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루나 Jan 06. 2021

마드리드에 눈이 올까요?

세기의 눈을 기다리는 마음

마드리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많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날씨이다. 4계절 내내 살짝 건조한 날씨 덕에 땀이 잘 나지 않으며 머리 손질하기도 쉽다. 여름에 40도를 웃도긴 하지만 습하지 않아 견딜만하고 겨울은 0도 이하를 잘 찍지 않는다. 햇빛이 좋아 한 겨울에도 햇살만 쨍한 날이면 도톰한 옷을 입고 해가 잘 드는 잔디밭에 앉아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이불 커버를 빨아 말리면 여름에는 1시간이면 바삭하게 마르고, 겨울에도 반나절이면 너끈하다. 그런 마드리드에 눈이 온단다. 그것도 세기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눈이!


여기 사람들은 날씨에 엄청 집착한다. 뉴스만 봐도 각종 소식 후 간단히 날씨 정보를 곁들여 전하던 한국의 뉴스와는 달리 이곳은 날씨 뉴스가 전체 뉴스의 (체감상) 절반은 차지한다. 전국의 날씨와 해상의 날씨를 아주 세세하게 전하고 어떤 곳은 영상과 사진으로 또 전하고 날씨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하고 나서야 날씨 정보가 끝난다. 아니 그래 봤자 어제도 화창 오늘도 화창 내일도 화창인데 말이다.


날씨가 좋다 보니 야외생활도 좋아해서 추가금액을 내고서라도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야외테이블에 앉는 걸 선호한다. (야외 테이블의 경우 보통 10% 내외의 추가 금액이 청구된다.) 여름에 40도가 넘는데 에어컨 빵빵한 실내는 텅텅 비어있고 파라솔 하나와 가끔 차가운 물을 분무기처럼 뿌리는 기계가 전부인 야외테이블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앉아있다. 겨울에도 다르지 않다. 따뜻한 실내는 한산하고 추운 야외테이블에 앉아 얼음이 가득 들어간 칵테일이나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있다. 보기만 해도 어깨가 움츠러들고 위가 아파온다. 그나마 겨울에는 테이블마다 난방기구도 틀어놓고 바람이 들지 않도록 야외 테이블 주변으로 가림막을 만든 곳이 많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스페인 시민이 되었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날씨 뉴스를 무진장 보며 집착하기 시작했다. 모든 일정은 대체로 날씨를 기준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들려오는 설레는 뉴스, 마드리드에 눈이 온단다. 그것도 세기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눈이 말이다.


마드리드에 눈이 아주 안 오는 것은 아니지만 와도 흩날리는 눈이나 진눈깨비, 우박 같은 것이 내리기 때문에 근 10년 넘게 마드리드에 살면서 도시에 눈이 소복이 쌓였던 장면이 기억나지 않는다. 스페인에서 함박눈을 본 기억은 살라망카에 살던 십수 년 전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이 유일하다. 그때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과 함께 대성당 근처에서 눈을 맞고 깔깔거리며 눈싸움을 하고 사진도 왕창 찍었던 기억이 난다. 조명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던 성당과 새까맣던 밤과 소복한 하얀 눈이 어우러지던 겨울이었다.


내일이다. 마드리드에 그 소복한 눈이 온다는 날이. 벌써 도로에는 제설차들이 움직이고 거리에는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다. 어떤 신문에서는 세기의 눈이라 칭하고 어떤 곳에서는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녔을 때 폭설이 내려 다들 회사에 1~2시간씩 늦게 도착하고 계속되는 폭설 예보에 오전 근무 후 비상 퇴근했던 이후로 눈이란 번거로운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번 눈이 참 설렌다. 하얗게 덮인 마드리드를 보게 될 수 있을까 두근거린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는 기분은 어릴 적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대하는 마음일 것 같다. 일어나자마자 창문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때 마주치는 풍경이 아주 하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종차별 제가 당해봤는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