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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Jan 03. 2022

민주적인 좀비 (1)

그 병과 좀비가 등장했을 때, 난 인류가 멸망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서 가족과 친구를 물어뜯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그런 디스토피아를 생각했다. 매일 밤마다 통조림을 찾으러 벌벌 떨면서 돌아가는 사회가 찾아올거라 느꼈다. 그런데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고 1년이 지난 지금, 제일 무서운 건 여전히 취업과 부동산이었다. 좀비로 세상이 멸망해도 대한민국은 내일 출근해야 할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지하철 환승통로 중간중간 좀비들이 뒤집어진 눈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지만, 서울시민은 피곤에 쩌든 눈으로 바쁘게 출근을 하고 있었다. 양복 자켓을 손에 들고 있는 남자의 등은 땀으로 쩔어있었고,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는 헐레벌떡 뛰어서 지하철로 들어갔다. 구두가 또각거리는 소리만이 남았다. 좀비로 가득한 도시는 두려움보다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크린도어 앞에 달려있는 화면에는 좀비바이러스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좀비 바이러스를 없애거나 예방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화면에는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지긋지긋하게 반복되었다. ‘오늘의 신규 환자는 59명, 국내 대기업에서 좀비 바이러스 일명 ‘부유병’에 대한 전문 연구팀 파견’이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매일 환자는 생기고, 전세계의 모든 기업에서는 매일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오는 뉴스를 신경도 쓰지 않고 열차가 도착하자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뉴스를 보던 시선을 금새 거두고 얼른 다시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열차 안에도 사람이 많았다. 다행히 오늘 탄 열차에는 좀비가 없었다. 귀찮게 하는게 없어서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좀비 바이러스의 학술명은 부유병이었다. 그 병은 말 그대로 사람을 둥둥 뜨게 만드는 질병이다. 마약한 것처럼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게 아니라 진짜로 사람을 땅에서 떠오르게 만드는 병이다. 부유병에 걸린 사람은 좀비처럼 변한 후 지면으로부터 50cm 정도 떠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들의 모습은 땅에 묶여 있는 헬륨풍선이랑 비슷했다. 환자들은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이 초점이 없고, 썩어가는 피부를 한 좀비의 모습으로 자신이 병에 걸린 지점 근처를 떠다니고 있었다. 한 마디로 부유병은 사람을 좀비풍선으로 만드는 바이러스였다. 하다하다 좀비가 공중을 떠다니다니. 진짜 세상이 망했나보다.


처음 좀비가 등장했을 때, 사회는 불안에 떨었다. 사람들은 무서워했고, 모든 시스템은 멈췄다. 사람들은 옆에 있는 다른 이를 의심했고, 언제든지 서로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공격당할 수 있다는 의심이 가득했다. 정부의 대처는 그런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정부는 바이러스가 퍼지고 일주일만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군대를 동원했다. 군인들은 골목 곳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이 괜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군인들은 아무 이유없이 사람들을 수색했고, 부유병 환자의 가족들을 위험분자로 몰면서 그들의 동선을 감시하고 추적했다. 서울의 거리는 딱딱하게 굳었다.


그치만 정부의 대응은 불필요했다. 좀비는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다. 끔찍한 생김새와 달리, 좀비는 그냥 자기 자리에서 가만히 떠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물지도 않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심지어 부유병은 환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전염되지도 않았다. 좀비는 뜬금없는 장소에서 뜬금없이 나타났다. 발병에는 규칙이 없었다. 나이, 성별, 지역, 기저질환을 가리지 않고 부유병은 사회 이곳저곳에서 등장했다. 병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사람이 좀비가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지, 부유병을 치료하는 열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여기저기에 있는 좀비들을 모여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릴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부유병에 걸린 좀비는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았고, 그들의 존재가 다른 누군가를 전염시킨다는 과학적인 증거는 없었다. 어떤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좀비에게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들은 살아있었다. 기술이 발전하면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좀비는 누군가의 가족이고, 연인이며, 친구였다. 불안해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밥은 먹어야 했고, 돈은 벌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숨어있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집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걸리지 않는 병도 아니었다. 부유병은 접촉 여부와도 상관없이 무작위로 퍼졌다. 하루종일 집에서 티비만 보던 90세 할머니가 갑자기 좀비가 되기도 했고, 매일 독서실을 다니며 아무와도 대화하지 않던 10대 학생이 독서실 안에서 좀비로 변하기도 했다. 보험업종에 다니는 영업직도, 매일 밤샘을 하던 프리랜서도 얼마든지 부유병에 걸릴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감염병을 추적하는 역학조사는 부유병에는 소용없었다. 사람들은 그냥 좀비가 되었고, 누가 둥둥 떠다니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추측도 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좀비가 된 사람이 누구도 공격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들은 위험이긴 했지만, 위협은 아니었다.


