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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Mar 12. 2021

잘 만든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종교적 성찰

[영화 리뷰]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2005)

중세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 대장장이인 발리앙의 아내는 사산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에 자살하고, 자살한 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기독교의 교리를 믿는 발리앙은 아내가 천국에 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때마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가 아들을 찾기 위해 잠시 프랑스로 돌아온 고드프리는 발리앙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동행할 것을 권한다. 결국 발리앙은 아내의 죄(자살)와 자신의 죄(이복형제를 살해)를 씻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할 것을 결심하고 고드프리를 따라나선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보두앵 4세 등 많은 이들의 가르침을 듣고 또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이들을 만나 진정한 기사로 거듭나게 된다.






종교가 없었다면 인류는 더 행복했을까?

신의 이름으로 인류가 저질른 끔찍한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작년 프랑스에서는 무슬림 극단주의자가 무함마드를 모독한 만평을 학생들에게 보여줬다는 이유로 중학교 교사를 효수한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성당에서 기도 중이던 할머니의 목을 자른 또 다른 극단주의 무슬림도 있었다.

이런 극단적 광신도들이 저지른 참혹한 행위들은 비단 이슬람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의 이름으로 기독교도가 행한 추악한 짓들은 역사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약하고 힘없는 여자들을 화형에 처했고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을 학살했으며 2천여 년 동안 정착하며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인들을 내몰고 그 자리에 이스라엘을 건국할 수 있도록 하여 지금까지도 중동에 전운이 수시로 감돌게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러한 광신의 최정점에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면 십자군 원정이 아닐까 싶다. 추락한 권위의 강화를 노린 교황, 영토의 확장을 노린 황제와 권력 강화를 노린 영주와 기사들, 동방의 진귀한 물건들과 그로 인한 부의 축적을 노린 상인들. 각자의 잇속은 달랐으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로 포장된 그들의 탐욕은 기백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끊임없는 살육과 노략질 등의 비인간적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다.



신앙은 믿을 게 못 돼요. 폭력의 광기를 신의 뜻으로 합리화하는 자가 많죠. 너무나 많은 살인자의 눈에서 광기 어린 신앙을 보았어요. 선행과 약자를 돕는 의로움만이 참된 믿음과 의로움의 모습이에요. 신의 뜻도 당신의 머리와 가슴 속에 다 들어있어요. 매일의 행동이 당신의 선악을 결정하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수집사와 권사이셨고 내 동생은 지방 소도시에서 부목사로 재직 중이다. 나도 모태에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20대 초반까지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하지만 개신교의 극단적인 폐쇄성과 역사적인 과오들을 접하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신앙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우리 사회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선뜻 대답하기 어렵게 되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13)

또 예수는 신자가 지켜야 하는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서기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29~31)

요컨대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결국 '사랑'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첫 번째요, 두 번째는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갔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자신의 가족만큼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최소한 그들을 증오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굳이 십자군 전쟁 당시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개신교가 과연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의심스럽다. 특정한 대상 예컨대 성소수자나 타 종교의 신자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공격하며 그것으로 영향력을 유지하거나 키우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의 이름으로 현실 정치에 개입하려고 하는 자를 과감히 내치지 못하거나, 5.18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고 쿠데타로 집권하여 수많은 권력형 범죄를 저지른 자의 아들을 목사로 받아들이는 종교가 말하는 '사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나는 그저 망연할 뿐이다.






나는 평생을 예루살렘을 위해 헌신했지. 모든 것을 바쳤다네. 처음에는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서야 진정 우리가 돈과 땅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 깨달았네. 수치스럽군. (......) 주님께서 함께하시길. 그 분은 더 이상 나와 함께하지 않으시니.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칼 마르크스가 종교에 대해 남긴 이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듯 종교도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종교,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종교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우리가 늘 신의 이름을 참칭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교황 우르바노 1세는 십자군 전쟁을 선포하면서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고 했다. 자신의 세속적, 종교적 권위를 세우기 위함을 감쪽같이 신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이다. 우리는 주위의 수많은 종교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늘 그들의 가르침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 영화는 진정한 종교인, 진정한 신앙을 갖으려는 사람은 어떤 자세로 자신이 믿는 신과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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