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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l 22. 2021

세르반테스도 피하지 못한 매절 계약

창작가가 부유해지는 세상을 꿈꾸다

카카오브런치에서 한국저작권위원회와 함께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무슨 공모전인가 읽어보다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댓글에서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작가들이 공모 요강 중 공모작을 '공유 저작물'로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에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좋은 취지의 공모전에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작가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다 보니 그 공분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공모 작품이 영리 목적으로 재가공되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만약에 작가의 창작물이 이번 공모전에 당선되어 상금을 타면, 그 작가는 소정의 상금 외에는 그 작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떠한 경제적 이득도 나눠갖지 못한다. 공모 요강에 따라 그 창작물은 '공유 저작물'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작자의 별도 동의 없이 창작물을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영리 목적으로 재가공할 수도 있다. 제 3자에 의해 재가공된 공모 작으로 향후 엄청난 경제적 이익이 발생해도 원작자가 추가로 받을 수 있는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그동안 비슷한 '매절 계약'으로 많은 창작자들이 고통받았다는 것도 덕분에 처음 알았다.


능력이 부족한 탓에 저작권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같은 요강을 보고도 그런 문제까지 세심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각성 뒤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이다.


세르반테스도 피하지 못했던 매절 계약

 

<돈키호테>는 별명이 많은 작품이다. 그중에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혹은 '유럽 최초의 베스트셀러'라는 수식어가 있다. 즉 굉장히 잘 팔리고 인기가 높았던 책이다. 그 인기는 작품의 출간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에 세르반테스는 현재로 치면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 급으로 돈을 벌었어야 했다.


허나 그렇지 못했다. <돈키호테> 세르반테스에게 작가로서 대중적 명성은 안겨 주었지만 큰돈을 주지는 않았다. 스페인 왕립도서관 관장을 역임한 마리아 루이사 로페스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돈키호테>로 발생한 대부분의 수익은 이 책을 계약한 출판사가 가져갔다. 세르반테스가 일정 금액만 받고 책의 출판과 판매권 일체를 출판사에 넘기는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저작권의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한 게 17세기 후반의 일인데 <돈키호테>는 1605년에 출판되었으니 세르반테스가 무지해서 발생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작품만큼이나 앞선 사고를 했던 인물이다. 당시에 이미 작가에게 불리한 거래를 하는 출판계의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돈키호테>에 이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책 판매 수익의 대부분을 출판사나 유통사가 가져가는 문제나 작가와 계약한 부수보다 더 많은 부수를 몰래 찍어서 파는 행태를 비판했다.


■ 일평생 투잡을 뛰며 글을 쓴 대문호


그렇다고 세르반테스가 찢어지게 가난하진 않았다. 환갑이 다해 얻은 유명 작가라는 타이틀과 불공정한 저작권 수입 덕분은 당연히 아니고 거의 일평생 했던 투잡 덕분이었다. 청년 시절 이탈리아로 가서 사제를 모시는 일을 하던 그는 해군에 입대해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 스페인에 돌아온 이후에는 해군 행정원과 세금징수원으로 근무하며 글을 썼다. 해전에서 왼팔에 큰 부상을 입었고,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해적을 만나 알제리에서 수년간 노예로 지냈고, 한번은 거래 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착실하게 모은 돈을 거의 날리는 수난도 겪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먹고는 살았다.


이렇게 투잡을 뛰던 세르반테스가 배 굶을 걱정 없이 '전업작가'로 산 건 <돈키호테 >를 쓰고도 8년이나 더 지난 1613년 <모범 소설집> 출간 이후이다. 그의 나이가 60대 중반을 넘긴 시점이다. 그리고 3년 후인 1616년, 거의 펜을 잡은 상태로 사망했다고 할 만큼 세르반테스는 마지막까지 글을 쓰다 죽었다.




얼마 전 스페인에서 독립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에게 스페인 출판계의 유통구조와 수익배분에 대해 물어봤는데 세르반테스가 4세기도 더 전에 자신의 소설에서 토로했던 불공정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아직 작가로서 자리 잡지 못한 신입작가들에 대한 수익 배분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물론 요즘은 꼭 기성 출판사를 통해서만 작가 데뷔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독립출판으로 수익배분을 좀 더 높게 가져갈 수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홍보와 유통에 대한 숙제가 남는다. 차라리 돈을 본다면 불공정한 계약을 하더라도 죽어라 기성 출판사에 투고해 책을 내는 게 나을만큼 출판보다 어려운 게 홍보와 유통이다.


혹자는 세르반테스가 위대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그의 인생에 있었던 여러 고난 덕이라고 한다.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그가 <돈키호테>의 수익을 공정하게 나눠 받고 경제적으로 보다 안정된 생활을 누렸더라면 말년에 더 많은 작품을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경제적 자유가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모든 창작자들이 유명세 이전에 창작물로 평가받고, 그 창작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 또한 보다 많이 배분받아 아주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란다. 그럴싸한 타이틀도 좋겠지만 창작자에게 가장 정직하고 필요한 보상은 바로 경제적 보상이다. 지금도 어딘가 존재할 세르반테스 같은 창작자가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느라 작품 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일이 없기를, 돈키호테 같은 이상을 품고 바란다.  




* 브런치카카오x저작권위원회의 공모전은 대신 목소리를 내주신 작가님들의 노력으로 공모 요강이 대폭 수정되었습니다(7/19). 많은 작가님들이 저작권 침해 걱정 없이 좋은 작품을 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도 좋은 영감이 떠올라 참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기술 발전으로 출판사와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출판하는 창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중에는 개인이 전자책을 직접 출판할 수 있는 아마존 다이렉트 퍼블리싱(Amazon Direct Publishing) 플랫폼이 있습니다. 얼마 전 브런치 작가님과 협업으로 스페인에서 전자책을 출판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이 이야기를 공유하려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 많이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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