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와 수다 떨다가 시작한 영어, 스페인어 교환 강의 수업이 어느새 6주차를 넘겼다. 이전 글- 수다의 힘 읽기
후배도 나도 서로가 놀라워한다. 물론, 어느 정도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하긴 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돈도 안 되는 일에 서로가 진심으로 한 달을 훌쩍 쉽게 넘기며 (언제 넘어갔는지도 실은 서로 몰랐다) 두 달 차를 눈 앞에 두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석 달째를 맞이하면 둘이서 랜선 자축파티라도 열어야 할 것 같다.
스페인에서는 만사가 느리다. 예전에 슬로바키아에 살면서는 더 일상이 느리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바로 건너왔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오죽했으면 농담 삼아 나라 이름이 슬로우~바키아라 느릴 수밖에 없는 거라며 애써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를 달래려 했겠는가.
그나마 슬로바키아에서 보낸 6년이 있었기에 스페인의 느긋함 - 좋게 말해 느긋함이고, 까놓고 얘기하면 느려 터졌다 -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이젠 빨리빨리에 나도 모르게 지쳐서, 한국에 가면 되려 나는 왜 한국인인데도 저들을 못 따라가나 라는 자책마저 한다.
스페인만 느린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체험상으로 느낀 바이지만, 유럽 각 국가마다 특유의 느림에도 스타일이 존재한다. 심지어 나라와 민족은 다르지만 저들에겐 느림의 공통분모가 있다. 그들의 느림은 한국인인 내가 봤을 때 체감하는 것일 뿐, 저들에겐 '원래'부터 몸에 배어 있는 생활이자 양식이라서, 자기들의 일상이 느리다는 것 자체가 자각이 안 된다.
스페인의 느림으로 그냥 어이없어 나오는 피식 정도의 실소이고 눈감고 애교로 봐줄 정도다. 늦는 일에 대해 이미 서로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던 거라 놀랄 일이 별로 없다.
프랑스의 느림은 속을 뒤집는다 못해 진심 분노 게이지가 올라갈 정도이다. 뭐가 안 되거나 늦어지는 일에 대한 백가지 천가지 이유를 대는 저들을 보면, 브런치 작가가 될 소질을 다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할 정도다.
독일은 어떤가. 독일에서 느림은 거의 법이다. 달리 말하자면 빠름은 죄다. 그들에게 빨리 한다는 건 잘하는 게 아니라 대충한다는 걸 뜻한다. 모든 일에 한계치에 임박할 정도로 온갖 세부 사항을 설정하고 그걸 다시 몇 번이고 거듭 확인하고 예외 사항에 대해서도 절대 그냥 넘어가질 않는 저들에게 느림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밖에 영국도, 이태리도, 다 저마다의 느림에 대한 스타일이 다르다.
이렇게 느림에 대한 스타일은 다르지만, 빠름에 대한 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상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없다. 없을 것 같다가 아니라 없다. 아, 물론 이것 역시 주관적인 것이니 누군가는 '내가 볼 땐 아닌데? 그거 네가 잘못 본거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그 사람의 말도 맞다. 자기가 지금껏 살아오며 보고 경험한 대로 얘기하는 것일테니.
그러니 그건 그가 틀린 게 아닌 것처럼, 나도 틀린 게 아니다 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아니, 나라는 인간부터도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이 나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존재인데, 하물며 수 만 명의 인간이 모인 나라에서의 국민성 (national psyche)으로 단정짓는게 가능하겠는가. 그렇다고 하나하나 다 만나며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다시 스페인의 느림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면, 우리에겐 빨리빨리의 DNA 가 있듯 이들에겐 느릿느릿의 그것이 있다. 그렇지만 저들의 느림은 진행상 느릴 뿐 완료가 아니기에, 전통이 되어 지금도 내려와 일상에 존재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알칼라 데 에나레스를 가보면 이곳은 21세기가 아니다. 지금 뿐만 아니라 여기는 앞으로도 절대 동시대를 살지 못 할 거 같다.(그래서 덤으로, 느림보인 나는 안심이랄까) 삼사백 년은 기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내에 있는 건물 상당수는 15세기에서 17세기의 시간에 있다. 그래서 늘 어딘가를 보수하고 있다.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노력을 가해 가다듬고 고치고 손보는 중이다. 다시 말해, 꾸준함이다.
이런 환경 속에 살아가는 저들이 종종 의식처럼 뱉는 말이 있다 : sin prisa (pero) sin pausa 씬 쁘리사 (뻬로) 씬 빠우사. sin 은 없다는 뜻이다. prisa와 pausa 는 각각 빠름과 멈춤이다. (영어의 hurry와 pause에 해당) 즉, 서두름 없이 (그러나 또한) 멈춤 없이 란 뜻이다. 문자 그대로 저들은 만사를 서두르는 법이 없다.
회의를 할 때도 일일이 인사를 나눠야 하고, 식당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어린 손님까지 다 일일이 물어가며 주문을 받는다. 일의 진행도 느리고, 주문한 걸 가지고 오는 것도 느리다. 그렇지만, 그걸 하는 과정을 즐겁게 한다. 스트레스 받아가며, 구시렁 대며 하던 나와는 무척 대조적이다. 하지만 십 년 넘는 불편한 생활이 끼친 긍정적인 효과랄까. 시나브로 저들을 닮아가는 나를 본다.
흙탕물을 맑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자. 예전의 나라면 그냥 다 쏟아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을 것이다. 쏟다가 튀는 물에 짜증을 섞어가며 구시렁 댔을 것이다. 이제는 일단 기다린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맑은 물을 붓는다. 물론, 천천히다, 물이 덜 튀게끔. 그리고 한 번으로 끝날 턱이 없으니 몇 번이고 붓고 또 부을 것이다. 그 흙탕물에 관상어라도 있다면 아이가 놀라지 않게, 수질이 바뀌는 걸 최대한 덜 느끼고,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필명 성실한 한량도 사실상 느긋함을 기반으로 해야 가능했음을 본다. 내게 '성실한 한량'이라는, 모순 가득한 두 단어의 조합이, 이상하게도 들었을 때 그저 웃음이 빵 터질 뿐, 어색하지 않게 다가온 걸 보면, 그 별명을 선사해 준 선생님께선 이미 '나'라는 존재는 '눈치껏, 빨리빨리, 대충, 알아서' 이런 현대인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 않는걸 몇 마디 오고 간 것만으로도 감을 잡아내신 고수이심에 틀림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듯, 별명도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 여기에 글쓰기는 더더욱 급한 것과 거리를 두게 만든다. 오늘도 쫓기지 않고, 급하지 않게, 서두름 없이 글의 제목을 달았다. 꾸준히가 역시나 제일 힘들다. 그렇지만, 중단치 않고, 멈춤 없이, 본문의 글을 쓴다. 성실한 한량의 일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