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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ecialA Aug 12. 2023

03 가슴이 뛰는 일을 만난다는 것

에피소드 1 - 그래, 난 이 일을 해야겠다

요즘 지방에서 열린 모 국제행사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업계 종사자로서 하루하루 진행상황과 보도되는 내용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과 씁쓸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마음으로나마 잘 마무리가 되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이 행사 상황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 일을 제대로 시작하게 됐던 한 행사가 기억났다. 강원도에서 열렸던 국제행사였고, 난 그때 대행사 인턴으로 참여했다. 약 2달여를 그곳에서 숙식을 하며, 거의 하루에 4-5시간의 쪽잠을 자며 일했던 강렬한 경험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는 유학을 갔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던 때였는데, 이전에 잠시 인턴을 했던 회사 대표님이 연락이 와서 잠깐 보자고 하셨다. 유선상으로 대충 이런 행사가 있는데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는 얘기는 들었지만 회사에 가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점점 나는 이 일에 빠져들어버렸다. 냉큼 일을 하겠다고 수락을 해버리고, 결국 이 행사 인턴을 하고 나서 나는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I 서로 모르는 이들끼리 짧은 기간 함께 '잘'지낸다는 것


내가 주로 맡은 일은 진행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약 300명 내외 규모의 진행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을 정해진 일정대로 전국 각지에서 강원도까지 오고 가는 것을 체크하고, 와서 지내는 동안 매일매일 근태를 체크하는 일이었다. 대개 1주일에서 3주 정도까지 근무하는데 개인별로 일정이 달라 그 스케줄대로 잘 진행이 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 외로 그들의 숙소를 배정하고, 숙소생활에 어려움을 파악하는 일이 대부분 내가 하는 일이었다.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사람을 대하고 관리를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무모한 도전이었다.


2달 동안 정말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많았는데, 재미있었던 것도 힘든 것도 있었다. 강원도 산골이라 물자가 풍부하지 못한 중에서도 최대한 좋은 요건을 맞춰주려고 애썼지만, 숙소나 식사 등에 대한 불평불만은 피할 길이 없었고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계속됐다. 그 와중에 주로 힘들었던  꼽아보자면 근무기간 동안은 '엄마'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 모르는 이들끼리 짧은 기간 함께 '잘'지내게 해줘야 한다는 이 가장 어려웠다. 게다가 마침 그즈음 열렸던 다른 국제행사에서 운영요원 측과의 이슈가 발생해서 우리 행사 조직위에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주의를 기울이던 때였다.


어떤 날은 한 진행요원 분이 영 표정이 좋지 않아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배정된 방에 먼저 묵고 있던 이들이 텃세를 부린다는 거였다. 방에 가보니 1인 1 침구로 배정되어 있었는데, 한 사람이 이불을 독차지하고 몇 겹을 깔고 자고 있는 것이었다. 휴지나 생필품을 배정해 준 것을 어느 방에서 독점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그런 부분들은 대화나 추가 물품을 주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되었는데 정말 일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의 범주에는 들지도 못한 일들이었다.


또 한 번은, 그때 당시 내가 어렸기 때문에 진행요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가 있어 우습게 보고 함부로 하려는 이들도 있었는데, 예를 들면 내 옷차림이나 얼굴을 평가한다거나 자기보다 영어를 못한다고 무시한다던가 하는 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렇게 잘하지도 않았다, 아무렴 국제행사 사무국에서 일하는데 외국어를 못할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도 왜 그랬는지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들도 철이 없었기 때문일 테다. 다행히 윗선에서 어느 정도 정리를 해주시긴 했지만, 내가 나름대로 해결방법으로 택한 건 이름을 외우는 거였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사무국에 와서 그날그날의 식사 쿠폰을 받고 근무일지에 사인을 해야 했는데 그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OO 씨,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식사는 하셨나요? 많이 춥죠? 지내시는데 불편한 것은 없나요?’ 하고 한 마디씩 건네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이, 자기 이름이 불리는 순간 자기가 누군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인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것 같았다. 점차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고 나중엔 먼저 인사하면서 들어오는 분도 있었다.


