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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rk Aug 09. 2024

네 번의 홍콩 여행,  그리고 시작된 진짜 홍콩 생활

곰잔디 이야기

난 홍콩을 네 번 가봤다.


첫번째 홍콩: 인생 첫 해외 여행

배낭여행도 어학연수도 쉽게 못 가던 시절 대학을 다니느라 해외라고는 가 본 적 없던 내가 직장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여권이란 걸 만들고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한 인생 첫 해외 여행 목적지가 '홍콩'이었다. 비록 깃발을 따라다니며 라텍스 이불에 대한 설명을 한참 들어야 했던 패키지 여행이었지만 첫 해외여행을 왔다는 기분에 마냥 설레고 즐거웠다.


두번째 홍콩: 친구와의 잊을 수 없는 추억

누구나 부러워 하던 글쓰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재능을 다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가 있었다. 영화사 사무실에서 함께 먹고 자며 생활하던 그 친구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났던 여행지도 홍콩이었다. 쇼핑을 좋아하던 친구를 따라 땀을 뻘뻘 흘리며 쇼핑몰을 돌아다니고, 태풍 때문에 호텔에 발이 묶여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지만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 친구와 가장 즐거웠던 추억을 홍콩에 남겼다.


세번째 홍콩: 비밀 연애의 추억

옛 여자친구(지금의 와이프)와 비밀리에 사내연애 하던 시절, 진짜 딤섬을 먹으러 가자며 직장동료들을 꼬드겨 여자친구와 함께 떠나게 된 즉흥 여행의 목적지도 홍콩이었다. 하루 5끼를 목표로 정말 먹고 먹고 또 먹으며, 매일 밤 숙소 가기 전에는 편의점 간식을 사고, 비행기를 타러 가는 열차 안에서도 계속 먹고 있던 기억만 남아있다. 우리 사이를 알고도 속아줬는지 진짜로 감쪽 같이 속았는지 모르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동료들을 만나면 웃으며 이야기 하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네번째 홍콩: 저와 결혼해 주세요.

결혼 전 마지막으로 함께 떠난 여행에서 와이프 몰래 숨겨 간 반지를 선물하며 프로포즈 한 곳도 홍콩이었다. 프로포즈 반지를 미리 받아 가야 해서 주얼리샵에 몰래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느닷없이 샵에서 와이프에게 전화해 "미리 준비해 달라고 하신 반지 준비 되었습니다" 하는 바람에 산통 깨질 뻔 했지만, 다행히 적당히 둔감한 와이프를 속여 비밀 프로포즈 작전은 성공했고 무사히 결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홍콩 생활의 시작

처음 홍콩에 갔던 1999년 세기말의 뜨거웠던 여름,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2015년.

20대 청년은 이제 40대 중년이 되었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홍콩 어느 거리 가판대에서 눈치 보며 산 도색잡지를 호텔 방에 누워 낄낄대며 보던 나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홍콩에 살러 갔다.



아! 홍콩에 왜 갔냐고? 와이프가 홍콩에 일자리를 구했단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지! 다니던 회사는? 육아휴직냈다. 지나가던 인사팀장님이 '가지가지 한다'라고 하신걸로 봐서... 1년 후 돌아올 자리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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