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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A Sep 15. 2023

05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에피소드 2 - 잊을 수 없는 첫 데뷔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나도 2번의 인턴시절을 거쳐 사원으로 정식입사하여 첫 담당자를 맡았던 행사가 있었다. 첫 데뷔무대랄까.


그동안 진행요원, 인턴으로만 참여했던 행사에 내가 기획자로 첫 발을 내딛는 것이라 임하는 각오도 자신감도 남달랐다. 지금도 그런 객기?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처음 담당자를 맡았던 건 회사에서 매년 해오던 행사 중 하나였다. 이미 이 행사에 1번은 진행요원으로, 1번은 인턴으로 참여했던 적이 있어서 나름 나에게는 의미 있는 행사였다.


기존에 해왔던 이력이 있는 프로젝트여서 새로운 기획안이라고 할만한 건 없었다. 작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하면 되는 거여서 나를 포함 입사 동기 서너 명이 참여하기에는 무리가 없는 행사였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던 우리 회사의 엄마 같은 차장님이 PM으로 행사 준비를 하게 되었고, 내가 맡은 파트는 전시비즈니스미팅이었다.



I 전시


전시는 50여 개 부스 규모였으니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다. 전시는 사실 시작 전에 할 일이 조금 많고, 현장에 차려놓고는 그날그날 들어오는 민원을 해결하면 되는 일이어서 생각보다는 할만했다. 대신 그에 앞서서 전시와 관련된 공부를 꽤나 해야 했다.


전시 담당자가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전체 운영 계획을 확정한다. 업체 모집 일정 등 전체 운영 일정이나 규모, 장소 등을 확정하는 것이다. 일정에 맞춰 홍보책자를 만들어서 참가기업을 모집하고, 신청서와 각종 부대서류를 접수받아 전시시공업체와 조율을 하는 것, 모든 프로세스가 일정에 맞춰 작업이 되는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현장에 가서는 독립부스, 조립부스 각각 잘 세팅이 되었는지, 전기는 잘 들어왔는지, 현판이 잘 인쇄가 되었는지, 부스별로 신청서에 맞게 모든 것이 잘 세팅되었는지 확인하는 것,


행사가 시작하고 나서는 현장에서 그때그때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여나 문제는 없는지, 현장이 깨끗하게 잘 운영되는지 확인하고, 종료 후에 철거까지 잘 진행되는지 등을 확인하는 게 주요 일이다.


별로 할 일이 없다고 했는데 적어놓고 보니 꽤 많다.


전시 일 중에 제일 까다로웠던 건 추후에 부스위치를 배정해 주는 일이었는데 우리의 경우는 희망순위를 2~3 지망까지 받고 클라이언트와 최종적으로 논의해서 배치를 해줬다. 경쟁사끼리는 최대한 안 붙여준다거나 후원업체나 중요한 참가업체를 목 좋은 곳에 배치를 한다던지 하는 경우가 있었다. 최종 도면 발표를 하고 나서 업체들로부터 자리를 바꿔달라고 항의 혹은 하소연 전화를 받으면 최대한 조율가능한지 살피고 민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달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전시장이 처음 세팅되고 나서 주최자 사무실에서 전경을 내려다보자,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이게 내 첫 데뷔작이라니.



너무 설레고 기뻤다. 행사 준비하면서 가장 설레고 신날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항상 전날 밤 세팅이 끝난 행사장을 볼 때라고 이야기한다. 아, 난 이제 준비됐어.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다음날, 사람들이 와서 내가 그간 준비해 놓은 것들을 즐긴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세월이 지나고 몇 번을 해도 이만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아직은 없었던 것 같다.


정말 다행이었던 건 그나마 내가 맡은 해에는 정말 민원이 별로 없었고, 참가업체분들이 너무 즐겁게 계시다 가셨다는 거였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부스를 돌면서 어려움이 없으신지 살뜰히 챙긴 덕분일지 모르겠다. 가시면서 잘 지내다 간다며 챙겨주셔서 고맙다고 남은 기념품들을 한 가방 챙겨주셨는데 굉장히 뿌듯했다.






I  비즈니스 미팅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비즈니스 미팅이 약간 복병이었다. 원래는 비즈니스 미팅 매칭 프로그램을 웹사이트 업체와 계약을 했는데, 담당 팀장님이 다른 일이 많아서 이것을 빨리 못한다나 하는 핑계를 댔다. 그런 와중에 뭐 하나 부탁하면 며칠이 걸려서 해주는데 엉뚱하게 되어있다거나 하는 상황이어서 한두 번은 전화로 싸우기도 했다. (이런 핑계를 대는 업체는 지금도 나는 너무 좋아하질 않는다. 나조차도 그런 핑계는 대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 프로답지 않은 핑계다.)


그분은 내가 초짜인걸 간파하고는 PM이신 차장님한테 전화해서 내가 몰라서 그런다는  하는 일도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업체를 다루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요청을 하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노련하지 못해 내 상사까지 고충을 겪게 했나 싶어 아쉬움이 있다.


결국 일이 벌어졌던 건 바이어-셀러 매칭을 할 때가 되서였다. 바이어와 셀러가 웹사이트에서 신청은 다 했는데, 결과 공지 날짜까지 매칭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가 없다는 거였다. 업체 팀장님은 매칭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하고 견적을 냈고, 그 금액을 깎고 싶지 않으니 나에게는 클라이트에게 이야기해서 일정을 미루던지 하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프로그램이 완성되고도 오류가 없는지 테스트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그 일정까지 나오지가 않는 상황이었고, 클라이언트한테 사정을 봐달라고 하기에도 일정의 오차가 너무 큰 상황이라 그럴 수는 없었다.


