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루나 Apr 23. 2021

당신이 몰랐던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의 작가라는 것만 알았다고요?

오늘(4.23)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다. 우연히 같은 날 소천한 세계적인 대문호, 스페인의 세르반테스와 영국의 셰익스피어의 기일을 동기로 지정된 날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은 이 첫 전제부터 틀렸다. 둘 중 그 누구도 4월 23일에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르반테스는 4월 22일에, 셰익스피어는 5월 3일에 죽었다

우선 세르반테스는 4월 22일에 죽었고 그의 장례가 치러진 날짜가 4월 23일이었다. 셰익스피어는 당시 영국에서 사용하던 율리우스력 기준으로 4월 23일에 사망하였기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인 그레고리력 기준으로는 5월 3일에 죽은 셈이다. 결과적으로 4월 23일은 알려진 바와 달리 그 누구의 기일도 아니다.


세르반테스는 말을 더듬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돈키호테>의 저자이니 그의 언변도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그의 말더듬이 역사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걸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의 작품 <모범 소설>의 프롤로그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를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

내 주둥아리로 나를 높이 평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내 비록 말은 더듬을지언정, 진실을 말하기 위해선 주저치 않을 것이다.  (…será forzoso valerme por mi pico, que, aunque tartamudo, no lo seré para decir verdades.)


세르반테스는 외팔이가 아니었다

세르반테스가 레판토 해전에 참가해 팔을 잃었다며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지만 실은 그는 팔을 잃지 않았다. 물론 부상으로 팔이 거의 마비되는 바람에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고는 한다. 덕분에 필력이 오른팔에 온전히 쏠려(?) 이후 돈키호테를 완성시켰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의 묘비에는 오자가 있다

2015년 중반, 스페인은 400년 만에 그의 유해를 찾았다며 마드리드의 한 수도원에 세르반테스 기념 묘비를 조성했다. 이 묘비에는 그의 사후에 발표된 유작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여행>에서 밝힌 다음 구절이 새겨져 있다.

시간은 짧고, 번뇌는 늘어나며, 희망은 줄어든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과 함께 삶에 대한 의지로 살아간다. (El tiempo es breve, las ansias crecen, las esperanzas menguan y, con todos esto, llevo la vida sobre el deseo que tengo de vivir.)


그는 4월 18일 병자성사를 받고, 19일 이 말을 남긴 뒤, 22일 사망하였다. 그러니 이 말은 그의 유언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참으로 멋진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묘비에 유작의 제목을 원제대로 '시히스문다(Sigismunda)' 로 쓰지 않고 '세히스문다(Segismunda)'로  잘못 표기하는 오점을 남겼다. 스페인 국립국어원 격인 레알아카데미아에서는 이를 수정해줄 것을 즉각 요구했지만, '세르반테스가 살아 돌아올 때까지도 오자는 그대로일 것이다'라는 제목의 2019년도 기사가 검색되는 걸로 봐서 여전히 수정은 안된 듯하다.


그의 진짜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세르반테스의 여러 초상화가 있지만 실제로 그 모습이 세르반테스의 얼굴인지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거의 유일한 공식 기록 중 하나로는 동시대 활동했던 또 다른 스페인 작가 로페 데 베가가 밝힌, '책을 읽기 위해선 코안경을 꼈다' 정도 밖에는 없다.


18세기 그려진 그의 초상화(좌)와 20세기 초 그려진 그의 초상화(우)


한편, 대문호로 불리는 세르반테스마저 스스로 글쓰기 능력을 의심할 때가 있었다. 특히 시쓰기를 할 때 그랬다. 시를 쓰기 위해 꽤 노력한 것으로 보이지만 남아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 대신 말년에 쓴 <파르나소로의 여행>이라는 작품에는 이런 시구가 있다.


밤을 지새우고 시를 쓰며
짐짓 시인인 양 하지만
그건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은총일 뿐

Yo que siempre trabajo y me desvelo
por parecer que tengo de poeta
la gracia que no quiso darme el cielo


세르반테스조차 글쓰기를 고민했다니, 일상의 고민이 조금은 타당해지는 기분이 든다. 돈키호테 양반과 마주 앉아 겁없이 사는 법을 듣고 싶은, 오늘은 책의 날이다.




* 참고자료:

- 스페인 국립도서관 디지털 서비스

 - 코미야스재단 기사 

- 스페인 종합일간지 엘 빠이스 기사

- 스페인 국영통신 에페 기사 외

매거진의 이전글 마드리드 카페 사냥꾼이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