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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Oct 26. 2021

스페인에 등장한 '울고 싶을 때 가는 가게'

혹시 당신도 우울한가요?

얼마 전 마드리드 시내를 걷다가 유난히 긴 줄이 늘어선 가게를 만났다. 골목 끝까지 이어진 줄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가게 간판을 살펴보니 생소한 단어 라 요레리아La llorería가 적혀 있었다. 스페인어에서 -ría는 어떤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이고 앞에 붙은 llore-는 '울다'라는 스페인어 동사 llorar에서 왔다. 울다+장소의 조합이라니, 그럼 뜻은 우는 곳이 되는 걸까? 우는 곳에서 무엇을 판다는 것일까? 유리벽에 가까이 붙어 가게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도무지 무엇을 파는 가게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괜찮지 않은 것도 괜찮아Estar mal también está bien" 라는 글자만 보일 뿐이다. 그냥 새로 생긴 재밌는 곳인가 보다 하고 돌아선 뒤 그 가게의 정체를 알게 된 건 그 뒤로 며칠이 더 지난 후였다.


68억원 투자를 따낸 온라인 심리상담 앱

우연히 신문을 읽다 알게 된 그 가게의 정체는 바로 한 심리상담 앱의 홍보성 팝업 스토어였다. 테라피챗(TherapyChat)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앱은 전문 심리상담가들의 온라인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다. 젊은 CEO가 이끄는 스타트업 회사에서 개발한 이 앱은 최근 여러 벤처 투자회사로부터 500만유로(약 68억원)의 투자를 받으며 위와 같은 오프라인 마케팅과 더불어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인근 유럽 국가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앱의 사용 원리는 간단하다. 앱을 다운 받고 원하는 플랜을 골라 결재하면 등록된 전문 심리상담가와 영상통화로 상담을 할 수 있다. 첫 1회 트라이얼 서비스는 무료이며 이후 회당 상담 가격은 마드리드 시간당 평균 가격 51유로(7만원) 보다 저렴한 34~44유로이다.

스페인 심리상담 앱 테라피챗의 팝업 스토어 (출처: Telemadrid)


스페인 사람들은 행복할까?

그런데 스페인에서 이런 심리상담 앱이 탄생하고 많은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만약 "스페인 사람들은 다 유쾌하고 잘 놀지 않나?" "우울하면 지중해에 가서 햇빛 좀 쐬면 될 거 같은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스페인 언론사 보스 뿌블리Voz Publi 기사에 의하면 불안, 우울, 집중력 장애로 고통을 받는 스페인 사람은 인구 10만 명당 2만 명으로 유럽 내 2위 수준이다. 공영 방송사 RTVE 역시 스페인의 항우울제, 수면제, 항불안제 소비량이 유럽 1위라고 밝혔다. 이러한 수치는 팬데믹 이후 더욱 상승했으며 특히 여성과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문제는 이렇게 스페인 국민의 정신건강 문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의료 인프라는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다. 공공의료 부문 내 정신건강 관련 예산 투자는 전체의 5% 수준이며, 인구 10만 명당 정신과 의료인의 숫자도 6명으로 유럽 평균인 18명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다행히 바로 얼마 전 스페인 행정부는 2024년까지 1억 유로(약 1362억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는 국민정신건강계획을 발표했다.

 

의지만으로 부러진 뼈를 붙일 수 없다

한편, 정신건강 문제로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것은 그로 인해 아픈 사람조차 그 고통의 실체를 알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체의 고통은 작은 상처라도 바로 눈에 보이기 때문에 치료를 요청하는 게 쉬운 반면, 마음의 상처는 흔히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문제로 여겨지거나 다들 그 정도는 힘든데 혼자 '우는 소리'를 하는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이에 대해 정신질환 중 하나인 중독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가 한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무엇에 중독된 사람에게 왜 의지로 그걸 끊지 못하냐고 말하는 건, 팔이 부런진 사람에게 의지를 가지고 뼈를 붙여 보라고 한다든가,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에게 의지를 가지면 피를 멈출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결국 그 경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밖에선 행복하게만 보이는 스페인 사람들도 당연히 각자의 이유로 우울함을 느낀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새로 개발된 테라피챗과 같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창구를 찾는 것도 좋겠지만, 심각하지 않다면 생활  작은 실천으로 우울감을 해소할 수도 있다. 이에 개인적으로 효과를 경험한 꿀팁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울은 수용성

좋아하는  말 중에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게 있다. 운동으로 땀을 흘리고, 눈물이 나면 울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활 습관이 지속된다면 우울감을 예방하는 데 상당히 큰 효과가 있다. 다만 같은 수분으로 이루어졌다 해도 술은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일시적인 기분 해소는 있겠지만 술로 인해 인위적으로 올라간 기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음 날 우울한 호르몬이 배출되기도 하고 숙취로 생활 리듬이 흐트러지면 무기력증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뼈저린 개인 경험이다.)


매일 성취하는 30분 운동의 힘

특히 우울감 해소에 가장 좋았던 건 '목표를 정하지 않은 운동하기'였다. 지난 5월부터 실내 자전거를 통해 가능한 매일 30분 유산소 운동을 하고 있는데 목표는 단지 딱 30분만 하는 것이다. 생각하고 정한 것은 아니었으나 지나고 보니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인데, 우선 너무 길지 않아 운동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먹기가 쉽고 그렇다고 너무 짧지도 않아서 하고 나면 충분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간을 지키는 것 말고는 다른 목표가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하고 나면 즉각 성취가 느껴진다. 이전에는 강도나 지속시간을 상향하고 심박수를 일정 이상으로 유지하며 운동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운동이 도전처럼 느껴졌고 혹 컨디션이 안 좋아 전날보다 나쁜 기록을 냈을 때는 분명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감이 느껴졌다.


반면 목표를 정하지 않은 30분 운동은 단지 했다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이 느껴지기에 특히 게으르게 흘려보낸 날에 아주 특효약이다. 밤이 되어 스멀스멀 무력감이 올라올 때쯤 부득불 일단 30분 운동을 하고 나면 그날 밤은 '해냈다'라는 성취감에 상당히 보람찬 기분으로 잠들게 된다.


이와 더불어 도움이 되었던 또 다른 묘책은 우울감을 무드로 즐기거나 나만이 갖는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한때는 홀로 늦은 밤 우울한 음악을 틀어놓고 혼술 하는 기분을 즐겼는데 이게 정말 힘든 감정과 겹치게 되면 진짜 안 좋은 상황을 맞이 할 수 있다. 또 마치 내가 예술가가 된 것처럼 외로움이나 고독함 같은 감정을 극대화해서 해석하기도 했는데 실은 이런 감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으로 전혀 특별하지 않음을 객관적으로 인식해 자기 연민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울한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2030년이 되면 우울증이 질병부담이 가장 큰 질환이 된다는 전망도 있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전망 덕에 스페인에서는 우울증을 겨냥한 스타트업 회사가 대규모 투자를 받으며 승승장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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