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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Apr 03. 2021

마드리드 카페 사냥꾼이 되다

코로나 덕에 알게 된 로컬 여행의 즐거움

수개월의 외출제한은 분명 생채기를 남겼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틈만 나면 나갈 궁리를 할리가 없다. 지난여름, 외출제한이 완전히 풀린 후 매일 시내에 갔다.


일단 스페인의 여름은 좀 특별하다. 웬만한 회사는 오후 3시면 퇴근한다. (더운 날씨 때문에 8시 출근해 중간 휴식 없이 7시간 연속 근무 후 3시 퇴근이다.) 바캉스 시즌인 8월 동안 시내 옥외 주차는 오후 3시부터 무료이다. 덕분에 3시만 되면 우리는 무조건 차를 끌고 시내로 나갔다. 코로나로 마드리드 밖은 나가기가 용이치 않으니 마드리드라도 원 없이 돌아다니자는 이유였다.


나는 마드리드를 참 좋아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마드리드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는 스페인의 수도이자 제일 큰 도시이기 때문이다. 즉, 이방인인 내가 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사실 없는 게 없다. 제 아무리 북부지방이 스페인 최고의 미식도시다, 미슐랭 레스토랑이 가장 많은 도시다 하여도 스페인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제일 맛있는 해산물은 마드리드에 있다."


그만큼 전국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 수도 마드리드로 온다. 30분만 차를 몰고 가면 트래킹 하기 좋은 산도 있다. 물도 좋은 편이라 수돗물의 석회질 함량도 낮다. 덕분에 그냥 수돗물을 마시는 시민이 대다수이다. 마드리드에서 유일하게 없는 게 '바다'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나는 지난여름 마드리드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기 시작했고 끝내는 카페 사냥꾼이 되었다. 시작은 이러했다.


누구나 카페 창업을 한 번쯤 꿈꾸어 봤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25살 때부터 그런 꿈을 꿨다. 한국에서 독일계 기업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때였다. 집이 카페 골목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을 가려면 많은 카페들을 지나가야 했다. 나는 재미없는 사무실로 이른 아침부터 끌려가는데 카페에서는 커피 향을 가득 풍기며 분주히 영업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늘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며 침묵이 미덕이었던 사무실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곤 했다. 얼마나 카페를 차리고 싶었냐면 카페에 틀어 놓을 플레이 리스트까지 생각해두었다. 카페를 차린 첫날 첫 음악으로는 무조건 검정치마의 'everything'을 틀 셈이었다.


잊고 있었던 카페 창업의 꿈은 지난해 시간이 많아지며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스페인 부동산 어플을 다운받아 습관처럼 매물을 보았다. 그러다 어느 날 꽤 괜찮은 매물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원하던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던 카페에 위치도 나쁘지 않았고 혼자 하기에 크기도 적당했으며 무엇보다 합리적인 월세와 권리금을 제시했다. 사실 권리금은 카페 내 인테리어 비용과 내가 원하던 '라 마르조코' 커피머신을 넘기는 가격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원한다면 거래처를 소개해줄 수도 있다고 하니 처음 창업을 하는 내게는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바로 시장 조사 차 그 카페를 찾아갔다.


곧 넘길 가게답게 사람은 없었다. 나는 라떼와 곁들일 디저트를 시키고 기대도 없이 카페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단 좀 더 작았지만 혼자 운영한다고 가정했을 때 나쁘진 않았다. 이윽고 커피가 나와 역시 큰 기대 없이 마셨는데 커피가 정말이지 너무 맛있었다. 스페인에서 마셔본 커피 중 제일 맛있는 커피로 손꼽을 정도였다. 계산을 할 때 주인장이 어떻게 이 카페를 오게 되었냐고 물었다. 나는 부동산 매물 보고 찾아왔다고 고백하려다가 그냥 스페셜티 커피를 좋아해 검색해보고 왔다고 둘러대고 나왔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저 카페를 인수하는 대신 마드리드의 스페셜티 커피숍을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 인수하려던 카페와 같은 원두를 공급받던 카페들이었다. 나중에는 다른 카페들도 가보면서 마드리드 스페셜티 커피숍 간 얽힌 관계들도 다소 이해하게 되었다.


