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Apr 16. 2021

일탈과 일상의 간극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Wenn es so ist, dass wir nur einen kleinen Teil von dem leben können, 

was in uns ist - was geschieht mit dem Rest?

-<Nachtzug Nach Lissabon> Pascal Mercier 





Q. 오늘 하루의 짧은 일탈

A. 사무실 직장인으로 지내다 어쩌다 한량의 순간을 맛본다면, 일탈이라고 한 번 불러 볼만한 일을 내지를 수 있겠지요. 헌데, 사실상 매일 한량 생활인데다, 심지어 남들의 눈에는 일탈과 같은 한량의 일상 마저 1년이 넘다 보니 이젠 일탈이라고 부르기 조차 민망한, 그야말로 일거수일투족이 소셜 미디어 상에서 이미 절반은 공개된 상태입니다.


제가 스페인에 나와 있다는 특수성이 배제된다면, 과연 다를게 뭐가 있을까 하는 자문도 해보고요. 먹는 거, 스페인에 살지만 외식을 제외하곤 집에선 처가가 전주인 아내 덕에 늘 한식입니다. 십 년 넘는 해외 생활 중에 고향 생각 따로 나지 않을 정도로 한식을 먹다니 복에 겹지요. 현지식 먹고 싶으면 집앞 식당만 가면 바로 해결됩니다.


일탈의 범주는 보통 일상을 벗어나는 것을 말하지요. 그렇게 본다면 저로서는 특이한게 아니지만, 스페인 현지인의 눈에선 잘 납득이 안 가는 행동을 보이는게 일탈일 수 있겠네요. 그렇게 보면 그 예는 끝이 없을 거 같습니다. 


이미 한국을 떠난지 십 오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한국인답게 입에서 '빨리빨리'가 튀어나오고, 하루 걸러 한 번씩은 얼큰한 음식을 찾고, 웃을 때는 꼭 박수를 치고, 식당에 앉자마자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올려 놓으려 하며, 나이든 분에게 인사할 때는 나도 모르는 사이 허리를 숙이게 되고, 뭔가 시작하면 꼭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고 마는 이 모든 것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은 비단 행동 뿐 아니라 생각도 포함됩니다.  


물론 어느 정도 현지화는 되었습니다. 원체 굼뜬데다 눈치 없음으로 살아온 인생이라 어느 정도의 불편은 있어도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요. 매운 거 먹을 땐 일단 맛나게 먹고 나중에 꼭 화장실에서 고생하느라 두 번 다시는 안 먹어 하기도 하고, 박수치며 웃다가 민망해서 얼른 손을 내리고, 저는 휴대폰 올려 놓아도, 아내가 올려 놓으면 얼른 가방에 넣으라 하는 등의 학습화된 행동양식을 보면, 저는 과연 어느 쪽인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지나고 나니 그들과 내가 다르다고 굳이 선을 그을 것이 있겠는가 하는 깨달음이 들었습니다. 좋은 것은 받아 들이고, 안 맞는다 싶은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고, 그렇지만 잘못된 것은 저에게도, 가족에게도 주의를 주며 남들 바담 풍 해도 우리는 바람 풍 하자며 분별할 줄 아는 정도의 지혜. 그렇게만 살아가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인이면서 스페인에 사는데 문제 없을 거라고 스스로 자부해 봅니다.




일탈을 하려면, 일단은 시작부터, 일상에 충실해야 되겠지요. 일상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는 일탈을 한다 해도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겁니다. 평일이라 해도 월요일은 그렇게나 버겁고 힘든데, 금요일만큼은 유독 아침부터 기다려집니다. 


왜 그럴까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찌되었건 간에 고단했던 한 주의 끝이 되는 날이니까요. 죽이 되도 밥이 되도, 어떤 것이 되든 괜찮아요. 실은, 죽을 쑤면 더 좋죠. 한 주 내내 업무 스트레스며 대인 관계로 고단하고 피곤에 쩔어 입맛까지 잃어 버린 본인에게 단단한 밥 보다는 부드러운 죽보다 더 좋은 건 없을테니까요.


밥을 지었으면 밥솥을 여는 순간부터 고슬고슬 찰기 넘치는 밥을 보며 오감 그윽히 만족을 받으면 좋겠어요. 

반면, 죽을 지었으면, 자르르 윤기 흐르는 죽을 보고 힘을 더 얻어야겠다며 자신을 안아주면 좋겠고요.

한량인 저는 죽도 밥도 지을 것 없는 삶이 되었네요. 허니, 글 올리는 밤 지나면 새벽에 맺혀 있을 이슬로 목을 축이고 사는 도인이 되어야.... 헛, 뻘소리를 했군요. 성실한 한량의 일상에서 나온 생각의 일탈이라 스스로 억지 위안을 삼지만 역시나 불편함이 남아요. 아내에게 내일 오랜만에 소화하기 좋은 닭야채죽 한 번 끓여 달라 부탁해 보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희생과 행복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