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팬데믹 시대가 열리면서 급작스럽게 전면에 떠오른 것이 있다면 아마도 웨비나[Webinar(web + seminar), 온라인 화상회의]일 것이다. 그간 해외와 미팅할 때나 갑작스레 해외 연사가 못 오게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간단한 건 메일과 유선전화로 얼마든지 비즈니스를 진행함에 어려움이 없었고 또 중요한 안건은 그를 빌미 삼아 해외 출장을 가기도 했었기에 화상회의 분야의 기술이 존재는 했으나 이렇게까지 우리의 일상의 한 부분이 되는 일은 없었다.
국제회의를 준비하면서 특히나 해외연사들이 오지 못하게 되고, 전시부스를 차리기 어려워지자 온라인 세상에 회의장을 세팅하고 전시장을 조성하는 것이 메인 화두가 되었다. 내가 있던 곳에서 온라인으로 국제학술대회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려해야 할 점이 정말 많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까지를 온라인으로 전환할 것이냐 하는 부분이 가장 먼저 고려할 점이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이 확정이 되어야 그에 맞는 베뉴를 섭외하고 운영 계획을 세울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정도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느냐의 문제는 참가자가 얼마만큼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할 것이냐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내가 담당하는 국제학술대회는 매년 3천여 명이 참가하던 학술대회인데 3일 동안 30개 정도의 세션을 운영하며 동시에 5~6개 세션이 진행되는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의 학술대회였다. 이 학술대회 수익으로 1년을 먹고사는 구조인 곳이라 이 학술대회가 성황리에 잘 마무리되는 것이 중요한 곳이었다. 세션 규모가 큰 만큼 전시도 꽤 크게 했는데 온라인으로 전환할 경우 참가자 등록율이 저조할 가능성이 크고, 또 이에 따라서 전시수입도 줄어들 수 있어 고민이 큰 상황이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똑같은 학술대회를 현장운영, 온라인 웨비나 그리고 하이브리드(온라인+오프라인)로 개최하는 경험을 했는데, 꽤나 소중한 경험이었고 무엇보다도 내 업무 케파에 대해서 확연히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현장으로 운영할 때와 웨비나, 하이브리드로 할 때마다 각각마다 중점을 둘 부분이 다르기도 하고 특징이 매우 다른데, 우선은 회의운영 파트에 주목해서 에피소드를 풀어볼까 한다.
I 현장운영
우선 국제회의기획자라면 현장운영이 일단 기본이라고 보면 된다. 프로그램이 세팅되고 나면 세션에 맞춰서 현장을 운영한다. 회의장을 실행계획에 맞게 조성하고, 시간 맞춰 운영을 하면 되는데 이 시간을 맞춰서 운영하는 것이 어렵다. 바로 연이어 뒤에 세션이 있는데 앞에 세션이 길어져 혼선을 빚지 않도록 현장에서 잘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일 난감할 때는 현장에 연사가 안 나타날 때다. 아침엔 연사가 늦잠을 자거나, 교통이 밀려서 못 오고 있거나 등록데스크에서 긴 줄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오후 세션 같은 경우, 점심을 먹고 시간 맞춰 안 온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을 찾아온 행사장을 헤매고 다니는 일이 생기면 골치 아프다. 외국인 중 연락이 안 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그런 경우, 끝까지 세션장 앞에서 발을 동동거리다가 좌장과 발표자들과 논의하여 발표순서를 조정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콘솔에서 혼란이 없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장 기자재가 아닌 본인 노트북을 사용하고자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현장에서 노트북 HDMI 젠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말썽이 나는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정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이 가장 난감할 때다. 전체적으로 노하우가 많이 필요하고 클라이언트와의 신뢰도를 많이 쌓아야하는 파트이면서 어떤 상황에도 차분하게 대응해야해서 굉장히 전문성이 높고 밀도가 높은 것이 회의운영 파트이다.
국제회의 같은 경우, 통역부스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통역 언어가 다양하고 많을수록 안내문이라던지 현장에서 통역수신기가 잘 나오고 있는지 등 준비하고 확인해야 하는 게 많을 때도 있다. 생각보다 아무 생각 없이 세션이 끝나고 통역수신기를 들고 가는 사람도 꽤 있어서 분실에도 대비해야 한다.
