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브리치《서양미술사》수업 노트
유럽인문아카데미의 함께 읽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세미나 강의를 듣고 개인적으로 기록하는 노트입니다.
책을 읽을 때 빨리 뒷 내용이 알고 싶어 성급하게 읽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이러한 성향이 너무 심해서 거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정도로만 독서를 하고 문장의 심미나 깊은 내용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고쳐야 하는 버릇이다. 고칠 수 없다면 빠른 호흡으로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천천히 음미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강의는 이미 읽었으나 읽었다고 할 수 없는 서양미술사 책을 다시 한번 긴 호흡으로 읽어가는 재미를 주고 있다. 심지어 강사님이 적당히 잘라서 입에 떠먹여 주는 것이니 그저 꼭꼭 씹어 먹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서양미술사》에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오는데 건축을 잘 모를뿐더러 도면도 제대로 못 보는 편이라 실은 꾸역꾸역 읽었던 부분들 중 하나이다. 그나마 이해한 것이라면 고대건축의 기둥 양식 정도가 되겠다. 만약 양식의 이름과 그 탄생 순서를 아는 것을 이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번 수업을 통해 건축이 왜 굳이 이 책에 이리 많이 등장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서양의 중세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 380년 국교로 선포되면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바로 문제와 직면한다.
첫 번째 문제, 교회를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
기독교는 당시 신흥종교였다. 따라서 회당으로 쓸 건물이 없었다. 그렇다고 기존의 신전을 그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왜냐면 기독교 회당은 '공공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즉, 사제가 설 제단과 많은 교인을 포용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했다. 무언가 새로 만들 때 가장 좋은 것은 건 기존에 있었던 걸 참고해 변형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로마에서 공공 재판소나 시장으로 활용했던 실내 건축물 바실리카를 초기 기독교 교회로 사용하게 되었다. 다만 현재 유럽에서 바실리카로 불리는 교회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초기 기독교 교회의 건축형태를 가져서 건축적인 구분으로 바실리카라고 불리는 것과 교황으로부터 특권을 받아서 바실리카로 불려지는 종교적인 구분이 있다. 즉, 현재는 바실리카로 불리는 건물 중 일부는 바실리카 건축 양식으로 지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위 사진처럼 초기 바실리카는 반원형의 후진(제단)이 있고 가운데 가장 높은 천장의 신랑(nave)이 있으며 양 측에는 신랑보다 낮은 천장의 날개 같은 측랑이 있다. 이런 기본 구조를 3랑 바실리카라고 한다. 대성당의 경우 보통 5랑으로 구성되어 있고 큰 경우 7랑까지도 있다. 초기 바실리카 천장은 흔히 목재를 사용했고(사진처럼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잦음) 측랑의 지붕은 평평한 경우가 많았다. 이제 건축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나 새로운 문제와 부딪힌다.
두 번째 문제, 지어진 교회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
다시 한번, 이 시기 기독교는 신흥 종교였음을 상기해볼 때 초기에는 아직 많은 이교도인과 이단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음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섣불리 인간의 형상을 한 조각이나 그림으로 장식을 한다면 기독교인이 금기시하는 우상숭배를 연상시킬 수도 있고 이전 종교의 신상과 차별화도 둘 수 없다.
한편 대중에게 신흥종교를 알리기 위해선 성서의 내용을 가르쳐야만 했다. 당시 성서의 내용을 읽을 수 있거나 이해하는 자는 매우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글과 말로 설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뭔가 더 매력적이고 시각적인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들 속에 6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많은 신도가 글을 읽거나 쓸 수 없기 때문에 마치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듯' 성서의 내용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한다. 그의 주장에 따라 성서의 주요 내용들을 교회 내 장식을 통해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레고리우 교황의 주장은 어찌 신을 감히 인간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의 질문에도 답이 되었다. 신 역시 인간의 육신을 빌려 땅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복음을 알리기 위해 신을 인간으로 표현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서양미술사의 본격적인 태동을 기독교가 공인된 4세기부터로 본다면, 미술에 있어 건축의 중요성도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양식이나 사조를 정의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기독교가 공인되며 교회가 건축되었고 이 교회를 장식하기 위해 미술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 장식용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캔버스에 그림이 그려진 건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다.
다만, 아직 이교도와 이단 그리고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 판을 치는 초기 기독교 사회에서 미술에 대한 엄격한 제한은 필수적이었다. 우상숭배의 느낌이 들지 않도록 최대한 절제하며 그림의 주제 즉, 성서의 내용을 알리는데 집중해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이것이 당시 예술의 최대 미덕이자 가치였다. 중세 그림들이 어쩐지 딱딱하고 어설퍼 보이는 이유이다.
이태리 라벤나에 있는 산 아폴리나레 노오보 바실리카 모자이크를 보면 중세 미술의 특징이 드러난다.
1. 정면성: 그림 속 인물을 서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신도)만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존재 가치는 신도에게 성서의 내용을 알리는 역할에 있기 때문이다.
2. 대칭성: 가운데 주인공을 중심으로 양쪽이 똑같이 두 명씩 대칭적으로 그려져 있다.
3. 직접성: 이 그림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상 왼쪽에는 빵이 오른쪽에는 물고기가 그려져 성서의 어떤 부분을 묘사하는지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4. 의미적 원근법: 수학적으로 계산된 원근법이 아닌 주제에 따라 임의적으로 표현된 원근법이다. 가운데 주인공(예수)이 다른 이들보다 더 크고 강인하게 표현되었다. 실제 더 덩치가 컸다던가 인물 배열상 수학적 원근법에 따라 더 크게 그려진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크게 그려졌다.
5. 시공간의 초월성: 위쪽 배경은 황금색으로 자연에서 실제 할 수 없는 형상이나 아래 배경은 실제 초원을 묘사하듯 녹색으로 표현되었다. 한 그림에 신적인 공간과 현실적 공간이 공존함으로써 주인공 예수를 더욱 신비로운 인물로 보여준다.
중세 미술의 특징적인 부분과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그 부분을 다시 한번 확인함과 더불어, 건축과 미술의 유기적 관계를 깨닫게 된 제2강의 수업이었다. 수업 마지막에 다른 학우님의 재미있었던 물음이 있다. 그림상 좌측에서 두 번째 위치한 사람의 발이 왜 하나밖에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일까? 의도라면 어떤 의도로?
중세 미술가의 역할을 떠올려 봤을 때 굳이 의도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도판을 보면 마치 발이 위치해 있었도 좋았을 법한 곳에 발과 비슷한 모양으로 그림자가 있다. 이 작품은 모자이크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거의 다 채우고 보니 발 색깔 돌이 모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뻘한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