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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May 21. 2021

마드리드 신호등에는 두 사람이 있다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든, 마드리드는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최근 3~4년 안에 마드리드에 와본 사람이라면 마드리드 시내 신호등에서 이상한 점을 찾았을지 모른다. 바로 마드리드 어떤 보행자 신호등에는 한 칸에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보통 일반적인 신호등에는 한 사람만 있는데 비해 조금 낯선 모습이다. 어떤 건 남녀가 그려져 있고 어떤 건 남자 두 명이, 또 다른 건 여자 두 명이 있는 신호등이다. 이 신호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마드리드에 이 신호등이 등장한 건 2017년이 일이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비롯하여 모든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행사인 월드 프라이드 (World Pride) 축제의 중심 도시로 마드리드가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는 다양한 성적 취향을 존중하는 의미로 이성 커플을 비롯해 남자 커플, 여자 커플이 함께 있는 신호등을 제작해 도시 일부에 설치했다. 이 당시 마드리드 도시 곳곳에 걸린 축제 문구는 바로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든, 마드리드는 당신을 사랑합니다(Ames a quien ames, Madrid te quiere)'였다.


당신이 누구를 사랑하든, 마드리드는 당신을 사랑해요!



스페인은 유럽 내에서도 가톨릭 구교 전통이 가장 오래 지켜졌고 그로 인해 대규모 이교도 탄압까지 일어났던 나라이지만 한편으로는 전 세계에서 네덜란드와 벨기에 다음으로 세 번째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이기도하다. 물론 종교 세력과 보수당의 반대가 컸지만 2005년 이 법은 통과되었고 여전히 유효하다. 재밌는 사실은 이 당시 이 법을 가장 맹렬히 반대했던 보수당(PP) 내 남성의원 중 한 명이 이후 동성결혼을 하였고 이 결혼식에는 당시 보수당 총수이자 이후 스페인의 총리를 역임한 마리아노 라호이도 참석해 축하했다는 것이다. 문득 그때 그 정치인이 여즉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혹시 마드리드에서 성소수자가 많은 동네를 가보고 싶다면 추에까(Chueca)라는 동네로 가면 된다. 구시가지 가장 중심 도로인 그랑비아(Gran Via) 바로 옆에 있어 관광지와도 매우 가깝다. 원래는 낙후된 동네였으나 80년대부터 동성애자들이 모여들면서 현재는 마드리드에서 제일 몸값 비싼 상업 지구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이 동네를 가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올드하게 느껴진다. 그만큼 마드리드 어디에서나 성소수자를 보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동네만의 특징이라면, 지하철 역부터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로 꾸며져 있고, 남성과 여성의 성기 모양 빵이 아주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성기 모양의 빵을 먹어 치우는 것도 일종의 전통적 성의식에 대한 해방으로 봐야 할까? 아무튼 굳이 먹어보진 않았지만 냄새만큼은 델리만쥬급인 것은 확실하다.


지하철 추에까 역 내 모습, 곳곳이 무지개로 꾸며져 있다.


굳이 밝히자면 나는 이들을 지지하지도 배척하지도 않는다. 그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만약 내가 동양인으로 스페인에 사는 것에 대해 지지해주거나 배척한다고 하면 나는 배척하는 세력만큼이나 지지해주는 세력 또한 반갑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일상과 존재는 누군가의 찬반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이곳에서 나의 인종이 아닌 나라는 존재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성소수자들도 그들의 성적 취향이 아닌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곧 또 월드 프라이드 축제 날짜가 다가온다. 평소라면 그냥 원하는 모든 이들이 즐기는 축제로 도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파티장처럼 변하는데 올해는 여전히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다. 뭐 워낙 놀 핑계 하나는 좋아하는 이곳이니까 어떤 모습으로든 즐기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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