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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pr 03. 2021

스페인 코로나 1년의 기록

돌아보니 재미와 감동이 가득했다

2020년

3월, 마지막 인센티브 팀과 기분 좋은 일정 마무리 후 꿀같은 휴식 시작.

(하지만 이렇게 길어질 줄은 그 때만 해도 상상도 못했다)

4월, 유튜브에 <스티브의 음악글 산책> 이란 이름으로 피아노 연주와 글 남기며 활동 시작.

(녹화의 어려움으로 일단 작년 가을을 기점으로 잠시 중단했고, 교육 컨텐츠로 이어갈 계획이다)

5월, 태어나 처음 머리 염색, 세계 한인 가이드 협회를 통해 세계 곳곳의 가이드 분들과 교류 시작.

(다시 만남이 시작되어 활력을 얻었다)

6월, 큰아들 초등학교 온라인 졸업식, 격리 해제로 알칼라 시내 탐방.

(아이도 나도 모두가 처음인 온라인 졸업식, 상황이 상황이지만 아들에게 미안했다)

7월, 일상의 즐거움을 재발견 하다 - 피크닉, 식사 초대, 라벤더 밭 방문, 둘째 자전거 구입 등.

(코로나라고 해서 우울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일상의 재발견을 통해 행복을 가까이에서 찾았다)

8월, 생각도 못한 여름 휴가를 보내다 - Torrevieja 바닷가. 그리고 Toledo와 Ajalvir 방문.

(힘든 시기임에도 주위엔 친절하고 좋은 분들이 정말 많음을 경험했다)

9월, 인스타 활동, 좋은 분들 많이 만나며 교류 시작, Guadalajara, El Escorial 방문.

(모르는 사람을 알게 되는 과정, 그리고 격의 없이 나누는 수다의 경험은 무척이나 신선하다)

10월, 알칼라 데 에나레스 까페 탐방 활동.

(대학촌이라 까페가 정말 많고, 친절한 사람들, 그들의 미소 덕에 기분이 좋다)

11월, 알칼라 데 에나레스 유적지 탐방.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곳, 가이드로서 자부심이 뿜뿜)

12월, 브런치 입문하며, 본격적인 글쓰기 시작.

(고수들의 글 속에 인생을 다시 보게 되고 좋은 분들의 만남이 이어지다)


2021년

1월, 폭설로 겨울다운 겨울을 즐겨봄, 성실한 스페인 한량으로 소설 미디어 활동 시작.

(성실한 한량 이란 별칭을 선사해 준 선생님 덕에 일상을 다르게 보게 되다)

2월, 시계 모델 인플루언서 마케팅 발탁, 영어-스페인어 언어 교환 공부 시작.

(생각도 못한 시계 모델 제안에 빵 터지고, 언어 공부를 이어가게 해 준 후배 덕에 활력을 얻었다)

3월, 공심재 따스한 문장에서 필사 시작.

(하루 한문장과 미션을 통해 정말 좋은 취미를 찾았고, 세상엔 이처럼 따뜻한 분들이 많구나 새삼 깨달았다)




코로나로 내 주위에서 움직이고 일하는 건 시간 뿐이라 여기던 지난 한 해, 기억에 대한 점검차 굵직한 일 위주로 적어 보았다. 적고 보니 의외로 이것저것 시작한 일이 많았다. 신기한 일이다.


제일 좋은 점은 사람 만나는 일이 끊이지 않았고, 덕분에 에너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알고 지내던 분들과는 식사 또는 커피를 통해 가족 단위로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속에 있던 얘기도 나누며 서로를 더 알아갔다. 새로 만나는 분들은 비대면이지만, 같은 관심사가 있기에 어떤 얘기가 나오든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오던 분들과 같은 분위기 속에 진심어린 말씀으로 서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았다.


일이 없어 가만히 있다 보면 주눅 들고, 끊임없는 비교 속에 비참해 지거나 교만에 빠질 것 같고, 답이 없는 쳇바퀴를 맴돌다 집안에서 화내는 목소리만 높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1년을 보냈을 줄이야.

가족 이외에 이미 알고 지내오던 분들께도, 새로 알게 되며 관계를 맺게 된 분들께도 감사하다.


앞으로 무엇으로, 어떻게 또 시간을 버티어 나갈지 아직은 모르겠다. 구상은 하고 있지만, 어떻게 끄집어 내야 할지 또 주저주저 한다. 그렇지만 방법 이전에 "왜" 라고 하는 이유에 끊임없는 질문과 해답을 상기하고 있기에 결국 실행으로 옮길 것임을 안다. 그것은 의무만으로 힘들게 점철된 삶의 무게만이 아니다. 이렇게나 힘든 시기를 지나가 보니 - 물론, 아직도 완료가 아닌 진행형이다 - 아무리 힘들다 해도 즐겁고 신나는 때가 있으며, 내가 행복한 때를 보내고 있다 하여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님을 체감한다.




홀로서기를 할 줄 알아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한다.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홀로서기를 했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홀로서기 한 것이 자신에게는 성취감으로 뿌듯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남에게 자랑거리는 아니다. 그렇게 홀로서기까지 주위에 도움을 받은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혼자 든든히 서게 되었다면, 주위를 돌아보면 좋겠다.


돈이 모든 일에 가장 중심에 서 있음은 안다. 그러니 실질적인 도움은 사실 돈을 주는 일일 것이다. 이 시국에 어떻게든 가족과 직원을 이끌고 애쓰시는 동료분들, 수없이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았지만 자꾸만 불합격의 통보로 힘을 잃은 후배들. 그들에게 이런저런 말의 위로도 좋지만,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실상에 미안한 마음이 자꾸만 든다.


오늘 생각도 못한 분에게서 직접적으로 돈을 받았다. 그 분은 2년 전 투어를 통해 만난 손님이셨다. 자주 인사드리지도 못했다. 그저 명절 때 한 두 차례 인사를 드린 것이 전부다. 한국에서 인솔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 가이드였던 내 이야기가 나왔다며, 뜬금없이 연락을 주시고선 돈을 보낼테니 기분 나빠하지 말라 하셨다. 그 분은 카톡 외에는 다른 소셜 미디어는 일절 쓰지도 않는 분이신데. 전후 맥락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얘기가 나와서 그러고 싶다는게 다라니. 메시지를 보는 눈은 벌개지고, 마음은 봇물이 터지고, 다리는 힘이 풀렸다.


불혹의 나이인데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휘엉청 흔들리는 내가 누굴 보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할 수 있겠는가. 주위를 돌아보기는 커녕 홀로서기도 못한 자인데. 누군가에게 쉼이 될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데, 아니 진즉에 되었어야 하는데, 아직도 길이 멀어 보인다. 어른 이전에 사람 인人이 되어 상호 간에 기댈 자로 자리매김해야 하는데. 달싹 거리는 입술만 탄다.


비가 와서 한층 더 맑아진 하늘 때문일까. 스페인의 밤하늘에 뜬 별들이 오늘따라 유독 더 반짝인다. 지난 1년간, 어려운 때에 도움 준 분들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겠다. 그리고 기회 닿는 때에 더 베푸는 자가 되라는 의미로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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