좀비에 대한 공포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긴 했다. 공포는 논리와 과학이 아닌 불안과 의심으로 이뤄진 감정이다. 심지어 공포는 경험도 초월한다. 공격받지 않았어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공포였다. 좀비가 근처에 있다고 해서 다른 좀비가 생긴다는 이야기의 과학적인 근거는 없었다. 그치만 사람들은 좀비들을 모조리 쏴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특히 이런 주장은 소위 상식적이고, 멀쩡하다고 여겨지는 집단에서 나왔다. 그들은 정부가 군대를 이용해서 좀비들을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면서 피켓을 들고 나왔다. 과학자들이 나와서 ‘부유병 환자는 부유병의 확산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들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은 증명되었습니다.’라고 아무리 이야기하더라도 소용없었다. 사람들은 좀비들을 모두 없애면 기적처럼 부유병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종교인들은 좀비가 신의 벌이라는 뜻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목사, 스님, 신부들은 모두 다른 종교의 교리를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좀비들을 악한 사람으로 여겼다. 인간은 죄를 지었고 좀비를 없애는 신의 과업을 실행해야만 앞으로 좀비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선언은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이었다. 중간중간 용서와 평화를 이야기하는 교인이 있긴 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적어도 종교인이 아닌 내 눈에 그런 종교는 없었다. 한 목사는 좀비를 징벌하자는 설교를 하는 중에 자신이 좀비가 되어버렸다. 저 목사를 안타까워해야 할 지, 징벌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정부는 좀비들에게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부유병 감염자 및 시민을 위한 여러 정책과 지침이 나오긴 했지만, 그 방향은 애매했다. 정부는 좀비를 완전히 쓸어버리지도, 그렇다고 좀비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그들 모두에게 의료적 지원을 하지도 않았다. 정부가 하는 일은 좀비가 도로 한 가운데에서 떠다니거나, 밀집지역에서 부유하는 것을 막는 정도의 일이었다.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슨 조치를 하기에는 부유병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감염자를 격리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질병의 추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취하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또한 정부는 여론을 신경쓰기도 해야 했다. 누군가가 좀비를 다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누군가, 예를 들어 부유병 감염자의 가족, 시민단체, 인권에 신경쓰는 학자들은 환자를 치료하지 못할 망정 그들을 좀비로 몰아가면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취지로 매일 시위를 이어갔다. 좀비는 끔찍한 모양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들의 심장은 여전히 뛰었고 뇌에서도 어떤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감염을 전파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죽이는 건 정부에게도 부담이었다.


그렇지만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취업 준비를 위해서 뉴스를 볼 때마다 정부는 감염자가 위험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바로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필요하다면 살상무기를 사용해서라도 시민들을 지키겠다는 발언을 반복했다. 특히 그들은 감염자가 실질적인 위협이 될 상황을 가정해서 여러 군사작전과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행정부의 발빠른 대처 중 하나로 손꼽았다. 심지어 정부의 대변인이 공식석상에서의 답변 중에 감염자를 좀비로 명명하는 일까지 있었다. 물론 실수이지만, 원래 무의식은 실수에서부터 나오는 법이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도 매일 학교를 가고, 알바를 갈 때마다 보이는 좀비 때문에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은 아니었다. 죽이는 건 좀 마음이 안 좋기는 하지만, 그 비쥬얼은 너무 끔찍했다. 없애는 것도 나름 방법이긴 하다.


좀비를 한 곳에 격리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전염병 특수지구를 만들어 일단 그곳에 감염자를 모아두고서 치료법을 개발하자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았다. 적당히 양심을 지키면서도 충분히 안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그런 주장은 나왔다. 그 사람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좀비들의 모습은 끔찍하긴 했지만, 그들은 누구도 공격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을 물지 않는 좀비를 굳이 없애버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좀비를 격리시키는 일은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했다. 좀비들을 원래 있던 장소에서 억지로 이동시키려고 하면, 그들은 돌변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옮기려고 하면, 그들은 어떤 영화에서 나오는 좀비보다 지랄맞았다. 감염자들은 물어뜯고, 할퀴고, 긁어대면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전봇대, 담벼락, 온갖 곳을 붙들고서 떠나지 않으려 하는 감염자들을 하나하나 격리시키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한 명의 좀비를 격리시키기 위해서 10명의 사람이 반나절을 끙끙거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이들을 격리시키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배제와 치료 중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에게 남은 길은 적응뿐이었다. 우리는 포기했고, 그냥 살아갔다. 내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바이러스에 감염될 지를 결정하는 건 오로지 운이었다. 변수를 통제할 국가적 시스템이 없을 때, 힘없는 한 명의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그냥 평소처럼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행동은 생각보다 변하지 않는다. 씽크홀이 늘어난다고 해서 우리가 밖에서 걷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듯이, 좀비가 될 위험이 있다고 해서 좀비 옆을 지나지 않을 순 없었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출근이나 등교를 하지 않으면, 감염되었나 보다고 수근거리는 일이 새로운 일상으로 추가되었을 뿐이다. 국회나 청와대 앞에서는 감염자를 없애자는 사람, 격리하자는 사람, 그들을 보호하고 치료하자는 사람이 격렬하게 대결하고 있었지만, 그 치열한 갈등은 일상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내게 좀비정책의 문제는 초고층빌딩의 건축허가권을 두고 정치권이 싸우는 것만큼 먼나라 이야기였다. 초고층빌딩이 지어지는지 여부와 내 삶은 아무 관련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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