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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l 29. 2021

인도 바라나시를 여행하던 날들

어딘가에 머물러 있던 기억

스페인의 여름은 태양과의 싸움이다.

태양을 피하려 낮동안은 온 집안의 블라인드를 거의 끝까지 내려두어야 한다. 그럼 집안이 늘 밤처럼 어둑하다. 종종 걸어가다 가구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밥 먹을 땐 접시가 잘 안 보여서 스탠드를 켜야 한다. 간혹 그마저 귀찮을 때는 그냥 핸드폰 불빛으로 음식이 어딨는지 대충 확인하며 집어 먹는다. 이러다 보니 요즘 낮동안은 항상 비몽사몽 한 상태다. 집안이 어둑하니 몸이 계속 밤으로 인식하는 건지 일어나도 찌뿌둥하고 기상 시간도 계속 늦어져서 몇 개월 만에 다시 올빼미가 되었다. 그런데 어제는 오랜만에 자정이 되기도 전에 졸음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이때를 놓칠 수 없다 싶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정말 빠르게 잠이 들었다.


아직 한밤중에 눈이 떠졌을 때의 느낌은 참 싸하다. 몇 시간 전 어둠 속에 눈을 떴을 때 공기가 너무나 한밤중의 그것이라 싸한 느낌이 등을 타고 흘렀다. 그와 별개로 머리는 마치 푹 잔 듯 개운한 느낌이 들어 혹시 한 새벽 5시쯤 되지 않았을까 하는 희망이 스쳤다. 그럼 일어나야지 하는 마음으로 본 시간은 새벽 1시 반이었다. 실망 속에 다시 잠을 청하려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커피가 이겼다.


커피를 내리고 뒷정리를 하려 싱크대의 물을 트는데 물이 따뜻하다. 어제 오후 내내 한 번도 싱크대를 쓴 적이 없으니 뜨거운 날씨에 잘 달궈진 수도관에선 흐르는 물일 것이다. 따뜻한 물을 틀어 나오는 따뜻한 물과 날씨 때문에 수도관이 덥혀져서 나오는 따뜻한 물은 손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있다. 후자는 뭔가 찝찝하다. 그 찝찝함을 느끼며 찬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옛날 기억이 스친다. 기억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분명 어딘가 남아 있었으니 이런 순간 떠오른 것일 텐데 왜 하필 지금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간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이 왜 오늘, 이 새벽에 떠올랐을까.

 

뜨거운 물이 소환한 기억은 바라나시였다.

그렇다. 인도 갠지스 강이 흐르는 성지 바라나시이다. 인도인들이 죽기 위해 여행하는 도시이다. 그들은 죽은 후 갠지스 강에 뿌려지길 희망한다. 바라나시에 간 건 21살이었다.


그때는 여행 거의 막바지였다.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여행을 했다. 첫 도착지였던 델리 공항에서 훅 느껴지던 후텁지근한 공기에 놀라 그간은 북인도, 네팔 등 비교적 시원한 곳만 찾아 돌아다녔다. 여행 초반부터 계획이라고는 세우지 않고 '인도 100배 즐기기' 여행책을 뒤적이며 어디를 가볼까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결정해 돌아다녔다. 뭄바이와 바라나시 중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바라나시로 갔다. 아마 인도의 심장 같은, 가장 인도다운 도시라 생각해 결정했던 것 같다. 여행책에서 몇 개의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확인한 뒤 미로 같은 골목을 돌아다니다 처음 본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그간 서늘한 도시만 찾아 돌아다녔기 때문에 나는 방 컨디션을 물어보며 습관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따뜻한 물은 잘 나오나요?


내 질문에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따뜻한 물로 씻고 싶은 거냐고 되물었다. 당시 바라나시 날씨는 35도를 훌쩍 넘기고 있었고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오느라 내 이마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그렇게 올라간 1인실 룸은 큰 창문이 있었고 창문 맞은편 싱글 침대와 그 오른편에 샤워실이 있었다. 우선 씻어야겠다 생각이 들어 샤워를 하다 아까 내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샤워기의 물은 아무리 틀어도 시원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내내 달궈진 수도관 혹은 물탱크 때문인지 물의 온도는 매우 따뜻했다. 따뜻한 물을 틀어서 나온 따뜻한 물이 아니라 날씨로 인해 달궈진 따뜻한 물이었기 때문에 씻는 내내 괜히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말하지만 긴 배낭여행의 막바지였기 때문에 더 이상 무언가를 보는 것에 대한 큰 열의가 없었다. 바라나시가 워낙 미로 도시라 길치인 내가 막 돌아다니면 안 될 것 같아 게스트하우스, 한식당, 카페, 갠지스 강변 딱 이 네 군데 안에서만 움직였다. 밥은 내내 같은 한식당에서 먹었고 늘 같은 카페를 갔으며 늘 같은 강변에 앉아 있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마저도 아주 잠깐이었을 뿐 거의 대부분은 방에 머물며 한식당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라는 책이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책 속에 한 문장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일어서서 걸으라.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그때 난 넘어지지도 않았고 삼십 세도 아니었는데 저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어 읽고 어딘가에 적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중견 남자 배우 한분이 묵고 있었다. 그도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처지로 복도식으로 되어있던 게스트하우스의 같은 층에 있었다. 그 역시 거의 대부분 시간을 게스트하우스 안에 있었기 때문에 오다가다 자주 마주쳤고 나중에는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그가 쏜 맥주도 한잔 했다.


