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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나 Jul 12. 2022

내가 사랑했던 평범한 날들

아직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기 전, 종종 순례자가 되면 어떨까 상상해보곤 했다. 새벽녘 길을 나설 땐 어떤 기분일까, 걸으면서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알베르게는 어떤 곳일까, 도착하면 어떤 기분일까 등등. 그런데 막상 걸으면서 가장 자주한 생각 중 하나는 전혀, 정말 꿈에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건 바로 순례자가 아닌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이었다. 분명 원해서 순례길에 왔고 길 위에서 많이 웃고 즐거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서 빨리 순례복(?)을 벗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매일 다른 침대에서 일어나 침낭 접기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지겨웠고 모르는 사람들과 방을 나눠 쓰는 것도 점점 버거워졌다. 매일 같은 옷, 같은 트래킹화를 입고 신는 것도 정말 싫었고 선크림만 바른 초췌한 얼굴과 항상 야외에서 걷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올라오는 잡티도 속상했다. 건조한 바람에 입술은 아무리 립밤을 발라도 텄고 머리도 늘 부스스하고 엉망이었다.


특히 로그로뇨, 부르고스 같은 도시를 들어갈 땐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도 저 맞은편에 걸어오는 여자처럼 잘 정돈된 머리로 단정한 옷을 입고 트래킹화가 아닌 평범한 신발을 신고 도시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르고스에서는 순례자 친구들과 에어비앤비 아파트를 빌려 2박을 지냈는데 얼마나 도시의 삶이 그리웠는지 그 짧은 기간 동안 잠깐 속세(?) 옷을 사서 입은 뒤 마드리드 집으로 부치고 다시 걸을까도 생각했다.


유난히 머물고 싶었던 예쁜 마을들에서도 순례자가 아닌 평범한 관광객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움이 남는 곳은 갈리시아의 포르토마린이라는 곳이다. 널찍한 강이 시원시원하게 흐르고 있던 그곳은 첫눈에 이미 반했던 곳이다. 


강 건너편에서 본 포르토마린 전경과 다리를 건너며 본 강의 모습 (c)이루나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있는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면 짧은 코스만 걷는 순례자들이 많아져 길이 무척 붐빈다. 따라서 남들 다 쉬는 일반적인 코스에서 쉬면 숙소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와 친구들은 보통 많이 쉬는 포르토마린이 아니라 한마을을 더 걸어가 쉬기로 했다. 덕분에 포르토마린에서는 점심만 빠르게 먹고 부지런히 떠나야 했는데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울 정도로 아쉬웠다. 아아, 정말 할 수만 있다면 강의 풍경이 보이는 큰 창이 있는 숙소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밤늦게까지 갈리시아 화이트 와인 알바리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그냥 여행객이었다면 못 할 것도 없는 것일 텐데!


이런 생각은 아침에 길을 나서면서도 늘 했다. 간혹 순례길에서 굉장히 맛있는 스페인 지방 음식을 먹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경험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일단 순례길이 지나가는 마을들이 작은 마을들이 많아서 나처럼 비수기에 걷는 사람들은 문 연 식당이나 카페, 바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아침에 대충 가지고 있는 간식거리로 허기를 채우고 두 시간 이상 걸어가서야 먹을 만한 카페를 찾는 일이 허다했다.


그 카페란 것도 작은 마을에 있는 것이다 보니 별로 맛있는 게 없었다. 커피도 맛없고 빵은 더더욱 맛이 없었다. 아무래도 작은 마을의 가게니 빵집 겸 슈퍼 겸 맥주 바 겸 이것저것 겸하는 곳이 많아 뭐하나 제대로 맛있는 게 없었고 당연히 그 작은 곳에서 매일 아침마다 생지를 구워낼 수도 없는 일일 테니 빵 이래 봤자 슈퍼에서 파는 빵을 봉지째 내어주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그 맛없는 커피와 빵을 먹을 때마다 마드리드의 널린 베이커리와 좋아하는 원두를 사서 직접 내려 마시는 나의 커피가 간절히 그리웠다.


