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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Aug 06. 2021

시를 읽는 시대가 다시 올까요

내가 사랑한 시들

얼마 전 프랑스 출판 동향을 보다가 다소 의외의 이야기를 읽었다.

프랑스에서 시집 판매량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나만 해도 시집을 사지 않은지 꽤 되었고 주변에 시를 이야기하는 이도 없으니 놀라울 게 없다 싶다가도 '그래도 프랑스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프랑스인데'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은 아마 내게 시와 프랑스가 모두 낭만의 유의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처음 창작했던 글들은 시였다.

중학생 때 시를 적던 습작 노트가 있었다. 이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 노트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쓸만한 시는 없었겠지만 중학생의 나를 만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중학생의 내게 듣고 싶은 말도 해주고 싶은 말도 많은데 너무 버리고만 살았나 보다.


비록 의무교육 과정에서 시험을 위해 배우던 것이었지만 교과서에 실린 시들도 참 좋았다.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심훈의 <그날이 오면>, 나희덕 <귀뚜라미> 같은 시들이 특히 그랬다. 이중 나희덕 시인의 시는 거의 외울 정도로 좋아했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이다.


가장 처음 샀던 책도 시집이었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라는 시가 실린 시집이었다.

어린 내가 읽기에도 그 따뜻함과 아름다움이 좋았다.


몇년 전 스페인에 놀러 온 후배에게는 백석의 <사슴> 초판 에디션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었다. 언젠가 젊은 백석의 흑백 초상을 보며 그 시절 그가 지었을 <흰 바람벽에 있어>를 몇 번이고 읽다 북한에서 찍힌 시인의 장년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날 밤은 가눌 길 없는 마음이 울적해 혼자 조금 울었다.


시는 이런 가눌 길 없는 마음을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언어로 들려준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잘못된 게 없는데 모든 게 다 잘못된 것만 같아 잠 못 이루던 밤 오규원의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시가 서늘한 물줄기로 내 머리에 흘렀던 적도 있다.




아주 예전에 서로 시를 교환하던 이가 있었다. 열다섯 무렵이었다. 어쩌면 중학교 때 습작 노트도 그를 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우리가 썼던 시는 이제 기억나지도 찾아볼 수도 없게 되었지만 서로 시를 주고받았던 날들은 여전히 생생한 감정으로 살아 있다.


유튜브에서 쇼츠(Shorts)가 인기이다. 아예 짧은 동영상을 콘텐츠로 내세운 틱톡은 말한 것도 없다. 이런 짧은 콘텐츠의 인기를 보며 문득 시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다. 그런 기대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 무화과가 익는 계절, 그 과일만큼이나 좋아하는 시를 나눠본다.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 황인찬 <무화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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