하루는 새벽에 겨우 잠자리에 들었는데 핸드폰이 막 울려서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았다. 산속이라 전화가 띄엄띄엄 들렸는데 우리 진행요원이었고,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것 같았다. 그때가 새벽 1-2시쯤이었을까, 일단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숙소방번호를 확인하고 옷을 대충 걸치고 막 달려갔는데 5명 정도 진행요원이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었다. 숙소가 낡고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버린 거였다. 급하게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고, 같이 일하시던 선임들이 달려와주셔서 어찌어찌 그들을 구출해내기도 했다. 정말 하루하루 조용한 날이 없었다.






I 체력적으로는 한계였지만, 심적으로 충만했다


그 와중에 사실 제일 힘들었던 건 잠과의 싸움이었다. 살며 그렇게까지 쪽잠을 자본 적이 별로 없었다. 화장실에 가서 몰래 10분 정도 숨어서 자기도 하고, ‘잠깐 뒤돌아서 눈 좀 붙일게 망 좀 봐줘’ 하고 동료와 돌아가며 잠을 청하기도 했다. 눈은 항상 충혈되어 있었고, 실핏줄이 터진 게 다반사였다.


체력적으로는 정말 한계가 왔는데 이상하게도 심적으로는 굉장히 충만했다. 인턴으로서 했던 경험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지만, 뭔가에 홀린 것처럼 같이 일하는 선배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고, 나도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들의 모습에 내 미래 모습이 투영되어 멋진 미래가 그려져 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그때 정신을 차렸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거기에 진행요원, 자원봉사자 분들의 따뜻한 한마디를 받을 때마다 굉장히 뿌듯했다. 이곳에서 편하게 잘 지내고 간다, 좋은 경험을 하고 간다고 할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쾌감이 솟구쳤다. 언젠가 근무일정을 끝내고 돌아가던 아주머니 자원봉사자분은 나에게 지내는 동안 챙겨주어서 너무 감사했다며 편지를 주고 가시기도 했다. 그때의 그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그 편지는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내가 진행요원을 많이 했어서 그런지, 이때의 경험 때문에 마음이 더 쓰이기도 해서일지 모르지만, 지금도 일할 때 진행요원들을 많이 챙기려고 노력한다. 이 사람 중 누군가는 나중에 나처럼 이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I 그래, 난 이 일을 해야겠다’


이때 당시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았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하고 싶은 공부도 많던 시기였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는데 욕심이 많아서인지 너무 어려운 때였다. 어느 날 숙소 근처 호수를 걸으며, 그래, 난 이 일을 해야겠다’라는 결심이 섰다. 왠지 모르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길을 가면 왠지 행복할 것 같았고 스스로가 멋있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이 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왜 그런 고단한 일을 하는지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돌이켜보아도 이 일만큼 내 가슴을 뛰게했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MICE 산업 종사자들의 국제적인 경쟁력이나 실력에 대해 설전이 있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너무도 멋진 실력 있는 선배들과 일했었고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다. 그래서 나도 멋진 선배가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 방법적인 측면에서 끊임없는 갈림길마다 방황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멋진 일을, 할 수 있는 한 계속하고 싶다.


아마 지금 열리고 있는 그 행사에도 여러 가지 내부적인 상황과 현장 상황 간의 괴리, 어려움, 불평과 불만이 많았을 거다.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현장 스태프들 하나하나 고충이 있었을 테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는 발이 불이 나게 뛰어다니기도 했을 거다. 현장 상황이라는 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탁탁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늘 존재한다. 그걸 알고 있기에 지금 땀 흘리고 있는 인원들이 좀 더 힘을 내주기를 바란다. 물론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기도 하므로, 그런 노력들이 하나둘 결실을 맺어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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