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가 아들의 길이 되지 않게
이제 아이와 제법 대화가 된다. 이전엔 단답형 문답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한 사이클 이상의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내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으며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이를 보면 묘한 감정이 든다. 작은 인간이 점점 더 큰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요즘이다.
오늘 밤, 아이가 자기 전에 갑자기 가위질 놀이를 하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지켜보는데, 가위질이 정말 많이 늘었다. 곡선이든 직선이든 거뜬히 동물 모양을 만들어내더니, 풀을 찾아와 오린 동물을 접고 붙여 펭귄을 완성했다. 가위질이 서툴러 사줬던 동물 오리기 책이 불과 4개월 전이었는데,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새삼 놀라웠다.
나는 대화를 시도했다.
“선호야, 이제 가위질하는 거 재밌어?”
“응, 가위질로 동물 만드는 거 재밌어. 하나 더 만들어야겠다. 엄마, 한 페이지 더 뜯어줘.”
“선호야, 그런데 못하는 선호도 좋아?”
왜 물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냥 묻고 싶었다.
아이의 대답은
“응, 못하는 선호는 안 좋아. 잘하는 선호만 좋아”였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못하는 선호도 좋아’라는 답을 기대했지만, 이쯤 되면 나도 안다. 선호는 나를 닮은 아이였다.
“선호야, 엄마 요즘에 못하는 거 많거든?
근데 그래도 배우면 되니깐, 엄마는 요즘 못하는 게 많아도 엄마가 좋더라고.”
이게 내 진심이었다.
여행업, 항공업계 출신이 아닌 나는 회사에서 새로운 것들을 계속 배워야 한다.
항공 비즈니스가 어떻게 돈을 벌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하나하나 다시 배우는 중이다. 그래서 업무 시간 내내 머리를 최대한 굴린다. 하지만 놓치는 것도 많고,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
그럼에도 요즘 나는 즐겁게 산다.
모르는 나를, 모른다고 말하는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내가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 선택했으니.
아이에게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같은 말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완벽주의 부모가 아이에게 자주 하는 레퍼토리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진심이 아닌 말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요즘 못하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선호가 내 말을 듣고 “엄마, 정말?” 하고 되물었다.
“응, 엄마는 못하는 엄마도 좋고 잘하는 엄마도 좋아. 물론 잘하는 엄마가 조금 더 좋긴 하지만.”
그러자 선호가 말했다.
“그럼 나도 못하는 선호도 좋아하고, 잘하는 선호를 조금 더 좋아할래.”
부족함을 마주하며 함께 성장해 가는 순간들, 나도, 아들도 성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