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를 동경한 어느 소비러의 고백
2019~2020년도까지 2년 동안 옷, 가방 그리고 신발에 쓴 금액을 따져보니 대략 천만 원대였다.
한 달에 45만 원가량 쓴 셈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할 수도 있지만,
나의 한 달 예산 중 패션 비용으로 책정한 것은 20만 원이다.
그리고 현재 내게 남은 것들도 따져보면 절반도 안 되는 값어치이다.
사실 이런 것을 따지게 된 것은, 아껴보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한 것인데,
2년 동안 같은 소비와 후회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다짐 이전, 나를 설레게 했던 단어들
'패밀리세일'
'1+1'
'아울렛'
'면세품'
그러다 돈을 좀 모아야겠다는 정신이 든 후 검색한 단어들
'기본템'
'데일리백'
'정리'
'미니멀 라이프'
이상하게 결국은 소비로 연결되는 알고리즘
특히 미니멀 라이프는 꽤 멋져 보였다.
물리적인 짐 = 심리적인 짐
빈 공간이 많아질수록 마음의 여유도 넓어진다는,,,
사실 나는 잘 사기도 하지만, 잘 버리기도 한다.
가구가 집안에 꽉 차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쓰지 않는 물건이 집안에 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여행용 가방 하나만 들고 언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삶을 동경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책상 하나
여행용 배낭 또는 캐리어 하나에 담긴 옷가지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삶은 아니다.
어쩌다 나의 본진에서 멀리 떨어져 타향살이를 하며
본의 아니게 혼자 집에 있는 시간들이 늘어가며
계속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삶은 어떤 걸까?
깨달음. 1
돌이켜보니, 그동안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연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브랜드 로고가 슬며시 드러나는 가방이 있어야 했고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 것만 같은 신발이 필요했다.
원래 가격보다 할인된 옷들을 잔뜩 입어야만 손해를 보지 않는 것 같았다.
여행을 가서도 남들 다 사 오는 쇼핑템을 사와야만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 한 번에 100만 원을 쓰기에는 간이 쫄려서,
결국은 10만 원씩 10번을 쓰는 어리석은 소비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샀던 그 물건들이 지금도 나에게 즐거움을 줄까?
사실 이런 소비는 결제하는 그 순간이 가장 짜릿하고 행복하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느 하루는 가지고 있는 운동화를 꺼내서 쭉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어느 하루는 가방을, 어느 하루는 옷을,,,
한 번에 카테고리 별로 모아보니,
기본템이 데일리템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방황했구나 깨닫고,
유튜브 추천 영상들을 열심히 봤다.
데일리로 들 수 있으면서 있어보는 가방 하나를 질렀다.
365일 중 360일을 들고 다녀 가방값을 충분히 뽑았다며,
많은 추천을 받았던 그 가방은 나에게도 있었는데 이제 없다.
(구입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처분하였다.)
깨달음. 2
나의 데일리백은 그야말로 나를 기준으로 골라야 했다.
나의 체형, 나의 나이, 내가 평소 가지고 다니는 짐의 양, 내가 평소 입은 옷 스타일,
그리고 내게 편한 가방의 생김새와 드는 방식
그렇게 나를 기준으로 두고 찾고 찾아 가방 후보군을 두었고 매장에서 직접 보고 결정했다.
쇼핑 아이템을 추천하는 영상과 비우는 삶을 권하는 영상 사이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가면서
사들이기와 비우기를 반복했다(마음도 갈팡질팡).
깨달음. 3
쇼핑이 하고 싶거나, 정리를 하거나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템을 골라보았다.
그게 왜 좋은지, 왜 나랑 어울리지 생각하다 보면 충동적인 쇼핑은 막고, 정리는 보다 수월하게 해 주었다.
자주 손이 가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들은 나에 대해서 알려주는 또 하나의 정보이다.
내가 어떤 색이 어울리는지, 넥라인은 V형이 어울리는지, 바지핏은? 바지 길이는? 소재는?
나는 블랙과 골드 장식을 좋아하고, 기장은 아주 길거나 아주 짧은 것
그리고 아무리 디자인이 좋아도 피부에 닿는 촉감이 거칠거나, 사용하기 불편하거나 귀찮으면 절대 쓰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패션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에 해당되었다.
이제는 쇼핑영상도 정리 영상도 보지 않는다.
사실 보게 되더라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제 나의 삶에 필요한 나만의 필수템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필수템의 개수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작으로 나는 앞으로 최소 5년간 신발을 사지 않아도 된다.
나의 신발 필수템들이 모두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검은색과 하얀색 구두, 검은색과 하얀색 부츠, 여름 샌들, 슬리퍼, 흰색 스니커즈, 로퍼, 러닝화
(물론 이것은 나의 기준이다.)
그럼 필수템이 아닌 신발들은 모두 버려야 할까?
필수템에 변주를 주고 싶을 때 신을 신발들도 함께 남겨둔다.
다만, 필수템 외에는 헐어버리게 되더라도 다시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야 겨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나를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에 소비를 계속할 것이다.
그것이 내 기준의 미니멀 라이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