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것은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최신형의 기기나 물건이 성능이 좋고 사용하기 편한 것은 당연하지만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은 물건들은 그 나름의 위엄을 자랑한다. 낡고 오래된 가죽 제품, 빛 바랜 다이얼의 수동 시계, 렌즈에 흠집 몇 개쯤 훈장처럼 달고 있는 카메라들. 이런 물건들은 그 물건이 거쳐 왔을 세월을 회상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낡은 물건들을 좋아한다.
1950년대에 생산된 이안반사식 카메라 롤라이플렉스 오토맷을 손에 넣었을 때의 짜릿함이 기억난다. 노출계도 달려있지 않고 필름을 어떻게 끼워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그 아름다운 디자인만으로도 나를 매료시켰다. 이 낡은 카메라와 잘 어울리는 흑백필름을 장착하고 순천 드라마세트장을 찾았다.
어릴 적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던 골목길을 떠오르게 하는 풍경이다. 가난한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서 저 비슷한 골목길들을 몇 번이나 옮겼던지... 하지만 아무리 고달프고 힘든 기억이라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경우가 더 많지 않던가. 그래서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나 보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에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사진은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만 기억 속의 아름다운 것들은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안식처로써 남아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