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야 하는 방향을 찾아서
"너무 예쁘죠?"
아이의 수영 레슨에 데려다주고 인사를 나눈 후 웃고 있는 나에게 한 할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잔잔한 미소로 아이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더없이 예쁜 것을 보는 시선에서 따듯함을 느낀다.
막내는 이제 초등 3학년 9살이다. 아직은 엄마말도 잘 듣고 눈치도 곧잘 보는 착한 아이.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내 의지로는 무엇도 할 수 없고, 한다 한들 잘 되지 않는 청소년시기가 올 텐데 그때도 이렇게 예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로서 할 수 있었던 것, 해야 했던 것,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내가 아이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부족한 부분은 잘할 수 있도록, 잘하는 것은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아쉬웠던 부분을 아이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교육시키고 가능하다면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나에게서 아쉬웠던 부분은 내 아이에게 아쉽지 않을 수 있고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아이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내가 가보지 못한 미래를 살 아이들은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이를 위한다고 하는 것들이 아차 싶다.
아이는 그 아이만의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을 보고 더 많은 비중을 두며 경험하며 자란다. 나의 울타리에 가두어 아이를 보고 있지 않은지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볼 일이다.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주변에 휘둘려 이것저것 나의 가치에 기준을 두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와 미래에 집중하는 능력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일 것이다.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로 키울 것인지, 한 발짝 뒤에서 아이를 지켜보며 응원하는 응원단장이 되어 용기를 북돋워 줄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 내 아이가 미래를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될지 모른다.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주저함 없이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아이를 막아서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뭔가를 해주려고 애쓰는 대신에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한 부모의 방향성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