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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l 01. 2021

요즘 '80년대생'의 사생활

동년배들 다 뭐하고 사나요

또래 정치인이 제1야당의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다소 예외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게 가능하다니, 세상이 내게 '빼박' 기성세대라고 선고를 내린 기분이다. 어차피 나이란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이라 뭐 할 때마 나이 운운하는 게 제일 읎어 보이는 일이라 생각 하지만 점점 나이를 상기하는 순간들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스페인에서 회사를 퇴사하고 한국에서 휴양차 지내는 동안 다양한 걸 배웠다. 와인자격증을 따고, 헬스, 필라테스, 골프까지 깨작깨작 건드려봤다. 저런 걸 배우면서 가장 놀랐던 나의 나이였다. 헬스와 필라테스, 골프 선생님들의 나이가 다 나보다 어렸던 것이다. 와인자격증 반에서 만난 그룹에서도 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했다. 헬스나 필라테스는 그렇다 쳐도 골프나 와인 같이 으른들이나 즐길 법한 곳에서도 내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다니! 심지어 3년 전이다! 하다못해 강남역만 가도 다들 너무 어려 보여서 화들짝 놀라곤 했다.


아니, 한국의 내 동년배들은 다 어디서 뭐 하는 걸까?



필드에 나가 보기도 전에 삐끗한 어깨관절로 1년 넘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이젠 어디서도 어리지 않다는 사실에 주눅 들었던 마음은 브런치에 와서야 편해졌다.


동년배들이 다 여기 모여서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플랫폼에서는 내가 다소 영한 축에 속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 영하다는 표현은 좀 올드한가? 올드한가라고 되묻는 것도 또 올드한 건가?


어쨌건 다들 제법 연차가 높은 직장인으로, 프로 주부나 엄마로, 때론 다음 발걸음을 옮기기 전 잠시 숨을 고르며, 열심히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뭐가 그리 할 말들이 많은지, 바쁜 하루의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쓴다. 아니지, 우린 참 할 말이 많은 나이지. 할 말은 많은데 말로 털어놓기가  점점 어려워 이렇게 글을 쓰는 거지. 직장인도 엄마도 아닌, 그렇다고 또 완전 주부도 아닌, 뭐든지 어정쩡한 나도 슬그머니 한 자리 잡고 앉아 타닥타닥 쓴다.




요즘은 부쩍 건강보조제에 관심이 많다. 원래도 그런 걸 좀 좋아하는 편이긴 했다. 괜히 브로콜리나 샐러리 먹을 때면 '이건 뭐에 좋나~'검색하며 뿌듯하게 먹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건강보조제를 챙겨 먹기 시작한 게 올해다. 이제 어느 정도 루틴까지 갖게 되었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글루타티온을 먹는다. (최근 루틴에 추가되었다.) 황산화에 좋다는 이 영양제는 무려 비욘세가 주사로도 맞는 성분이란다. 운동을 하고 아침을 먹고 나면 비오틴+콜라겐+히알루론산을 먹는다. 이건 작년에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급속히 나이 들어 보는 것 같아 식겁한 마음에 머리카락 빨리 자라라고 먹기 시작했다. 덕분인지 일 년 만에 다시 긴 머리로 돌아왔다. 먹다 보니 확실히 피부도 탱탱해지는 기분이라 가장 만족하는 영양제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밤에 잠들기 전에 유산균을 한 포 먹는다. 심지어 맛있어서 살짝 배고픈 밤에는 식욕을 달래주는 효과까지 있다.

 

작년 이맘때는 겨우 묶였던 머리가 이렇게 길었다. 심지어 한번 자른건데... 비오틴 만세!


가끔 술을 마신 다음 날에는 간이 해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영양제 섭취를 쉰다. 그냥 나 혼자 뇌피셜로 정한 규칙이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건강검진에서 심혈관 나이가 원래 나이보다 4~5살 정도 어린것으로 나왔다. 얼마 전 일하다 만난 한 분은 내 나이를 듣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 나이면 지긋해(??)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 좋은 말인가?




한국의 동년배들과 다른 점도 있다. 가장 다른 점이라면 스페인에 살고 스페인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한국에 사는 동년배들과 별반 다른 삶을 살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다는 말처럼 살다 보면 한국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패턴으로 흐른다. 가뜩이나 유럽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전기료가 또 인상된다는 뉴스에 한숨 쉬다가 한시적으로 전기료 부가세를 21%에서 10%로 낮추어 준다는 뉴스에 다소 안심하며 사는 식이다.


스페인 남편은 어때요, 스페인 시댁은 어때요, 라는 질문에도 비슷하다. 저런 질문을 하도 받아서 이제 나름 '최대한 빨리 차단하기' 스킬을 장착해 '한국 남편이랑 안 살아봐서 뭐가 다른지 몰라요!' 권법을 날리지만, 실은 정말 크게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튼 외국에서 사는 한국 80년대 생은 이렇게 산다.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산다. 동년배가 당대표 정치인이 되어도, 이제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배울 게 더 많아져도, 나는 나대로의 삶을 고만고만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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