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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Jun 30. 2024

웃어도 될까(feat. 봄꽃향)

요즘 봄꽃복숭아가 많은 사랑을 받아서 종종 피식피식 웃곤 한다. 보내주시는 따뜻한 피드백들 중 특히 아이들이 맛있게도 복숭아를 먹는 영상은 몇 번이나 돌려보고 또 돌려보는지 모른다. 이 더운 날 구슬땀을 흘리며 일할 남편에게 필히 이 행복영상들을 바로바로 전송하곤 한다. 더 이상 까매질 수도 없을 것 같은 햇볕에 제대로 그을린 피부색 덕분에 유독 하애 보이는 앞니를 환히 드러내며 웃고 있겠지. 

그렇게 잠시나마 숨 고를 시간을 선물한다. 




바쁜 수확철이라 지난주 친정아빠에게 다녀오지 못했다. 9년째 투병생활을 해오고 있는 아빠가 요양병원에 들어간 지도 어느덧 2년째다. 매주 간식을 챙겨 아빠에게 다녀오는데 한주 빼먹은 그 루틴이 내내 내 맘을 짓누른다. 특히나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내 맘을 몽글몽글하게 해주는 복숭아 피드백을 보고 피식거리다가 순간 또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점점 걷지 못하고, 말도 못 하고, 숟가락 젓가락질도 안 되는 모든 게 다 하루하루 안 좋아지는 아빠의 시간을 붙잡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 치료법이 있다면 내 몸의 어느 부분이라도 나눠 낫게 해주고 싶다. 그 생각만 벌써 9년째다. 그렇게 슬픔이 불안이 내 안에 켜켜이 촘촘히도 쌓여가고 있다. 





사실 정확히 내 안의 슬픔과 불안이 쌓이기 시작한 순간을 짚어내 보자면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가는 게 맞겠다. 아직도 두 살 어린 동생을 데리고 책상 밑에, 창고에 숨어있던 그 작은 가슴이 콩닥콩닥하던 날들이 슬프게도 생생하다. 이럴 때는 기억력이라도 안 좋으면 좋으련만 뭐 하나 잊히는 게 없다. 만취된 아빠가 엄마랑 싸울 때는 무서워서 근처에 사시던 외할아버지께 전화를 하곤 했다. 

그때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손이 얼마나 떨렸는지 그 또한 생생하다. 외할아버지가 오시고 할아버지가 타고 온 자전거가 대문 앞에 놓여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른다. 외할아버지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아빠와는 달리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 대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자전거처럼 나를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사람. 그래서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가실 때(염을 할 때) 겁 많은 내가 할아버지 이마를 가만히 짚으며 마음속으로 빌었었다. 할아버지 잘 가, 고마웠어요, 애썼어요. 





아빠는 엄청 성실한 가장이었지만 삶의 고단함을 늘 술로 달랬고, 남은 가족들은 늘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왔다. 내 결혼을 며칠 안 남겨둔 그 어느 날에도 그랬다. 만취가 된 아빠가 퇴근하는 소리에 나는 자는 척을 했다. 어릴 때도 성인이 돼서도 술에 취한 아빠는 달갑지 않았다. 퇴근했는데 딸자식이 나와 보지도 않는다며 아빠는 내 방문 앞에서 꼬부라진 혀로 소리쳤다. “술 안 먹는 남자 만나서 얼마나 잘 사는지 내가 볼 거야.” 


다행히도 외할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난 나는 여전히 따숩게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술’로 내게 늘 공포와 불안을 주던 아빠는 이제 ‘병’으로 내게 그것들을 이어가고 있다. 

처음 아빠 병이 발병했을 때 서울의 유명한 병원들부터 우리 사는 곳 병원 이곳저곳 안 다녀본 곳이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서울 병원에서 진단받으면 그걸 받아들이지만 아빠는 아니었다. 서울의 병원 중 세 번째 병원을 갔을 때인가, 진료를 받고 나온 아빠가 “나 어떡하냐, 나을 수 있겠지?” 계속 나를 붙잡고 묻고 또 물었다. 괜찮을 거라며 잘 치료하면 될 거라며 그렇게 아빠를 다독이던 딸은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아빠는 아직도 

모르겠지.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늘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고. 나도 아빠 엄마한테 힘들고 어려운데 

어떡해야 하냐며 묻고, 또 묻고 싶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냐고 소리치고 싶었다는 걸.




남편은 늘 나를 불쌍히 여기는 구석이 있다. 바로 나의 아킬레스건 ‘친정’.

자기였으면 진즉 본인 하고 싶은 대로 살았을 거라며 지금이라도 친정부모님에게 부모역할 그만하고 그냥 자식으로 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가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는지 알기에 앞에서는 알았다고 하지만 아직도 한주 놓친 면회에 이리도 마음 쓰고 있는 나다. 

이런 나를 보면 너의 인생을 살라고 하지 않았냐며 야단치실 스승님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봄꽃복숭아’ 내가 지었지만 이름 참 괜찮은 듯싶다. 

내게 봄꽃처럼 다가와 설렘과 웃음을 주는 사람들 덕분에 이제는 웃으면 봄꽃향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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