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ecialA Jul 27. 2023

01 OO씨는 무슨 일을 하세요?

‘나 OOO은 _______이다’


화면에 비추는 커서가 깜박이기를 수천번.. 여전히 한 글자도 적기 어려웠던 날이었다.

벌써 2년 전, 이 한 줄에 답을 찾기 위해 정말 오랜 시간을 고민했고 그 끝에 내가 내린 답은 이거였다.



'나는 기획자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낯선 누군가를 만났을 때, ‘OO 씨는 어떤 일을 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때마다 ‘음… 사무직이요?’라고 곤란한 표정으로 답했다. 연차가 쌓이고, 나이를 먹어도 이 질문이 가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하는 일은 전문의 영역이면서, 또 전문의 영역이 아닌 모호한 범주에 있는 일이었는데 소위 말하는 ‘아는 사람만 아는’ 분야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내가 스스로를 기획자라고 정의내릴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기획’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춘 결과였다.



ㅣ 기획, 그게 대체 뭔데?


'기획'이라는 게 대체 뭐냐라고 다소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라고 한다면 그 광범위함에 모호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내린 기획의 정의는 큰 틀에서 ‘어떤 주제, 이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현실화해 가는 과정’이라고 하고 싶다.


국제회의 기획사로 사회에 발을 내딛은 이후로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분야의 ‘기획’을 경험했다.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고,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VIP리셉션이나 회의를 기획하기도 하고,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인력 운영을,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비즈니스 미팅을 기획하기도 했다.


보통의 회사원이라면 마케팅이면 마케팅, 홍보면 홍보, 인사면 인사, 재무면 재무를 몇 년을 맡아서 하며 자기의 커리어를 확고히 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적어도 내가 있는 곳에서는 국제회의 기획사로서의 역량을 평가할 때 ‘어떤 프로젝트가 되었든, 얼마큼 해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주요했다.


보통 프로젝트에서 한 파트를 맡게 되면 제안, 기획단계부터 현장 운영, 마지막에 정산, 결과보고서 마무리까지를 진행하게 된다. A to Z를 모두 해야 하는 경험을 통해서 나는 짧은 시간에 ‘어떤 일이든 맡게 되면 해낸다’는 알 수 없는 나만의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했고, 그 점은 나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강점 중의 하나였다.


연차가 차면서는 점점 더 전체를 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일로 업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었다. 바이오헬스, 의료, 기초과학, 환경, 교통, 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그 프로젝트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 분야에 온전히 녹아들어 성과를 도출해 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 일을 하는 동안은 나는 나 자신을 ‘국제회의 기획사’라 칭했다.

그러던 중 나를 눈여겨보시던 분의 제안을 받아 지금의 바이오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게 됐다. 여기서는 경영기획실 제1호 직원으로서, 경영전략/인사총무/재무회계/사업개발까지 두루두루 경험을 하고 있은지가 어느새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ㅣ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기획자'다


이직하고 첫 1년 동안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여기서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에 대한 혼란으로 마음이 너무도 복잡했다. 스타트업 특성상 회사도 불안정하고, 모든 것을 세팅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었기에 혼돈의 카오스에서 나 자신도 굉장히 흔들렸다.


그 와중에서도 나 자신을 단단히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가 ‘기획자’라는 사실이었다. 
어떤 것이든 기획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스타트업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낯선 상황에 대처하고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직무에 대한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길을 가는 게 맞는 것인지, 다른 길로 가야 하는지, 다른 길로 간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내가 확실히 정하지 못한다면 그 어느 곳에도 내 자리가 있지 않을 거라는 냉정한 현실을 깨달은 지금,


‘기획자’라는 나의 정체성에서 출발해보려고 한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그간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공유하면서

제회의 기획자라는 직업을 보여주고 싶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초보 기획자들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기획자들 모두 함께 즐겨주시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