와인을 배웠는데, 강사님이 그런 말을 했다. 한번 높아진 입맛은 안 낮아진다고. 차라리 덜 마시면 덜 마셨지 맛없는 와인은 못 마신다고. 커피도 그러했다. 한번 스페셜티 커피에 익숙해진 입맛은 일반 커피가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다행히 그동안 마드리드에는 꽤 많은 스페셜티 커피숍이 오픈해 있었고, 각각의 매력이 있어서 매주 돌아다니는 재미가 적지 않았다. 덕분에 여전히 주말마다 카페로 떠나는 여행을 하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매물로 나왔던 그 카페는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매물 광고를 내리고 여즉 잘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바리스타를 한 명 더 채용하기도 했다. 기쁜 일이다. 나는 여전히 카페 사장은 못 되었으며, 대신 유튜브의 잘 나가는 카페 사장 최준의 영상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웃는 중이다.


철이 없었죠. 커피가 좋다고 코로나 시대에 카페를 오픈하려고 했다는 자체가.



* 번외: 마드리드의 스페셜티 커피숍을 소개합니다!

 -  각각 마드리드의 다른 지구에 속해 있어서 커피를 마시고 주변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Perro de Pavlov (뻬로 데 빠블로프)

Costanilla de San Pedro, 5, 28005 Madrid

@Perro de Pavlov

 - 제가 인수하고 싶었던 바로 그 카페입니다.

 - 친절한 알렉스(바리스타)와 그의 파트너(SNS 홍보 담당)가 운영하고 있어요.

 - 플랫화이트가 아주 일품이고 직접 디저트를 만들진 않지만 대신 마드리드에서 제일 맛있는 베이크샵들에서 납품받기 때문에 의외로 제일 괜찮은 디저트 포트폴리오를 갖춘 카페입니다.


Acid bakehouse (아씨드 베이크하우스)

Calle de la Magdalena, 27, 28012 Madrid


@Acid Bakehouse

 - 북유럽 감성이 느껴지는 카페입니다

 - 바리스타들도 북유럽계 외국인들이 많아요. 덕분에 영어도 아주 잘 통한답니다.

 - 오는 고객들이 가장 글로벌해요. 여기만 있어도 유럽 여행하는 기분!

 

Hola coffee (올라 커피)

Calle del Dr. Fourquet, 33, 28012 Madrid

@Hola Coffee

 - 귀여운 로고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카페입니다.

 - 말랑거릴 정도로 촉촉한 초코쿠키가 아주 입맛에 맞았어요.

 - 직접 로스터리도 운영하고 있어서 제가 집으로 원두를 배달시켜 먹는 곳이기도 해요.

 

Proper sound (프로퍼 사운드)

C. de Raimundo Lulio, 16, 28010 Madrid

@Proper Sound

 - 마드리드 1세대 스페셜티 커피숍과 로스터리를 운영하는 toma cafe에서 오픈한 세 번째 지점입니다.

 - 스페셜티 커피와 더불어 내추럴 와인과 바이닐 음악을 다루는 카페예요.

 - 제가 하고 싶었던 콘셉트를 그대로 구현한 카페라 약간의 좌절감을 안겨준 카페이기도 합니다.


Hanso cafe (한소 카페)

Calle del Pez, 20, 28004 Madrid


 - 상해 출신 중국인이 오픈한 카페입니다.

 - 말차, 흑임자 등을 이용한 아시안 스타일 디저트가 많고 크레이프 케이크가 맛있어요.

 - 유독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미국인들이 많아서 자리 잡기는 좀 헬인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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