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루나 Mar 19. 2021

TV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그녀가 돌아왔다

스페인 방송인 베아트리스 몬따녜스

뉴스를 제외하고는 스페인 TV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아주 유명한 사람 말고는 아는 셀러브리티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을 확실히 기억이 났다.


베아트리스 몬따녜스(Beatriz Montañez), 몇 년 전까지 스페인 대표 토크쇼 중 하나인 엘 인떼르메디오의 한 코너를 맡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라만차 지역의 한 도시인 시우다드 레알 출신이지만 오묘하게 동양적으로 느껴지는 독특한 페이스 때문에 한 번 보면 각인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크게 웃고 다소 과장된 말을 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며 토크쇼를 떠났던 것까지는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로 굳이 궁금해 본 적은 없다.


실제로 그녀는 토크쇼를 그만둔 후 잠시 동안 여러 시도를 했던 듯 보인다. 영화배우로 출연도 하고, 심지어 다큐멘터리 영화 대본을 써서 스페인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 고야에서 각본상을 받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녀가 (나는 몰랐었지만) 돌연 사라졌다.


베아트리스 몬따녜스 (출처: listal.com)


그리고는 5년 만에 나타나 이틀 전 어느 라디오 팟캐스트와 인터뷰를 하였고 그게 현재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사라진 그녀가 지난 5년 간 홀로 살았던 곳은 산속 외 딴 오두막집이었다. 전기도 수도시설도 없던 집이라 전기는 태양광을 설치해 사용했고 물은 근처 우물을 이용했다고 한다. 한 달 생활비는 150유로, 약 20만 원이었다. 최대한 밖에 나가지 않기 위해서 25일에 한 번씩만 식료품을 사러 마을에 갔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담아 며칠 전 니아델라(Niadela)라는 책을 출간했다. 사실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소 실망했다.


 아 결국 책 팔러 나온 거구나. 방송일이 잘 안 풀리니까 저런 쇼를 통해서 화제 모으려는 거 아닌가?


이런 편협한 생각이었다. - 설사 실제 그렇다 한들 그게 뭐 나쁜 일이라고? - 그런데 고작 그를 위해 5년이나 산속에서 지냈다는 건 확실히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이었다. 그런 호기심으로 듣게 된 그녀의 인터뷰는 처음부터 당황스러웠다. 진행자가 인사를 건넨 후 책을 보았고 참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갑자기 눈물을 터뜨린 것이다. 정말로 긴장하고 감정이 복받쳐 운다는 것이 느껴지는 흐느낌이었다. 


늘 유쾌하게 웃고 있었던 그녀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프로 방송인답게 곧 진정을 한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이것도 낯설었다. 나는 그녀가 항상 오버스러운 톤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담담하고 진솔한 목소리였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녀가 떠났던 이유는 너무 많은 길 앞에서 오히려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치 새가 모이를 쪼듯 이것저것 조금씩 다 해보던 그녀는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다 소음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러다간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기분, 결국 그녀는 모든 걸 버리고 적막한 외로움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 늘 일을 해야 하셨던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란 그녀는 이른 나이에 독립해 직접 학비를 벌며 미국 유학도 가고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진짜 본인을 알지는 못했다고 했다. 어려서는 가족들에게, 이후에는 친구들에게, 또 그 이후에는 또 다른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자신을 맞춰가다가 어느 순간 거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그녀가 떠난 이유였다. 모든 소음에서 벗어나 홀로 자신과 마주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원래 목동이 살았던, 14년 간이나 버려졌던 산속 집에 산다는 건 사소하게는 매일 큰 야생 벌레를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진행자는 '나라면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고 했다. 게다가 그녀는 원래 화려한 방송일을 하던 사람이다. 지역 방송국부터 경력을 쌓아 미국 유학에서도 언론 분야로 석사까지 할 만큼 방송에 꿈이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정말 원한다면 할 수 있다고. 거의 대부분의 어려움과 장애물은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일이라고 하면서 니체의 말을 덧붙였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진행자는 그녀의 책 서문에 적힌 '행복이란 단순하기, 단순하기, 그리고 단순하기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래서 지금 더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 내내 그녀의 확고한 생각이 느껴졌기에 나는 당연히 그녀가 주저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할 줄 알았다. 그게 또 대중이 원하는 답이기도 할 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끝내 어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산속 집에서 겪었던 사고를 하나 들려줬다. 


홀로 톱질을 하던 어느 날 엄지손가락 반이 잘려 나갔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잘린 손가락을 붙인 채 응급실에 갔단다. 다행히 손가락 봉합 수술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고 의사는 그게 그녀가 손가락을 잘 붙여서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지금의 삶이 그렇다고 했다. 조금 남아있던, 잃어버렸던 자신을 다시 줍고 붙이는 과정이라고 했다. 


다소 생경한 기분으로 인터뷰 듣던 내 눈에 기어코 상투적인 눈물이 고였다. 책을 사서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인터뷰 캡처로 등장한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독특하고 오묘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시, 그 가혹한 아름다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