그리고 마침내 산티아고에 도착하던 날, 나는 정말 가장 먼저 신발과 옷을 샀다. 이제 순례도 끝났으니 정말 더는 일분일초도 그 순례복과 트래킹화를 몸에 걸치고 싶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가방도 사고 싶었지만 그건 포기하고 대신 순례 떠나기 전 날 팜플로나의 호텔에서 잃어버린 진주 귀걸이를 대신할 새 진주 귀걸이를 샀다. 트고 밋밋한 입술을 가릴 립스틱도 샀고 순례자 스멜(?)을 감춰 줄 향이 아주 좋은 바디로션도 샀다. 아마 이런 내가 한심해 보이는 순례자도 있었을 것이다. (이상하게 순례자들끼리 '쟤는 진짜 순례자' '쟤는 무늬만 순례자'라고 나누는 분위기가 종종 목격되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이후 나는 바랐던 대로 빠르게 순례자가 아닌 사람으로 돌아갔다. 순례자 친구들이 '표정까지 며칠 전과 다른 사람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나는 어느새 다시 도시인이 되었다. 내가 정말 진짜 순례자가 아니라 무늬만 순례자여서 그랬을까? 글쎄. 나는 순례를 통해 각자 얻는 답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난겨울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이후 순례를 하기 직전까지 나는 줄곧 틈만 나면 하느님을 생각했다. 밤에 자려다 말고 하느님 생각에 엉엉 울기도 했으니, 혹시 너무 빨리 사랑해서 너무 빨리 마음을 놓아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나중에 시편에서 깜짝 놀랄 만큼 그때 나의 마음을 나타내는 구절을 발견했다.


제가 잠자리에서 당신을 생각하고 야경 때에도 당신을 두고 묵상합니다. 정녕 당신께서 제게 도움이 되셨으니 당신 날개 그늘 아래서 제가 환호합니다. 제 영혼이 당신에게 매달리면 당신 오른손이 저를 붙들어 주십니다. [시편 제63:7-9]


그래서 나는 내가 더 주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늦게 이 사랑을 알아채버린 것이 못내 속상하고 아쉬웠다. 만약 더 먼저 이 사랑을 알았더라면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순례 이후 그런 아쉬움이 싹 사라졌다. 나의 몫은 그게 아니었다는 대답을 만났기 때문이다. 대신 내 삶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느님을 섬기자는 마음이 생겼다. 좀 더 주변에 친절하고 후원과 봉사를 하면 그게 바로 내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 그게 순례 끝 무렵 소개받은 회사에 결국 들어가기로 한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모든 회사가 다 그러해서 당연히 완전히 만족스러운 조건은 아니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 그리고 '일정한 후원을 실천할 수 있는 월급이 나오는 곳' 단순히 이 두 요인이 그토록 겁내 하던 재취업을 다시 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요즘 나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하다. 지난봄, 그 길에서 그토록 원하던 그 하루들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회사로 가고 비슷한 업무를 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 하루를 쏟아부은 대가로 고만고만한 월급을 받고 그걸로 내가 원했던 것들을 사고 먹는다. 또 큰 금액은 아니지만 두 곳에 일정한 후원을 하고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간과 마음과 돈을 쏟는다.


돌아보니 그렇다. 기억 속 가장 행복한 순간은 모두 평범했다. 마드리드에 놀러 온 엄마와 둘이 시내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밤, 오래전 여름 남편과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목적 없이 동네를 배회하던 해가 길었던 오후, 누군가 내게 '행복'을 묻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두 지점이다. 아주 평범해 정작 같이 있었던 이들도 기억이 안 날 텐데 나는 저 날의 공기까지 뚜렷이 기억한다.


나의 순례길에서 배운 건 이런 평범한 날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사랑하는 줄도 몰랐던 시간들, 나는 그걸 다시 행복이라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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