다행히 바이어-셀러 미팅 경우의 수가 그렇게 크지 않은 터라 신청한 업체, 신청한 일정을 토대로 내가 미팅 일정을 수기로 짜도 될 것 같았다. 담당 PM에게 상황을 알리고, 도저히 날짜를 맞출 수도 없을뿐더러 이분들을 믿고 맡기기도 어렵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괜찮다면 내가 수기로 하고 그걸 시스템에 밀어 넣자고 제안했다.


그날 저녁 야근을 하면서 2-3시간 정도안에 미팅 일정을 다 짰다. 바이어-셀러 미팅 수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여러 차례 검토하고 업체에 내가 짠 미팅 스케줄대로 시스템에 욱여넣어달라고 보냈다. 업체에서 자기네 미팅 스케줄을 인쇄해서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이 되어있었는데 스케줄대로 제대로 시스템에 적용이 되었는지 인쇄가 잘 되는지 계속 체크했다.


현장 운영은 사전에 조율해 놓은 스케줄대로만 운영하면 되니 편안했다. 다만 현장에서 추가 미팅을 요청하는 분들의 경우, 바이어에게 의견을 묻고 추가로 매칭을 해주기도 했다. 우리 바이어는 전부 해외에서 초청해 온 곳이었다 보니 이번 비즈니스 미팅이 아니면 따로 만나기가 어려운 편이어서 추가 미팅을 원하는 곳이 꽤 있었다. 의외로 추가 미팅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받은 곳도 있어서 그런 분들은 너무도 고마워했고 나도 뿌듯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첫 데뷔행사라 여러모로 아쉬운 점도 미숙한 점도 많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잘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더불어 사회초년생이라면 으레 겪을 수밖에 없는 초짜에 대한 서러움도 충분히 겪은 것 같다.


저연차 시절엔 같이 일하는 거래처며 클라이언트며 나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좀 더 날카롭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클라이언트는 몇 번이고 그게 맞는지 더블체크를 해대고 끝끝내 못 미더운 부분은 내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맞는지 확인을 하기도 했다. 자존심의 문제라 여겨서 이런 부분을 줄이고 싶었기에 클라이언트와 회의가 잡히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자료를 준비해 갔다. 예상질문도 생각해서 필요하다 싶은 자료는 안 쓰더라도 일단 바리바리 챙겨갔다. 회의만 있으면 한 짐을 들고 왔다 갔다 했는데 첫 클라이언트는 이런 내 모습을 기특하게 봐주셨다. 나중에 연차가 좀 차고 나서보니 그때 내가 정말 어설프게 준비해 간 브리핑을 그분이 바쁜 스케줄에도 기특한 시선으로 들어주셨다는 걸 알게 돼서 뒤늦게나마 너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한 번은 20대 중반의 어린애를 담당자라고 앉혀놨다며 면전에서 담당자를 바꿔달라는 얘기를 한 분도 있었다. 그땐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나도 지지 않고 아직 저랑 일 안 해보시지 않았느냐며 증명해 보이겠다고 한 번만 믿어달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분은 기가 차 했지만 회사에서도 담당자를 바꿀 여력이 없었어서 그냥 진행하기로 하셨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분에게 200%의 집중력을 쏟아냈다. 갑질이라 부를 수도 있을만한 상황이 간간히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오히려 그분을 붙들고 늘어졌다.  클라이언트사에서도 그분이 누구보다 일을 많이, 잘하는 분으로 보이실 수 있도록 빠른 업무보고와 자료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그분이 인정받는 것이
곧 내가 인정받는 것과 같았다.


클라이언트사에서 거기 업체 담당자가 일을 잘하네 라는 평가가 나올 때까지 붙들고 늘어졌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분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받았다. 나이도 어리고 초짜라 오해했다며 일을 잘한다는 것도 인정해 주셨고 일하는 동안 즐거웠다는 내용이었다.


거래처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 하나하나마다 장비나 시설, 시스템업체, 출판사 등등 거래처가 워낙 많은데 거의 오래근무하신 베테랑이신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내 디렉션을 따르지 않으실때도 많고 나를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저연차에 직급도 낮으면 더더욱 심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쓸데없는 기싸움을 걸어오는 경우도 태반이다.


처음엔 미숙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어 상사에게 SOS를 쳐서 해결하는 때가 많았다. 업무요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를 어떻게 프로답게 내는지, 이 분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지금은 닳고 닳은 과장이 돼버리고나니 능수능란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일하는데 이런 걸로 얼굴을 붉히거나 힘들지는 않은 수준이 됐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때가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나고 정말 힘든 시기이지만 치열하게 잘 버티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잘 쌓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어떤 사수를 만나는지도 중요하다. 신입시절엔 업무능력을 키우는 것 외로 클라이언트나 거래처를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컨트롤하는지 배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짬이 차도 그걸 잘 못하면 찾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결국 회사에서 배정되는 프로젝트만 할 수밖에 없다. 능력 있는 분들은 클라이언트가 다른 곳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새 프로젝트가 있을 때 담당 PM을 OO 씨가 맡아주면 좋겠다고 연락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런 능력이 없으면 결국 승진이든 담당업무든 일이 힘들어지고 여러모로 한계가 빨리 찾아올 수밖에 없다.

 

직장생활에 정답은 없겠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련도 충분히 겪어야 비로소 성장하는 것 같다.


제회의 기획자라는 직업이 꼭 기획력이 있는 것만으로는 될 수 있는건 아니다. 항상 일하는 곳에 함께하는 분들과의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걸 꼭 마음에 담고 업무에 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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