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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후 세시

꼰대로 보일까 망설이는 마흔들

by 공간여행자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또는 조금 더 선배인

지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걱정 중 하나가

자신이 꼰대로 보일까 하여

하고 싶은 말을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다.


8090년대에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들은

'하라면 해!'라던가 무조건 '네!' 하는 사회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던 세대이다.

'각자의 개성'이라는 단어에 반응하기 시작한 세대이다.


그들의 이전 세대는

8.15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경주마였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과정에서

소외되고 무시되는 개인의 희생은 당연했다.

지금의 부당함과 불합리를 참고 견디면, 후에 더 크게 보상받을 것이라 믿었다.


실제로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다수의 희생에 비해 보상받는 이들은 소수였다.

지금 참으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온다며 꾹꾹 눌러온 상자가 터져 나왔다.


8090세대는 경제성장과 국가부도위기로 급변하는 대한민국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와 같은 캠페인 아래

4인 가족으로 아파트에 살며,

해외여행 자유화(1989)와 대중문화를 자연스럽게 소비하고 만들기 시작한 세대이다.

기성세대들은 이들을 '남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세대. 당찬 세대'라고 표현하였다.


오렌지족 열풍에서 IMF까지는 1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에 IMF 사태가 터졌다.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면 되는 성공의 사다리가 무너진 것이다.

무한도전 116회 중에서

이제 누구도 나의 앞날을 보장해 줄 수 없다.

그러면 지금의 부당함을 참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윗세대들은 참는 것이 당연했다.

참지 않으려 하는 8090세대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덧 이들은 누군가의 상사가 되었고,

내가 시집살이를 호되게 겪었으니 나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한 시어머니처럼

이 정도면 합리적이고 친근한 상사라 자부했을 것이다.


그런데 꼰대라니!

내가 얼마나 힘든 시집살이를 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편하게 대해주는 건데

어째서, 왜, 내가!


8090세대들이 꼰대라는 단어에 민감한 이유는

우리가 가장 싫어했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꼰대라는 소리를 듣느니 그냥 싫은 소리 안 하고 내가 참고 말지.' 하게 되는 것이다.


친한 동기가 회사에서 업무상 연결되어 있는

다른 부서의 팀장이 부친상을 당해서 조문을 가야 했는데

자기보다 아래 연차 직원들은 당연히 안 가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같이 가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며 이제는 위아래 모두 눈치를 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의견이 나뉠 거라 생각한다.)


동기 생각에는 물론 개인적으로는 나와 연관은 없지만

사회생활에서는 얼굴을 보고 인사를 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적어도 한 두 명은 따라나설 줄 알았지만, 다들 자신의 눈을 피하는 분위기에

"응 안 갈 거지? 나 혼자 다녀올게."라며 사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단다.

그 이야기에 나는 한마디를 보태었다.

"아마 그 친구들은 실장님이 왜 저런 이야기를 우리한테 하시지라고 의아해했을걸?"


사실 우리가 어느 단체나 조직의 막내였던 시절,

우리의 말과 행동은 선배들의 뒷목을 여러 번 잡게 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어 너무 미안한 선배도 있고,

아무리 생각해도 여전히 별로인 선배도 있다.


그 여전히 별로인 선배를 우리는 꼰대라 여겼다.


우리 윗세대는 싫어도 군소리 없이 했던 세대라면

우리는 싫다고 말하거나 온갖 싫은 티를 내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였다.

그리고 우리 다음세대는 싫다고 말하고 안 하는 세대라고 느낀다.


어쩌면 이런 세대차이는 현재뿐만 아니라 지금껏 반복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제 더 이상 젊지도, 아직 늙지도 않은 내가 중간에 끼인 세대를 겪는 것이 처음인 것일지도.


그래도 꼰대처럼 보일까봐 꼭 해야 할 말까지 삼키지는 말자.

정말 잘못인 줄 몰라서,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해줘서 잘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내가 모르는 새로운 이슈나 문화에 대해서는 물어보자.

(절대로 '요즘 뭐가 유행이야?'와 같은 질문은 하지 말자. 질문은 언제나 구체적으로)

'모르면 물어보고 해!' 보다는 상사든 신입이든 모르는 건

서로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즘은 '꼰대'라는 단어가 너무 흔해져서 오히려 예전보다 반감은 덜해진 듯하다.

다행이랄까.

그래도 역시 꼰대보다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





*8090세대란? 1980년대~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 보통 1960년대생~1980년대생까지를 이른다고 한다. 범위가 너무 넓은 것이 아닌가 싶지만, 1990년대~2000년대에 20대를 보낸 세대를 일컫는 단어가 없어 그대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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