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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pr 03. 2021

아들 피아노 렛슨하는 아빠

멀고 먼 수행의 길 1년 차

다리 꼬지마, 다 다리 꼬지마, 다리 꼬지마, 다~

손 내리지마, 손 손 내리지마, 손 내리지마, 손~


스페인에서 9살 초등학생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중입니다. 전에는 피아노 개인 렛슨 선생님이 있었는데, 이사 오면서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동네에 피아노 교습소가 있긴 하지만, 코로나로 운영을 안 합니다. 우리나라였으면 고민도 안 했을 일일겁니다. 아파트 단지마다 피아노 학원 하나씩 있지 않나요? 


집돌이 한량인 주부아빠가 아이 피아노 렛슨에 겁도 없이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만 해도 몰랐네요. 취미로 할 피아노를 렛슨 해 준다는게 필수 학습 과목인 영어, 수학 과외보다 심도 깊은 수행의 길이 된다는 것을요.


악보 보는 거 대신 소리만 듣고 외워 하려는 습관을 바로 잡는데만 반 년은 걸렸을거에요.

뻣뻣하게 내뻗는 손가락을 고무공 쥐듯 약간 구부려 쥐게 잡아주는 것도 역시 반 년 걸린 듯 싶고요. 

그 와중에 왜 다리는 자꾸만 꼬아 몸을 비트는지, 손은 또 왜 그리도 건반을 애정하여 달라 붙듯 일체화 하려고 하는건지, 고작 삼십분 남짓한 렛슨 시간에 손, 발, 손, 발, 무슨 논산 훈련소도 아니고, 최대한 끓어 오르려는 분을 자제해 가며 바로 잡습니다.

 

피아노 교제 진도 나가는 것 보다도 일단 자세 잡아주는 데에만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걸렸네요. 교정해 주면서도 신기했던 건, 어떻게 저런 상태로 피아노를 칠 수 있었던 걸까, 그야말로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였어요. 


아이에게 생기는 문제는 하나만 있지 않아요. 동시다발이죠. 기다란 풍선에서 한 부분을 잡으면 다른 부분이 불룩해 오듯, 이제 이거 하나 진정시켜 놓는가 싶으면, 다른 일이 아빠의 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합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요. 새로운 곡으로 진도를 나갈 때면 정말 성인이 되어 천상으로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악보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음악이론을 반복해 가르쳐 주는 건 이미 달관했어요. 그건 수십 번 얘기해 줘야 한다 해도 괜찮아요. 저도 이제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데요, 뭐.


문제는 아이의 태도입니다. 알려주고, 이해하고, 설명해 주고, 납득 시키고, 본인의 입으로 다시 말해서 알게 하고, 그래도 더 쉽게 해 주려고, 아이가 치기 전에 아빠가 미리 곡도 한 번 치며 훑어 줍니다 (참고로 현재 체르니 100번 배우는 중이에요). 빨리 칠 필요 하나도 없으니 천천히 해 보라고 하면, 그 때부터 아이는 한마디 치고 한숨, 두 마디 치고 찡그리고, 셋째 마디에 가며 짜증을 냅니다.




저는 단지 나이를 먹은 성인일 뿐 신자의 공경을 받는 성인이 아닙니다. 나이만 어른인 아빠는 폭발합니다. 급기야 "새 곡 배울 때마다 그렇게 짜증을 내는 너는 피아노 배울 자격이 없어! 늘 말했지. 잘 치고 못 치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태도라고. 가서 뭘 잘못한 건지 반성하고 와!" 하고 세게 나옵니다. 아이는 화장실 가서 훌쩍 울고, 엄마와 얘기하며 자기 감정을 추스리고 난 뒤, 아빠에게 찾아와 자신의 짜증내던 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 사이 아빠도 한숨을 내쉬고 후회하고 아이가 오면 안아 줍니다. 둘은 다시 렛슨에 들어가고, 아빠는 좀 더 순화된 톤으로, 아들은 덤덤하게 연습을 합니다.


보통 한 곡당 2주 정도 연습 기간을 가집니다. 한 마디 넘어갈 때마다 짜증을 일삼던 녀석은 날이 갈수록 조금씩 유연해 지고 익숙해 지는 운지와 암보가 되는 (많아야 반짝반짝 작은별 정도의 길이이니 암보랄 것도 없죠) 상황에서 곡을 즐기기 시작합니다. 손가락 테크닉을 위한 체르니인데 아이는 성취감을 맛보며 뿌듯해 하고, 나중엔 밥 먹을 때조차 그 멜로디를 흥얼거립니다. 그냥 두면 될텐데, 그걸 놓치지 않고 아빠는 구시렁 대며 사족을 답니다. "봐, 신나게 칠 거면서 왜 할 때마다 짜증을 내고 그래, 앞으론 그러지 마, 알았지~"


그렇게 일 년 남짓 아빠표 피아노 렛슨으로 아이의 취미이자 아빠의 일과 중 하나를 지금도 해 나갑니다. 아이든 아빠든 알고도 또 욱하는 마음에 성질 내고 심통 부리고 혼 내고, 다시 후회 하며 미안해 하며 거듭 다짐에 다짐합니다. 9살 난 아이도 알까요? 자유분방한 아빠가 자기와 함께 인생 수련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 부활절 방학인 오늘도 아빠는 아이와 변함없이 피아노 렛슨을 하며 삐뚤어지는 자세를 바로 잡고, 아이와 투닥거리고, 반복 재생의 음악이론, 그리고 고도의 인내 훈련을 가집니다. 아들의 피아노 렛슨이요? 제겐 피나는 수행의 시간입니다, 그것도 참으로 지지부진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 덕에 아빠도 오늘 수행 진도 한 마디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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