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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풍선 Jun 14. 2022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가장 진부한 사람 (마지막)

정주의 직속상사이자 교육기획팀장인 목관은 평소보다 약간 늦게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의 발걸음은 사나웠다. 그는 출근을 하자마자 소리지르며 정주를 찾았다. 그의 눈은 약간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의 눈은 한 번도 깜박거리지 않았다. 목관은 다른 사람들이 흠칫거리는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정주를 열심히 찾아 모든 층을 다녔다. 그가 정주를 발견한 곳은 5층에 있는 테라스였다. 정주는 테라스에서 혼자 여유롭게 키보드를 누르고 있었다. 목관은 정주에게 언성을 높였다.


"너 지금 뭐하고 있어?"


"네 팀장님, 그제 맡기신 시장분석 중입니다."


"아니 지금 그걸 할 정신이 있어? 그것보다 지금 제정신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무슨 말씀이시죠?"


"어제 올린 그 글, 그거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올린 거냐고. 지금 그 일 때문에 내가 어제 새벽부터 얼마나 이곳저곳에서 전화를 받았는지 알아. 심지어 그 글 대표님도 읽었대."


"안 되나요? 자유롭게 얘기하라는 방에서 자유롭게 얘기했는데."


"예전에 그 일 때문에 불만이 있었으면 나한테 직접 따로 이야기를 하든가 해야지. 이런 식으로 팀이랑 회사 전부 곤란하게 만드는 건 무슨 심보야. 정주씨 지금 생각이 없어? 안그래도 다들 스트레스 받는 시기에 정주씨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거 모두한테 힘든 일이야. 민서씨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민서씨한테 좋은 것도 아니고. 진짜 미안했으면 예전에 하던 것처럼 식물관리를 했어야지. 지금 이건 엿먹으라고 하는 거잖아."


"팀장님, 이런 식으로 올리지 않았으면 영영 그 이야기는 저희 팀에서는 안 나왔을 거 아시잖아요. 그리고 지난번에 제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끊어놓고 제가 왜 팀장님에게 따로 가서 애원하듯이 화분 관리를 하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거죠? 저는 팀장님 말처럼 화분청소하기로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요."


"민서씨 지금 장난.."


"제가 말하는 중이에요. 말 끊지 마시고요. 그냥 팀장님이 불편하신 거잖아요. 그런데 전 그동안 계속 불편했어요. 그러니까 이정도는 해도 괜찮을 거 같았습니다."


"정주씨 지금 회사생활 포기했어?"


"네, 어제 민서씨 나가는거 보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서씨한테 미안해서가 아니라 지금 나가지 않으면 저도 제정신으로 회사에 있을 수가 없겠더라구요. 누군가한테 죄책감을 느끼는게 아니라 제가 살려면 나가야겠습니다. 사직서는 온라인으로 보낼게요. 평소에 직원들 나갈 때 서면으로 통보같은 거 안하니까 저도 온라인으로 할게요.

그리고 회사생각 같은 이야기 계속 하셔서 그런데, 사람 하나 바보 만들면서 화기애애하게 웃는거 역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뭐 지금 와서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이긴 하죠. 그리고 팀장님, 다른 사람 있거나 자기 기분 좋을 때는 존댓말하다가 이럴 때는 반말 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나갈 사람이니까 더더욱 반말하지 마시구요. 이제 저도 팀장님이 매번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 고객입니다."


정주는 목관이 이야기할 틈도 주지 않고, 가방을 들고 테라스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목관은 벙쪄서 정주가 들어간 곳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정주를 혼내려고 한 것인지, 잘 타이르려고 한 건지, 그냥 감정을 풀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목관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정주가 우다다 쏟아내는 말을 듣다가 끝났을 뿐이다. 목관은 문득 지난 회의가 떠올랐다. 그 때 자신이 정주의 말을 끊은 것처럼 자신도 정주에게 하려던 말을 못했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묘한 패배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목관은 이제 정주를 찾을 수 없었다. 정주는 자신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아마 오늘 오후부터 주식회사 티모에서 정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월급날이었다. 이미 모든 것은 끝나있었다.


정주는 민서처럼 회사를 나갔다. 정주와 민서, 그 둘이 티모를 나가서 어디로 갔는지 아는 티모의 직원은 없었다. 그들의 행선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은 건 아니었다. 티모의 직원들은 그저 정주와 민서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이었는지를 추억했다. 뭐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어. 그냥 이 회사에서 버티기에는 열정이랑 의지가 부족했을 뿐이야. 조금 더 잘 챙겨줄 걸. 직원들은 정주와 민서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그런 말을 붙였다.


화분에서 나는 냄새는 금방 해결되었다. 정주의 글을 본 임원 중 누군가가 그 화분을 모두 치워버리라는 지시를 내렸고, 하루 뒤 업체가 와서 모든 화분을 수거했다. 그 화분에 있던 식물들은 어디 공원에 심어질 것이었다. 화분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데코레이션이 들어왔다. 깔끔한 철제 장식품들과 서랍장들이 화분 대신 티모의 공간을 채웠다. 사람들은 좋아했다. 관리를 해줘야 하는 것보다 그냥 둬도 되는 물건들이 편했다.


화분이 사라진 후에도 주식회사 티모는 여전히 잘 나갔다. 티모에서 만든 어플들은 여전히 인기가 좋았고, 사람들은 티모의 혁신에 반응했다. 하지만 주식회사 티모에는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화분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지만, 점점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매일 앉는 자리에 앉기 시작했고, 별다른 이야기를 다른 팀의 구성원들과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 큰 차이는 없었다. 여전히 티모에서는 회의도 했고, 티모의 직원들은 친절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공기는 달라져 있었다. 이제 직원들은 웃으면서 회의를 하지 않았고, 기분좋은 아침인사를 나누거나 저녁에 동료끼리 모여서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더 이상 주식회사 티모에 화분은 없었지만 정주나 민서같은 직원들은 꾸준히 등장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쌔한 사람이기도 했고, 갑자기 이상해진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에는 언제나 이상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떠돌았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야기가 돌면 어김없이 잠시 후 회사를 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에서부터인가 온라인 플랫폼에서 주식회사 티모는 개방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는 회사라는 말이 줄어들었다. 인사팀에 오는 문의에는 연봉과 휴가에 대한 질문의 비중만이 점점 늘어났다.


목관은 여전히 주식회사 티모의 팀장이었다. 그는 가끔 출근하면서 생각했다. 지금의 주식회사 티모가 자신이 입사할 때의 주식회사 티모인가를. 이미 식물이 사라진 지 한참 지났지만, 목관은 회사의 어딘가에 그 찝찝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는 그게 회사에게서 나는 것인지, 자신에게서 나는 것인지, 다른 동료에게서 나는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관은 일단 출근을 했다. 지금은 9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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