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보씨 Apr 23. 2021

새삼 느끼는 <매트릭스>의 위대함

[영화 리뷰]서복(2021)

동료를 잃은 트라우마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지병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전직 정보부 요원 '민기헌'(공유 분)은 과거 상관이던 '안 부장'(조우진 분)에게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인 '서복'(박보검 분)을 안전한 곳까지 이동시키라는 지시를 받는다. 사실 '서복'은 단순한 복제인간이 아니라 외부의 공격 등으로 인해 죽지 않는다면 영원히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염동력과 같은 초능력을 쓸 수 있는 존재였다. '서복'과 동행하던 중 '기헌'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력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서복'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기헌'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존재로만 여겼던 '서복'과 점점 인간적인 교류를 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주관적인 것이기에 동의하지 않을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액션과 철학을 가장 잘 버무린 영화가 워쇼스키 형제(물론 지금은 자매가 되었으나 당시만 해도 형제였으니 이렇게 부르겠다.)의 영화 <매트릭스>라고 생각한다.


장자의 호접몽 고사부터 존재론까지 여러 철학적 화두를 오락 영화에 잘 녹여 냈고 장 보드리야르의 책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적절한 미장센의 사용도 이 영화가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밖에 없는 대단한 영화임을 잘 보여준다.


말이 쉽지 특정한 마니아층을 위한 예술 영화도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한 오락 영화에 철학을 적절히 믹스한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워쇼스키 형제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고 그로 인해 명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매트릭스> 트릴로지 이후에 그들이 만든 영화가 평단과 관객들 모두에게 <매트릭스>만큼의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가진 재능을 모두 <매트릭스>에 쏟아부어서 그렇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이용주 감독의 <서복>은 인간의 유한성과 그로 인한 두려움, 영원에 대한 동경 등과 같은 철학적인 문제를 SF 액션이라는 장르 속에 녹여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와 비슷한 궤를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서복>은 <매트릭스>가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새삼 느끼게 하는 정도의 역할 외에는 딱히 보여준 게 없다.


유전자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복제인간을 인간으로 대할 것인가, 아니면 돼지와 같은 가축으로 대할 것인가. 인간의 유한함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국가라는 추상적 대상을 위해 개인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가 등등의 철학적 화두를 이 영화는 전달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유한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나 싶다. 주인공인 '기헌'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자신을 병을 고치기 위한 목적으로 '서복'과 동행하게 되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인'이라는 대기업이 유전자 조작 실험에 거금을 아끼지 않고 투자했던 이유는 '서복'의 골수를 이용해 영원히 살고자 했던 기업 오너의 욕심 때문이었다. 결국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를 끌고 가는 것이 바로 유한함에 대한 두려움과 영생에 대한 욕구인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철학적 문제 제기는 별로 와닿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충분히 훌륭했다. 특히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은 '서복'의 순수함을 연기하는 박보검의 연기는 아주 좋았다. 하지만 연출이 너무나도 부실하다. 뭔가 깊은 화두를 던지려고 하는 듯하지만 수박 겉핡기와 같이 끝나고 만다. 그렇다고 액션 연출이 훌륭하지도 않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결국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영화이다. 둘 중에 한 가지에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예 철학적인 쪽으로 연출하든지 아니면 아예 액션에 포커스를 집중하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장르가 공유인 영화."

이 영화를 같이 본 일행의 한 줄 평이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공유와 박보검의 비주얼과 연기력은 훌륭했으나 그 외 나머지 요소들은 모두 다 뭔가 부족한 영화였다. 언제쯤 우리도 <매트릭스>와 같은 국산 걸작 SF 영화를 만나게 될는지...



여담 한 마디.

실험복을 입은 '서복'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자 '기헌'이 옷가게에 들러 트레이닝복을 구매하고 입게 한다. 도대체 그 유치찬란한 트레이닝복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일까? 보는 순간 육성으로 "센스하고는..."이라며 실소가 나왔다. '서복'의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는 생각은 들지만 굳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했어야 했나?

매거진의 이전글 잘 만든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종교적 성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