 전한다는 건, 내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멋지게 소개해 주고 싶을 정도로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는 내 마음의 표현이다. 내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는 걸 '집에 오라'는 말로 마음과 생각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집에 와서 과일 한 접시에 차를 곁들이든, 비스킷이나 조각 케잌에 커피 한 잔을 마시든, 아님 소박한 차림이지만 정말 식사를 한 끼 맛나게 하고 가든, 때로는 아마추어의 피아노 연주도 한 두곡 들려주며 보내는 그 시간. 나에겐 행복한 추억의 앨범 한 장이 기록되는 순간이다. 내게 집이란 내 가족만의 지정학적 서식지를 넘는 개념이다. 한 사람을 '친구'로 마주하는 곳이고, 정이 싹트는 장소이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오픈하고 나눔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귀한 공간이다.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어려워졌다. 이미 가족만으로도 5명이나 되는터라 누굴 초대하가 심히 주위 눈치가 보인다. 금지된 것 일수록 더 간절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코로나 규제가 해제, 아니 완화만 되도 좋겠다. 집에서 만나서 편하게, 눈치 안 보고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싶다. 


사진 속 부동산의 한 줄 카피는 다시 보니 단순한 내 집 마련의 꿈이 아니었다. 그건 세상 가장 아늑한 곳에서 이루어질 진심어린 만남이었고, 내 마음 두는 곳을 고향으로 안내할 따뜻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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