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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Aug 20. 2021

어차피 써도 써도 어려운 게 글이라

어쨌든 쓰고, 그래도 쓰고, 결국엔 쓴다

그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다.

아니 쓴 건 아니어서 서랍 속에는 적다만 글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런 변명은 조금 우습다만, 너무 더웠다.


실제가 43도 정도였으니 체감은 거의 50도에 달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샌들을 신고 조금만 양지로 가면 발등을 쪼는 햇빛에 화들짝 놀라 그늘을 찾아 걸어야 했다. 이러려고 돈 벌었다며 집에서야 에어컨을 켜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글을 쓰는 방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럼 노트북을 들고 에어컨이 있는 방으로 가면 되지 않냐 싶지만, 다 접어두고 그렇게 쓸만한 열정도 쓰고 싶은 글도 없었다는 게 가장 정직한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글도 제대로 못 써서 절절히 많은 시간을 노트북 앞에서 헤맸는데 취미로 쓰는 글까지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더워서 낮밤이 바뀌었다는 이상한 변명도 곁들어 본다.

초롱초롱 눈이 밝아 있던 밤, 열두 시만 되면 그렇게 진한 아이스 라떼 한잔이 먹고 싶었다.

이렇게 낮밤이 바뀌었는데 여기서 커피까지 마시면 진짜 오늘 밤에는 못 자는 거라고 몇 번이나 그 욕망을 억누르며, 한편으로는 '아니 이렇게 밤에 커피 한잔도 마음대로 못 마시는 게 사는 건가' 라며 도무지 자유가 없는 삶에 대한 원망을 속으로 쏟아냈다.


고작 밤에 커피 한잔을 마실까 말까가 고민인 삶이란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심지어 다음날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없는지라 마시고자 하면 못 마실 이유도 없었다.

허나 사람의 마음이란 현재의 평온보다는 미래의 불확실함에 더욱 괴로운 법이었다.

결국 그 어느 밤에도 커피를 못 마셨던 건 더 오랜 시간 떠올려야 할 밤의 상념이 두려웠던 까닭이다.

커피는 핑계일 뿐, 고작 커피 따위가 고민일 팔자도, 체질도 타고 나진 못했다.


그와 별개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해 보이고 얼굴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산다. 실제로 마음이 편한 건지 이제 얼굴이 마음과 달리 알아서 포커페이스를 띄우는 건지 얼굴의 주인인 나조차 알 수가 없다. 한때 누구나 첫인사가 '피곤해 보인다'였을 만큼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달고 살았던 시절도 있었던지라 차라리 얼굴과 마음 둘 중에 하나라도 밝다면 어쨌든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써야 할 글은 몇 시간 전 마쳤다.

늘 데드라인까지 꾸역꾸역 미루은 채 고통받으며 쓰지만 평생을 결국에는 데드라인 내 끝낸 경험을 하며 산지라 쉽게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다. 늘 마감에 닥쳐서라도 해버리고 말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의무감을 하나 벗어나니 이제야 이런 글도 써진다. 이 글이 좋은지 안 좋은지랑은 별개로 써진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자 이런 글도 쓴다고 했지만 써도 써도 어차피 써야 할 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쓰고, 그래도 쓰고, 결국엔 쓰고 만다. 다음번에는 조금 덜 허덕이고자 조금만 더 부지런해볼까 반복적인 얕은 결심을 해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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