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크 이야기
2014년 여름 어느 날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이 왔다.
홍콩에 좋은 자리가 있는데
이직 생각 있으세요?
지나가던 말로 남편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말했더니 "홍콩? 음식이 맛있어서 홍콩이면 살기 좋지"라고 한다.
그 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서 그 이후로 누가 ”왜 홍콩에서 일하게 되었냐 “는 질문을 받으면 그때마다 음식이 입에 맞아서라고 말하곤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냥 웃어넘겼는데 어쩌면 그때 나는 또 다른 변화를 가져도 좋겠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라도 보면 어때?"
홍콩은 그나마 가까운지라 면접 보는 회사에서 항공과 숙박을 제공해 주테니 인터뷰 보러 와달라는 요청이 왔다. 다니던 직장에 오후 반차를 내고 저녁이 다 돼서 도착한 홍콩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빗 속에 혼자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아서 마감시간이 다 되어 근처 슈퍼을 갔다. 식품코너에서 간단한 저녁을 사서 호텔방에서 다음 날 있을 인터뷰 준비를 하며 먹고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인터뷰 장소로 향했다.
나를 맞아준 인사팀 직원이 면접관에게 안내해 주니 그가 먼저 나의 스케줄을 묻는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니?"
"오늘 저녁에"
"몇 시 비행기야"
"6시쯤이었어"
"그래? 그럼 4시까지 이야기하고 택시 타고 가면 되겠네"
뭐? 지금 아침 9신데 인터뷰를 4시까지 한다고? 6시 비행긴데? 짐이 없어서 다행이지 싶다.
보통 1시간 면접에 첫 단계 합격하면 그 다음으로 진행하는 인터뷰에 익숙했는데, 이 날 인터뷰는 아침 9시부터 정말 빼곡히 채워서 4시 넘어까지 계속되었다.
가족 이야기, 좋아하는 영화 등 사적인 대화부터 ice breaking을 시작해서 업무 이야기 조금 하다가 오전이 다 갔다.
점심 식사하러 가니 다른 부서 사람들도 조인해서 소개해주고, 오후에는 또 다른 면접관과 이야기를 나눈 후 회사 투어 & 부서장들 인사도 시켜주고...
몇 시간째 이야기를 하다가 오후가 되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여기는 어딘 지 잊을 지경이다.
인터뷰 막바지가 되어서 shortlist에 몇 명 정도 있는지 물어봤다. 해외에서 인터뷰 보러 들어온 건 나 혼자라고 한다. 면접을 위해 돈 써서 해외에 있는 사람을 부른다는 건 좋은 사인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시 반이 되어서야 자칫 비행기 놓치겠다며 불러준 택시 타고, (다행히 홍콩은 좁고 공항은 수속이 빠르다) 그렇게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이어진 면접을 큰 사고 없이 마치고 돌아왔다.
다음 날 출근하니 후배가 조심스레 와서 “선배님, 혹시 홍콩에서 면접 보고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당황하며 둘러댔는데, 내가 평소와 다르게 이메일을 바로 답하지 않은 데다가 전화가 3-4시간 정도 꺼져 있더니 이후 로밍 중이라는 메시지가 나왔다며… 누가 CSI 열혈팬 아니랄까봐 날카롭기는...
이후 홍콩에선 한 달 정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안된 건가 하며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너 홍콩 올 수 있니?
최대한 빨리 오면 언제 올 수 있어?
해외생활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은 부모님과 함께, 20대에 홀로 해외에서 공부와 직장생활까지 했었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아이는 이제 막 돌이 지났고, 남편은 직장에서 새로운 부서로 옮긴 지 얼마 안 되었다.
가족과 함께 해외에 나가서 일하며 산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남편과 한참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하다가 우리는 이 두렵지만 흥분되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새로운 집, 홍콩으로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