현장운영을 하면서 좋은 점은 참가자들의 피드백을 바로바로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준비한 것들이 얼마큼 참가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생동감이라던지 활력이 주는 에너지를 현장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성취감을 Max로 얻을 수 있다.또 행사 사진이라던지 어떤 결과물과 같은 성과를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I 웨비나Webinar
웨비나의 경우, 온라인 송출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송출에 문제가 생기거나 해서 세션을 듣는 사람들이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준비를 해야한다. 하지만 인터넷 상황이라는 게 늘 만반의 준비를 해도 어렵다. 가장 문제인 것은 보는 사람의 인터넷 환경이 좋아야 한다는 점이다. 보통의 참가자들은 문제가 생기면 행사 주최 측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먼저 하더라는 경험이 있다.
웨비나가 어려운 점은 또 한 가지, 생방송과 같아서 조그마한 사고가 나도 모두가 알아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스탭들이 콘솔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상황을 정리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웨비나는 연사나 좌장을 더 가까운 화면으로 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는지 눈치를 채기가 쉽고, 문제는 어떠한 이유로 방송사고가 날 때 수습하는 모든 과정을 생중계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뛰어가서라도 바로바로 소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능하지만 온라인은 다르다. 연사가 아예 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세션의 경우, 좌장, 연사, 콘솔 간의 소통이 잘 안 되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특히나 우리 쪽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좌장, 연사 쪽 인터넷 환경으로 인한 문제라면 더더욱 해결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전에 연사와 일정을 정해 발표환경과 최대한 비슷한 곳에서 Technical Check를 진행해 메모를 해두고 온라인 강의 플랫폼 이용방법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사전에 발표자료를 확보해 놓아서 연사가 자료공유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경우, 화면을 보며 전화로라도 발표를 진행할 수 있도록 긴급 연락처를 최대한 여러 개 확보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온라인의 경우, 해외연사를 찾아서 데리고 올 수도 없기 때문에 플랫폼에 시간 맞춰 접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아서 곤란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역시나 발표순서를 조정하며 끊임없이 전화폭탄을 퍼부어 겨우 연결된 적도 있었고 결국 노쇼로 펑크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다리가 후들거리는 순간들이었다.
웨비나를 할 때 연사만 현장에 오는 경우와 아무도 오지 않는 전면 온라인 웨비나를 운영해 봤었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다. 연사라도 현장에 와있으면 위에 언급한 온라인 환경의 문제를 최소화할 수가 있다. 그리고 연사를 대상으로 한 어떤 소규모의 현장운영이 가능해 일정 부분 후원을 받기도 수월하고 무엇보다도 이벤트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좋다. 아무도 오지 않는 경우,사전에 리허설을 더 꼼꼼히 해야 한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현장에서 스태프들끼리 집중해서 운영과 송출을 잘 해내면 되기에 여러모로 인사치레나 대접 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운영비나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어 더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기도 하다.
웨비나를 하면서 안 좋은 점이라면 이벤트가 끝이 나도 끝났다는 기분이 안 든다는 점이다. 뭔가 이벤트가 끝나면 '아 끝났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딱 나야 하는데 영 기분이 나질 않더라.
I 하이브리드(온+오프)
아마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장점과 단점을 모조리 섞어 극대화한 것이 바로 하이브리드일 것 같다. 이런 하이브리드는 누가 고안한 것일까.. 정말 운영할 때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힘들었다.
하이브리드의 경우, 현장과 온라인 어느 쪽 비중이 더 높냐에 따라 운영이 조금 달라진다. 코로나가 한참 기승이어서 인원수 제한이 있을 때 그를 넘기지 않기 위하다 보니 현장에 왔지만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참가자들의 불만이 있기도 했다. 여러 가지 행사 특성상 예약제를 시행하기 어려워 부득이 전체 등록인원을 기준으로 카운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었는데 그 때문에 온라인 송출을 동시에 진행하여 온라인으로 시청할 수 있는 시청룸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하이브리드를 준비할 때 어려웠던 점은 참가자들이 이미 여러 행사들을 거치면서 눈이 높아져 있었다는 거다. 물론 '틀어주는 대로 봐라' 라는 태도로 준비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년도에 전면 웨비나로 운영했을 때 호평을 받았었던 이력 덕분에,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참가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막연한 사명감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시청하는 사람들도 이질감 없이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세션장 중계를 보고 있다는 것보다는 웨비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자 했더니 더 챙길 것은 많아졌다.
