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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May 04. 2020

자본의 탐욕과 서스펜스의 묘한 결합

[영화 리뷰]공포의 보수 Le Salaire De La Peur(1953


공포의 보수 Le Salaire De La Peur (1953)

감독 : 앙리 조르주 클루조(Henri-Georges Clouzot)

원작 : 조르주 아르의 <공포의 보수>

출연 : 이브 몽탕(Yves Montand), 찰스 버넬(Charles Vanel), 피터 밴 아익(Peter van Eyck) 등

상영시간 : 148분

흑백 영화




1. 시놉시스  


남미의 한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하루하루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린 것은 미국의 거대 정유회사가 마을 근처의 유전을 개발하면서 매장된 막대한 양의 석유를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 프랑스에서 건너온 마리오 역시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마리오는 주점에서 일하는 린다와 사랑에 빠지지만 가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갈등한다. 어느 날 미국의 정유회사가 개발 중인 유전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게 되고 담당자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극도로 민감한 폭발물인 니트로글리세린을 화재가 난 유전까지 운반할 네 명의 운전사를 마을 사람들 중에서 선발하려 한다. 여기에 지원하여 선발된 마리오와 조, 빔바와 루이지는 목숨을 건 운행에 나서는데...




2. 서스펜스 영화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라면 여러분은 누가 떠오르는가? 대부분의 영화 팬들은 아마 알프레드 히치콕을 꼽을 것이다. 히치콕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과의 대담집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서스펜스를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삐걱거리는 문소리로 서스펜스를 자아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두운거리에서 죽은 고양이와 폐물들이 나뒹구는 것보다 밝은 대낮에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더 흥미 있습니다.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알려드릴게요. 네 사람이 포커를 치러 방에 들어갑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네 사람 모두 뼈도 못 추리게 됩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단지 놀랄 뿐이죠. 그러나 나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남자가 포커판이 벌어지는 탁자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사람은 의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시한폭탄의 초침은 폭발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은 무의미한 대화도 관객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것이죠. 관객은 ‘지금 사소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조금 있으면 폭탄이 터질 거란 말이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폭탄이 터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죠. ‘차나 한 잔 하지.’ 바로 이 순간 관객의 조바심은 폭발 직전이 됩니다. 이때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라는 겁니다.”

히치콕의 말에서 잘 드러나듯이 서스펜스의 핵심은 ‘조바심’이다. 관객이 심장을 부여잡고, 발을 동동 구르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라면 서스펜스 영화로서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알프레드 히치콕과 비교할 만한 앙리 조르주 클루조


히치콕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겠지만 헐리웃에 알프레드 히치콕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있다고 할 정도로 클루조 감독은 히치콕 감독의 라이벌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스릴러와 서스펜스의 대가였던 히치콕만큼이나 클루조 감독도 훌륭한 스릴러와 서스펜스 영화를 만들어 낸 감독이다. 스릴러로는 <디아볼릭>을, 서스펜스로는 <공포의 보수>를 나는 높게 평가하고 영화 팬이라면 꼭 봐야 하는 영화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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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극도의 긴장감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서스펜스 영화의 미덕은 조바심으로 관객의 심장박동을 빨라지게 만들고 단 한 순간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포의 보수>는 정말 대단한 서스펜스 영화이다. 이 영화는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하지도 않고 좀비나 유령,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반부터 관객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 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공포의 보수>는 전체 상영 분량의 1/3 정도를 아무 희망도 목표도 없는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아주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너무도 지루하기에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즐길거리를 찾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초중반의 지루함을 참고 영화를 보다 보면 니트로글리세린을 두 트럭에 나눠 싣고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언덕과 산길을 주행하는 후반부에서 엄청난 긴장감을 맛볼 수 있다. 극도로 조심하지 않으면 운전자를 산산조각 내버릴 만큼 민감하고 불안정한 폭탄을 등 뒤에 두고 돈을 벌기 위해 트럭을 운행하는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고 나면 마치 자신의 등 뒤에 니트로글리세린이 있는 것처럼 뒷목이 뻣뻣하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거기에 클루조는 가학적인 기발함으로 두 트럭이 경주하는 울퉁불퉁한 산길에 수많은 장애물을 채워 넣었다. 트럭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굽이길과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교각들은 폭발물을 적재하지 않은 상태였더라도 위험하기 짝이 없고, 바닥이 패인 웅덩이나 굴러 떨어지는 바위는 미세한 충격으로도 폭발할 수 있는 위험물질을 실은 트럭과 운전자들에게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위협이다. 덩달아 관객까지도 어느새 자신의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5. 자본의 탐욕과 비인간성


하지만 이러한 서스펜스만으로 이 영화를 훌륭한 영화라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서스펜스 영화라는 매체적 특성에 자본주의의 탐욕과 비인간성을 비판하는 주제의식까지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천성이 게으르다거나 낙오자들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거대한 미국의 다국적 정유회사 덕분에 모든 일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 회사는 자신들의 잘못으로 유전에 불이 나자 자기 회사의 직원이 아닌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위험 물질을 운반하는 일을 맡긴다. 위험의 외주화,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낯이 익은 장면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일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운전을 할 수 있는 모든 마을 사람들은 니트로글리세린을 운반하는 일에 자원하게 된다. 자본의 탐욕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1953년에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에서 2020년 대한민국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어렵고 힘들지만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임을  <공포의 보수>는 잘 보여준다.




6. 총평


이 영화는 자본주의 비판과 서스펜스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요소를 잘 버무려 낸 맛있는 퓨전 음식같은 영화이다. 더불어 마리오를 연기하는 이브 몽탕의 젊고 매력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 고전은 시대를 뛰어넘어서 인간의 삶과 사회를 진지하게 고찰하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인정을 받는다. <공포의 보수>는현대 영화의 화려한 카메라 워크나 CG, 음향 효과 등이 없이도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서스펜스 영화의 미덕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제는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가 깊이 되돌아보고 성찰해야만 하는 깊이를 담고 있다. 많은 영화 팬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더 많은 클래식 명작 영화들을 찾아보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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