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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Aug 11. 2021

한국 직항 편이 사라졌다는 것

스페인에 사는 내게 한국 직항 편이 갖는 의미는 남들의 상상 이상이다. 그건 단순히 좀 더 편하게 한국에 갈 수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기면 24시간 안에 한국에 갈 수 있다.


요컨대 이런 의미였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한국으로 곧장 가는 비행기가 있다는 건 심리적으로 상당한 위안이 되었다. 물리적 거리는 엄청날지라도 심리적으로는 남쪽 어느메쯤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으로 살았다. 어차피 한국에 살아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그런 거리쯤은 가볍게 무시한 채, 그저 조금 먼 도시에 사는 누군가처럼 매일은 아니어도 필요할 땐 언제든지 금방 갈 수 있다고 애써 생각해왔다.


그렇게 믿는 구석이자 안도감을 주는 무엇이었던 그 직항 편은 지난해 3월 사라졌다.


몇 달간 잠정 중단이었던 노선은 지금은 완전 폐쇄되었다. 항공법상 취항을 하지 않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우선 노선을 폐쇄한 뒤 다시 노선 재개를 해야 하는 것에 따랐다고는 들었지만 '폐쇄'라는 단어가 주는 상실감은 매우 컸다. 마치 눈앞에 보이던 다리가 갑자기 끊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이제 강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선 먼 곳으로 돌아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누군가의 임시 뗏목을 기다려야 하는 그런 기분이다. 게다가 가는 길뿐만 아니라 가는 방법도 복잡해졌다. 여러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가서도 이런저런 제한을 받게 된다. 그러니 어쨌든 24시간 안에 한국에 가서 누구라도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이제 무슨 일이 생겨도 바로 한국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력감으로 뒤바뀌었다.




3년 전, 한국에서 몇 달 간의 긴 휴가를 보낸 뒤 마드리드로 돌아오던 날을 기억한다.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상공을 날던 12시간 동안 잠시 잠을 잤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울었다. 바로 옆에는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가는 부부가 타고 있었는데 결혼식 사진을 돌려보며 내내 까르르 웃던 그들의 설렘과 나의 슬픔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 더 서글펐다. 그들은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잠시 여행을 가는 것이었지만 나는 익숙한 곳을 떠나 익숙해져 버린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무리 울어도 여전히 몽골 상공이고 러시아 상공이고 폴란드 상공이고 하는 긴 거리가 새삼 기가 막혀 울던 중간에는 헛헛 웃음도 났다. 그리고 비행기가 마침내 스페인 상공에 접어들었을 땐 더 이상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분이 들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스페인 공기가 색마저 익숙하고 반가워서 그랬다. 마드리드에 내리는 순간 즉각 인천이 그리워졌지만 한편으로는 도착한 곳이 편했다. 두 나라에 마음을 두고 산다는 건 이런 일이다.




오랜만에 밤에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듣게 된 지인의 소식에 풀이 죽는다. 나 역시 직항을 타던 시절이었다면 벌써 열두 번도 한국에 갈 이유와 핑계가 있었지 싶다. 친구 결혼식도 갔을 것이고 조카의 탄생도 봤을 것이다. 망개떡 먹고 싶다고 했던 가족을 보러 나도 엄마랑 갔겠지. 그러면서 한두 개는 내가 집어 먹었을 것이고 말이다. 지인의 가족도 쾌차하길 바란다. 다시 또  '언제든 한국에 갈 수 있어!' 라며 자신 있게 큰소리 뻥뻥 치고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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