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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Aug 07. 2020

아버지의 시계

내가 국민학교

  6학년이던 때 아버지께서 나에게 당신께서 차시던 시계를 주셨다. 그 전에도 시계가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또래들이 흔히 차고 다니던 싸구려 전자시계였다. 하지만 6학년 때 아버지께 받은 시계는 바늘이 돌아가는 완벽한 아날로그 시계였다. 벽시계나 탁상시계로만 보았던 바늘이 돌아가는 시계를 손목에 올린 나는, 이제 어른이 된 것 같은 묘한 착각마저 들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흔들어서 밥을 줘야 하는 시계라고 하셨다. 당시에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을 뿐 그것이 어떤 시계인지 몰랐는데 나이를 먹고 시계에 관심이 생기고 보니 알게 됐다. 그렇게 구동하는 시계가 기계식 시계라는 것을.




한동안 그

  시계를 잘 차고 다녔는데 그 뒤로는 그 시계를 잃어버렸던 것 같다. 사실 그 시계를 어디에서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당시의 나는 시계보다는 로봇 완구따위나 좋아하던 철없는 꼬맹이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나의 아버지는 가난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성실하고 검소하게 살아오신 분이셨다. 그렇기에 그 시계도 고가의 명품 시계는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값비싼 시계였다면 국민학교 6학년인 아들에게 주지도 않았을 테고. 나는 지금에 와서야 그 시계를 잃어버린 것이 안타깝다. 언젠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두 분을 추억할 만한 물건 하나쯤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엊그제 건강검진을

  받으신 아버지는 대장에서 혹을 하나 떼서 조직검사를 하고, 부정맥 문제로 MRI를 찍었다고 하셨다. 연세에 비해 아직 건강하신 편이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버지와 언젠가 이별할 것이라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우울해진다. 그럴수록 국민학교 6학년 때 받았던 아버지의 시계를 잘 간수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아쉬워해 봐야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부모님께서 아직 내 곁에 계심을 감사하기로 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당신들이 물려준 물건을 보며 눈물 흘리는 것보다, 지금 당장 안부 전화라도 한 번 더 드리는 게 미래의 뉘우침을 줄이는 일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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