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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Oct 01. 2021

<월간 샘터>에 글을 보내며

삼십 대 이상의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직한 글씨체로 '샘터'라고 적힌 잡지를 기억할 것이다. 어느 집에나 한 권쯤은 있었던 그 책, <월간 샘터>이다. 피천득, 법정, 이해인, 정채봉, 장영희 같은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숙여지는 작가들이 지나갔던 곳이기도 하다. 기억 속 샘터가 다시 내게 솟아난 건 얼마 전의 일이다.




한창 통역 일로 정신없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월간 샘터>의 한 기자님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원고 청탁 메일이었다. 잠을 조금밖에 못 자서 두 눈을 채 다 뜨지 못하고 한쪽 눈으로 읽은 채 바로 나가야 했던 탓에 답장은 밤이 되어서야 했다. 그렇게 <월간 샘터> 10월호 지구별 우체통 코너의 원고를 쓰게 되었다.


기자님께 4가지 주제를 생각해 보냈고 그중 2가지가 후보에 올랐으며 사진 고르기가 더 쉬울 것 같다는 기자님의 의견을 반영해 '막걸리를 닮은 스페인 와인'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사실 이 주제는 1년도 더 전에 써두고 서랍 속에 아껴두었던 주제이다.

스페인은 와인 천국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와인 주조용 포도밭을 가진 나라답게 어디서나 쉽게 와인을 접할 수 있다. 스페인에 사는 한인들 중에는 소주가 너무 비싸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저렴한 와인도 많다. 이렇게 많은 와인 중 유독 한국인의 눈길을 잡아끄는 와인이 있다. '혹시 먼 옛날 풍랑을 맞아 바다를 표류하던 우리 조상님이 스페인에 와서 막걸리를 그리워하다 이곳 포도로 담근 술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의심이 들 정도로 한국의 막걸리와 닮았다. 바로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전통 화이트와인 '비노 뚜르비오(vino turbio)'이다.


(이어지는 글은 <월간 샘터> 10월 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에 글을 쓰며 다시 찾은 샘터에는 여전히 청아한 글이 흐르고 있었지만 내가 몰랐던 아픔을 한차례 겪기도 했다. 2년 전 재정난으로 폐간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2019년 12월 호를 마지막으로 휴간을 고려한다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많은 애독자들이 정기후원을 자처했고 기업 후원도 이어졌다. 덕분에 지난해 창간 50돌 기념호를 무사히 발행하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대단한 작가들의 글을 실었던 잡지라는 것보다 이게 더 마음에 와닿았다. 많은 독자들이 애정으로 다시 살려낸 책에 작으나마 내 글이 실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대개 그런 소망은 글을 쓰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급하게 고른 사진도, 어찌어찌 완성한 글도 이래저래 마음에 썩 지는 않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한다는 생각을 위안 삼아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그리고 그 글은 활자가 되어 <월간 샘터>에 10월호에 실렸다.


친정집으로 보내진 <월간 샘터> 10월 호. 감사하게도 커피, 밀크티, 치약 등 정겨운 선물꾸러미를 함께 보내주셨다.


매일 기억나지는 않아도 언제고 기억할 때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월간 샘터>가 그런 잡지이다. 기억 속을 더듬다 보면 젊은 부모님과 어린 내가 있는 집 소파 옆에 언제나 무심코 놓여 있던 이 잡지가 보인다. 어른들 세상 사는 이야기가 재밌다며 인생도 모르던 주제에 뒤적뒤적 읽었던 책이다. 원고료 중 일부는 가족에게 1년 정기구독권을 선물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가족은 매월 책이 올 때마다 나의 마음을 느낄 것이고 정기구독자가 있는 한 <월간 샘터>는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더 좋은 작가들의 글을 독자에게 이어 줄 것이다.




덧.

글이라는 건 얼마나 선물 같은 것인지요.

제게는 참 힘들었던 9월이 지나갔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원망 속에서 가장 큰 위로를 존재는 그 무엇도 아닌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전해준  바로 <월간 샘터>입니다.

감사한 샘에 목을 축였으니 남은 한해도 잘 지내보리라 다짐합니다.


허나 사람이 얼마나 우스운지 힘들었다고 바로 위에 적어 놓고도 막상 10월 1일이라는 숫자를 보니 그럭저럭 잘 지낸 9월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듯 다 지나가면 모두 찰나인 순간이겠지요.

그냥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다들 무탈한 10월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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