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E(기업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s), 컨벤션(convention), 전시(exhibition))산업에 대해 한번쯤 들어는 보았을 거다. 한 번쯤은 코엑스나 여러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는 큰 전시회나 박람회를 가본 적도 있을 거고, 뉴스에서 보도되는 정상회담이나 굵직굵직한 국제회의들의 개최 소식을 접한 적이 있을 텐데, 이런 일련의 이벤트들을 모두 포함한 것이 MICE 산업이다.
PCO라는 직업은 MICE 산업 중에서도 C에 해당하는 컨벤션에 주로 종사하는데, 사실 컨벤션이라는 것도 범위가 넓어서 컨벤션 행사 안에서 작게나마 기업회의나 인센티브투어, 전시를 포함하는 경우들도 있다. (반대로 PEO가 주관하는 페어나 박람회 등에 작게나마 다른 것들이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MICE산업에 대해서는 최근 아는 이가 많아졌다고 느끼지만 아직 국제회의 기획사(Professional Conference(or Convention) Organizer, PCO)라는 직업은 생소하게 느끼는 것 같기는 하다.
한국사회에서는 내가 가진 직업을 대부분 ‘대행사’라는 단어로 더 익숙하게 받아들이니까.
PCO로서 일하는 삶은 그렇게 녹록지는 않았다. 내가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대행사’가 가지는 위치와 역할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낮은 연봉에 야근, 주말근무 등이 너무도 당연했고, 업무강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었고, 클라이언트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누군가는 PCO가 무슨 줄임말인지 아느냐는 질문에 '대행사아니에요?'라고 답해 약간의 충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PCO라는 매력적인 직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적어도 나한테는 행운이긴 했지만, 극악의 근로환경 때문인지 버텨내는 이가 많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기에 누구에게 쉽게 권할 수는 없다는 건 참 아쉬운 점이다. 소위 말하는 인서울 4년제 출신의 영어를 기본으로 하는 고급 인력(?)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조차 똑같은 의문과 고민을 가지던 시절, 적어도 내가 같이 모시고 일했던 대부분의 상사들은 이 일을 사랑했다.
I국제회의 기획자는 무슨 일을 할까
농담처럼 이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만큼 근로환경이 좋지는 않았지만, 기획한 일을 마치고 나서 느끼는 성취감과 짜릿함은 내가 경험했던 그 어떤 일보다도 강렬했다. 늘 항상 뒤에서 일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회의 기간 동안 국익을 창출해 냈을 때, 기획한 대로 일이 순조롭게 잘 흘러갈 때, 참가자들이 기획한 의도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즐거워하고 행복해할 때, 참가자들에게 한국의 매력을 한껏 어필해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을 때, 일하면서 소중한 인연도 많이 만나게 되었을 때, 또 돌발상황을 잘 해결해 냈을 때 느껴지는 희열은 엄청났다.
국제회의 기획자가 하는 일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국제회의 유치 단계부터 실제 기획, 운영, 마무리 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유치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정부 또는 기관관계자들과 해외홍보부스를 돌며 유치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때 이미 기본적인 큰 토대의 운영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치에 성공하면 실제 행사 운영 계획을 시작하고, 회의 일정이 다가올 때까지 끊임없는 조율과 변경의 단계를 거치며 치열하게 준비를 한다. 회의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최종 마무리와 정산까지 또 지난한 과정들이 있다. 참가자 입장에서는 단 며칠간의 행사이지만 그 며칠을 위해 몇 년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이며 준비를 해온 결과이기에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뿌듯하고 뜻깊은 과정이기도 하다.
회사와 주최기관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개 대규모 국제회의의 경우, 회의운영, 초청, 홍보, 전시, 부대행사, 숙박, 수송 등의 각 파트별 담당자들이 지정이 되고, 행사 규모에 따라 참여하는 PCO 인원만도 꽤 많은 경우도 있다. 거기에 참여하는 VIP레벨에 따라 준비하는 절차도 천차만별로 수준이 달라진다.
I 국제회의 기획자의 특별함
최근,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기도 하고, MICE산업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현장 상황이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 한다. 무대 뒤에서 노력하는 직업이라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국제회의 기획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특별함은 요즘처럼 국제정세가 빠르게 변화하고,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대에 더욱더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본다.
전면에 나서서 이끌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 뒤에서 단단히 서포트를 해줄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다. 국제회의 기획자는 그야말로 국제교류협력관계의 장을 열어주는 든든한 지지자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자랑스러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에게는 생소한 이 직업이, 그 특별함으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하나의 전문직으로 자리 잡는 그날이 올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