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설령이에게.
설령이는,
이름처럼 새하얀 몸을 하고 있었다.
눈 '설'자에, 골짜기 '령'자를 쓴다고 식구 중 누군가가 말해서 이름이 [설령]이가 되었다. (실제로 골짜기 령이라는 한자는 없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설령이가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방 이불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아주 자그마했는데 빵빵하게 부푼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숨을 쉬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조그마한 배꼽에 조심스레 단추를 올려놓았다. 맞춤인 듯 꼭 맞았다.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작은 몸에 무언가가 튀어서 보니 벼룩이었다. 진도라는 시골에서 온 설령이는 벼룩도 데리고 왔다. 벼룩이 튄 자리가 가려운지 발로 긁으려 하는데 발이 너무 짧아 닿지 않았다. 대신 긁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때 난 설령이가 너무 무서워 팔이 닿지 않을 만큼의 안전거리를 뒀다.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구경하듯 설령이를 보았다.
그날 밤 잠을 자다가 이상한 감촉에 눈을 떴다. 벌떡 일어났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이 미친 듯 심하게 뛰어서 숨이 곧 멎을 것만 같았다. 설령이었다. 설령이가 내 베개를 베고 누워 자고 있었다. 아주 작아서 내 베개의 반도 차지하지 못했지만 나는 너무나 무서워서 내 베개를 버리고 언니의 배를 베고 누워 웅크리고 떨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설령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설령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쌍꺼풀이 크게 진 눈이 끝 모르게 깊었고, 갈색 눈동자는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너무나 구슬프게 바라보아서 설령이의 눈을 가깝게 마주 바라보는 것을 나는 좋아했다.
설령이는 나보다 컸다. 두 발로 일어서면 내 키를 껑충 뛰어넘었다.
아빠는 설령이를 위해 나무로 된 튼튼한 집을 만들어 주었다. 그림책에 나오던 삼각형 지붕에 사각형 몸체를 가진 그 집과 똑같은 집. 그 집은 너무 커서 내가 두, 세 명은 들어앉아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는 그 안에 누벼진 두툼한 솜이불을 깔아주었다. 설령이의 취미는 그 이불에 물건을 숨기는 것이었다. 내 머리 고무줄, 손바닥만 한 곰인형, 일기를 적던 수첩. 잊어버렸다 생각했던 물건들은 한참 뒤 설령이의 이불 곳곳에서 나오곤 했다. 가끔은 쥐도 숨겼다. 나무로 된 한옥집에는 쥐가 많이 살았는데 설령이는 입으로 쥐를 잡아 살살 가지고 놀다가 이불에 숨겼다. 그래서 가끔은 구더기 핀 쥐를 이불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설령이는 무엇이든 잘 먹었고, 잘 쌌다. 설령이의 똥은 나의 똥보다 크고, 높고, 냄새도 깊었다.
그렇게 설령이는 건강했다.
하지만 설령이도 나이는 먹었다.
항상 대문을 들어서면 내 가슴에 두 발을 턱 올려서 숨을 못 쉬게 하던 설령이.
그림같이, 그냥 원래 그랬던 듯이, 숨 쉬듯이 내 옆에 있던 설령이여서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이가 없을 수도 있는 그 순간을.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왔는데 설령이가 나오지 않았다. 내 가슴에 육중한 발을 턱 하고 올려놓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잠을 자나보다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알았다. 그 집에 설령이는 없다는 것을. 더 이상 나에게 꼬리 칠, 나의 얼굴을 침범벅해 놓을, 나의 가슴에 발도장을 찍어 줄 설령이는 없다는 것을.
아빠는 설령이를 큰아빠에게 보냈다고 했다. 설령이는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서 데리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 많이 슬프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했다. 가서 잘 살기를 바랐다.
아빠가 말한 문맥 그대로, 설령이는 나이가 들었으니까, 그래서 경험이 많은 큰아빠에게 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공허했다. 이유 없이 슬프고 자주 가슴이 막혔다. 설령이의 눈동자가 자꾸만 떠올랐다.
어느 날 설령이가 꿈에 나왔다. 안아보고 싶은데 안을 수가 없었다. 설령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만들었던 그 간극만큼, 딱 그만큼 설령이는 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제서야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는 설령이가 하늘에 있다고 했다.
울지 않았다. 그냥 아빠가 말한 문맥 그대로,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설령이는 하늘에서 살고 있다고. 그렇게만, 딱 그만큼만 믿기로 했다.
나는 설령이를 키웠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설령이가 나를 키웠다.
내가 설령이를 안아주었다 생각했지만, 사실은 설령이가 나를 감싸주고 눈물을 핥아주었다.
내가 설령이를 놀아주었다 생각했지만, 외로운 사춘기를 보낼 때 내 곁에 있어 나를 웃게 해 준 건 설령이었다.
설령이는, 하늘에 있다. 하늘에 살고 있다.
그렇게 설령이는 내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