현장은 현장대로 운영하면서 온라인 송출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게 가장 먼저였다. 중계가 아닌 웨비나를 운영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해외연사들을 제외하고는 현장 스크린과 온라인 송출 화면을 다르게 운영했다. 예를 들면, 현장 스크린은 발표자료만 풀 스크린으로 띄우지만 웨비나로 송출되는 화면엔 연사와 발표자료가 동시에 보이도록 디자인 슬라이드가 입혀져 나간다.
현장에는 연사카메라를 따로 설치하고 발표슬라이드는 연사가 공유한 화면을 송출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를 위해 연사는 정해진 발표시간의 30분 전에 플랫폼에 입장하여 대기하고 대기하는 동안, 발표자료를 공유하고 마이크와 카메라가 원활하게 작동되는지 확인을 거친다. 30분이나 대기 시간을 둔 이유는 현장 상황에 따라 앞 발표가 예정보다 빨리 끝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당일에 온라인에 접속했는데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처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모든 절차는 technical check를 하면서 안내하고 따로 가이드라인을 여러차례 보내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이브리드 행사를 치르면서 느낀 건,
1) 해외연사 등이 오지 않으니 연사료와 진행요원 인건비 절감 등 예산을 줄이면서도 양질의 강의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해외연사들과 함께하는 네트워킹 부대행사들이 열리지 않으니 행사의 다양성 측면에서 좀 아쉬움이 있다.
2) 현장과 웨비나의 단점이 시너지를 내서 폭발하고 각각의 장점은 미미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3) 참가자 접근성은 더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준비하는 팀은 진짜 엄청나게 고생이다.
하이브리드 행사를 할때쯤엔 행사 규모가 크고 여러모로 이중으로 확인해야 하는 작업들이 많았는 데다가 이때 모바일 앱까지 개발하면서 업무 난이도가 확 올라갔다. 거기에 나는 실무 PM의 역할이어서 일을 가르쳐주면서 진행해야 하는데 내 일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보니 어느 정도 포기하고 넘어간 부분들이 있어서 좀 아쉬운 것도 있었다.
위에서 대표적으로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경험을 공유해 보았는데, 이 외에도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에피소드들과 느낀 점이 있었다.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지만 같은 웨비나였어도 형태가 정말 달랐던 것도 있고, 현장마다 행사마다 조금씩 다 달라 너무도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실무 PM으로서 행사를 기획하고 이끌어가야 해서 웨비나를 공부하는 동안 머리가 정말 복잡했다. 어쨌든 내가 어떤 방식으로 끌고 갈지 제안을 해야 했고 우리 팀 구성원들이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에서 '해내지 못하면 어쩌지', '이게 잘 될까'라는 생각 때문에 두렵고 괴로운 상황도 많았다.
내적 갈등과 고민, 그리고 팀원들과의 고민과 논쟁.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느라 지금도 다시 보면 뿌듯한 자료들도 많이 만들었고, 치열하게 설득하고 고민하고 토론했던 회의영상들을 보면 업무 능력이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게 느껴져서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하다. 또 작게나마 팀 구성원들을 이끌어보면서 중간관리자로서의 내 모습을 좀 더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해서 좋았다.
하이브리드 행사를 준비하면서 거의 행사 한 달 전에는 매일 야근을 하면서 준비했는데,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해 우리 행사는 굉장히 호평받았지만 애석하게도 난 그를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양한 상황을 경험했고 다양한 형태의 이벤트를 기획, 운영해봤다는 것은 회의기획자로서 한 레벨 더 올라갔다는 징표인 것 같다. 어쩌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으니 기획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량을 쌓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제는 어떤 형태이든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 앞으로 더 멋진 기획자로 성장하게 해 준 멋진 경험에 감사한다.
그리고 모쪼록 이런 내 경험들이 같은 업에 계신 분들에게도 공감되는 포인트가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