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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Nov 17. 2020

기대해도 좋아, 와인이라면!

와인이 채우는 건 잔뿐만이 아니다

삶의 기대감이 사라졌을 때 와인을 만났다. 모든 게 다 제자리에서 문제없이 흘러가고 있을 때 내 마음은 제일 엉망이었다. 평범한 삶이 채워주지 않는 갈증을 채워주는 건 와인이었다.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삶이 고달파지면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와인을 마시니 기분이 좋아서, 용기가 생겨서, 걱정이 사라져서 마셨다. 여기까지는 ‘술 ’이라는 마법의 음료가 갖는 일반적인 특징일 것이다. 여기에 와인을 몇 가지 장점이 더 있다.


와인의 가장 큰 장점은 혼자 마셔도 쓸쓸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주를 혼자 집에서 마시는 모습과 비교해서 상상해보면 쉽게 느낌이 온다. 물론 소주도 좋지만 소주 그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소주를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여러 사람들과 으쌰으쌰 마시는 폭탄주를 좋아하고, 친구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에잇, 잊자!’ 하며 털어 마시는 소주를 좋아한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어묵탕의 김을 사이에 두고 마주 놓은 잔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혼자 마시는 소주는 너무나 써서 도무지 마실 수가 없다. 그걸 혼자 마시겠다고 썰고 볶고 끓이는 안주를 준비하는 것도 귀찮고 그렇다고 새우깡 하나 갖다 놓고 마시자니 마시기도 전에 영 기분이 더 다운되는 느낌이다.  


와인은 이런 걱정이 전혀 없다. 그냥 가벼이 혼술을 즐기고 싶을 때 그저 와인 한 병, 잔 하나 그리고 좋아하는 음악, 숭덩숭덩 썬 치즈 몇 조각이면 혼자 즐겨도 어색하거나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이 맛에 빠지다 보면 이 시간을 즐기게 된다. 쉽지 않았던 하루 끝,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머리카락은 살짝 덜 말라 물기가 어려 있을 때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스탠드만 켜 놓은 조금은 어두운 방에서 잔에 따르는 와인은, 그 자체가 위로이다. 잔을 돌려 넘실거리는 와인을 바라보다 그 와인잔에 코를 박고 수수께끼를 맞추듯이 향을 찾아본다. 그 와인 잔 속에 숨겨진 세상은 때로는 빠알간 딸기밭도 되었다가 검붉게 익은 자두나무 숲이 되기도 하고 가을에 떨어진 축축한 낙엽 길이 되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하얀 배꽃 사이로 데려가 주고 어떤 때는 막 깎아 놓은 잔디에 뒹구는 기분이 들게도 한다.

 

잔을 마시면 머나먼 땅 -그곳이 프랑스든, 스페인이든, 캘리포니아이든, 칠레든-  어딘가의 햇살을 받으며 포도 껍질 속에서 자라났을 탄닌이 묵직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신 맛에 침이 고이기도 한다. 그 한잔에는 이국 포도밭의 땅과 비와 햇살과 그리고 그 포도송이를 수확했을 누군가의 손길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마실 수 있기에 혼자 마셔도 전혀 외롭지 않다. 내가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수고했듯이 이 한잔이 내기 오기까지 수고한 모든 자연과 사람의 따뜻한 기운이 이 한잔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 꺼진 방에서 나는 와인 잔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걱정도 고민도 없이 여행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와인이 좋은 점은 기대감을 주기 때문이다. 와인은 무한히 커져 나가는 우주와도 같다. 수십, 어쩌면 수백 종류의 품종마다 만들어 내는 와인의 맛이 다르다. 같은 품종이어도 어떤 해에 수확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냐에 따라 또 맛이 다르고, 와이너리마다 맛이 다르다. 또 어떤 포도들끼리 블렌딩을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그 블렌딩의 비율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런가 하면 있던 품종이 사라지기도 하고 없었던 품종이 우연히 생겨나기도 한다. 오래된 포도밭에서 잊혔던 품종이 되살아날 때도 있다. 언제 그 와인병을 따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하고 온도, 마시는 시간에 따라 또 미묘한 차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세상에 같은 와인은 없다. 이런 술이 또 있을까? 마실 때마다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술이 와인 말고 또 있단 말인가? 와인은 그런 면에서 사람과 같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지만 각자는 하나의 포도 품종처럼, 하나의 와인병처럼 다른 존재들이다. 누군가에게는 은은한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거칠 수도 있다.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는 한 가을에 만났으면 좋았을 사람을 채 꽃이 피지 못한 이른 봄에 만나 서로를 오해하고 보냈을지도 모른다. 시음 적기보다 이른 시기에 병을 따버려서 그 맛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와인처럼 말이다. 요란한 새 인연보다 오랜 인연이 더 편하듯이, 보채지 않고 잘 묵혀둔 와인이 새 와인보다 더 감동스럽기도 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감사함 속에 되려 삶의 기대감이 사라졌을 때 와인을 만났다. 모든 게 다 제자리에서 문제없이 흘러가고 있을 때 내 마음은 제일 엉망이었다. 나쁠 것도 그렇다고 딱히 좋을 것도 없는 어른의 삶이었다. 어딘가 이미 수천만 번은 있었을 듯한, 다 읽은 책 같은, 아니 너무 재미없어서 읽을 흥미조차 들지 않는 그런 평범한 삶이 채워주지 않는 갈증을 채워주는 건 와인이었다.


아직 못 마셔본 와인이 펼쳐줄 세상에 대한 기대, 미처 알지 못하는 어떤 와인이 한 와이너리의 오크통 속에서 숙성되고 있을거라는 기대, 올해 수확된 포도는 어떤 맛의 와인을 내어줄까 하는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이 와인을 어떤 삶의 순간에서 마주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들과 함께 와인이 왔다. 매일이 같아만 보이는 하루이지만 설렐 일들은 늘 있다는 기대로 산다. 그게 아주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다. 기대해도 좋을, 아직 마셔보지 못한 와인이 우주만큼 무한히 세상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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