이미 열 번도 넘게 인도에 왔었다는 그는 당시 무려 휴대용 스피커를 가지고 있었다. 그 스피커를 이용해 노래를 틀어 놓으면 그 소리가 내 방까지 들렸는데 거의 김광석의 곡들이었다. 그 노래들을 듣는 게 무척 좋아서 어느 날 고맙다고 인사를 했더니 일부러 나갈 때도 스피커를 틀어놓고 나가는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혼자 방안에 처박혀서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삼십 세> 같은 책을 읽었던 것이다.

- 대체 왜? 삼십 세도 아닌데 저런 짓을 하고 있었는지!


그즈음에는 교류에 대한 흥미도 떨어진 터라 사람들과 말하는 것도 귀찮아서 한식당에 가서도 다른 여행자들과 등진 채 혼자 밥을 먹고 전날 빌렸던 책을 반납한 뒤 또 다른 책을 한 아름 빌려가곤 했다. 그런 내가 특이하다고 한두 마디 한 사람도 있었고 이상하게 그런 점에 관심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바라나시의 기억은 주로 그 작은 싱글룸에 머물며 뭔가를 읽고 창 밖을 바라봤던 기억이다.


창 밖에서 주로 보이던 풍경은 시신 운구 풍경이었다. 내가 묵었던 게스트하우스가 갠지스 강의 가장 큰 화장터 바로 옆에 있었는데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시신이 지나가는 풍경을 보았다. 알 수 없는 힌디어가 적힌 천에 쌓인 시신은 화려한 장식을 달고 지나갔다. 그 운구 행렬에서 항상 부르던 타령 같은 게 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그걸 듣다 보니 나중에는 그 리듬과 소리를 다 외울 지경이었다. 가끔 열어둔 창문으로 먼지라고 하기에는 큰 것들이 너울너울 바람결에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그게 시신을 태운 재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럴 때면 황급히 창문을 닫곤 했다.


바라나시에서 유일하게 하고 싶었던 건 갠지스 강변에 앉아서 가져간 아이리버 mp3로 음악을 들으며 흘러가는 강물을 하염없이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을 위해 지오디의 <헤어짐보다 더 아픈 그리움> 같은 노래를 담아 갔었는데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어폰을 끼고 mp3를 들으려 강변에 앉는 순간 30명은 족히 되는 동네 아이들에게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괜히 나랑 같은 데를 바라보고 내 관심을 끌려고 빤히 쳐다보며 웃기도 하다가 끝내는 내 한쪽 귀에서 이어폰을 빼내어 자기 귀에 갖다 대었다. 아무튼 그 강변에 혼자 앉아 있기란 불가능했다. 누군가는 계속 옆으로 왔다. 그럼 난 또 내 방으로 돌아가야만 했고.


바라나시에서 눈병을 얻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그게 분명 비위생적인 수돗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라나시에 일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이틀째부터 눈 한쪽이 빨갛게 붓기 시작했다. 바라나시를 끝으로 델리로 돌아가서 2~3일을 더 보낸 후 출국했는데 델리로 돌아가는 무렵에는 눈이 떠지지도 않을 정도로 부었다. 두 도시의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은 나를 볼 때마다 병원에 데려다준다는 호의를 보이기도 했는데 과한 호의에 대한 의심과 인도 병원에 대한 불신으로 병원을 가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내 눈을 무서워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계속 노출되어 있으면 염증이 더 심해질 것 같아서 안대라도 하나 사서 끼고 다니고 싶었는데 구하지 못했다.




아까 내린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 잠시 쓰려고 한 글이 길었다.

이제 정말 동이 트고 있다. 바라나시를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푸르스름한 새벽 색깔이 그 게스트하우스 창문에서 바라봤던 모습인 것만 같다. 매일이 비몽사몽 한 와중에도 정신 차리고 살기 위한 최후 방어선인 매일 운동하기는 지키고 있다. 이제 기억 쓰기를 멈추고 운동을 해야겠다.


2021.7.29 아침 6시 58분 마드리드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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