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해들이 들어옵니다.

by 김다라


출근을 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왔습니다.

창문을 열고 교실 환기를 합니다.

바람이 좋습니다.

마주한 운동장은 조용합니다.

커피포트에 물을 담습니다.

커피잔에 커피스틱을 뜯어 부었습니다.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작은 소리가 도도도 점차 커집니다.

딸깍 하고 물이 다 끓었습니다.

커피잔에 물을 부었습니다.

투명한 물에 점차 색이 올라옵니다.

복도 끝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1번 아이의 목소리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노랫소리가 점차 커지는 걸 보니 오늘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교실문으로 들어선 1번 아이는 저를 보고 인사의 의미로 더 크게 노래를 부르는데 허공에 기타를 치는 흉내를 내는 것이 보여 “오늘 기분이 좋구나?”라고 하자 그제야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인사를 합니다.


1번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가방을 내려놓는데 2번 아이도 들어오면서 퉁명스러운 인사를 하길래 무슨 일인가 물어보았습니다. 아마도 2번 아이가 아침에 잠투정을 심하게 해서 엄마한테 한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 있냐느니, 내가 정말 속상해서 못살아, 하면서 혼났을 때 들었던 말을 따라 하는데도 1번 아이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이 모습을 보며 2번 아이가 자기 기분 안 좋으니까 노래를 그만 부르라고 빽 소리를 지르는데, 저는 친구에게 예쁜 말만 하자고 타이르지만 선생님네 엄마도 아침마다 괴롭히냐며 반문을 하고 제가 대답을 고르고 있던 찰나 3번 아이가 들어옵니다.


항상 밝은 3번 아이는 저에게 손을 번쩍 들며 하이! 하고 인사하며 1번 아이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데 2번 아이는 더 심통이 나서 가방을 신경질적으로 열고 노랫소리보다 큰 소리로 짜증을 내고 1번 아이와 3번 아이는 그 소리보다 더 크게 노래를 불러 저의 귀에는 이명이 들리기 시작해 “다들 조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1, 2, 3번 아이가 있는 힘껏 소리를 내는 교실로 4번 아이가 들어옵니다. 사춘기가 온 4번 아이는 나름대로 멋진 표정과 액션을 하며 들어왔는데, 먼저 도착한 1번, 2번, 3번 아이는 자기에게 관심도 없고 선생님은 조용히 시키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으니 속이 상했나 봅니다. 4번 아이는 굳이 선생님 앞으로 와서 창밖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지만 선생님은 이미 입력한계 초과에 달해 응~ 왔니? 한마디밖에 하지 않습니다. 4번 아이는 이번엔 “아, 겁나 우울해.”라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혼잣말을 하고 이를 눈치챈 2번 아이가 다가와 “너도 오늘 엄마가 뭐라 했어?” 라며 심통 난 표정을 짓는데 1번, 3번 아이는 이번에 음악시간에 배우는 노래로 바꿔 부르고 2번, 4번 아이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고 저는 그 모습이 웃겼습니다. 그리고 그때 5번 아이가 등장합니다.

입에 교정기를 한 5번 아이는 매우 소심한 아이어서 가볍게 목례만 하더니 주섬주섬 치간칫솔을 꺼내 양치를 하기 시작합니다. 손기술이 여물지 않아 이 사이에 껴있던 음식찌꺼기들이 사방으로 튀지만, 아직 공용 시설을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체득되지 않아 괘념치 않습니다. 저는 5번 아이에게 주변을 잘 정리하면서 양치하라고 알려주려 했지만 이미 잔뜩 흥분한 1, 2, 3, 4번 아이의 목소리에 묻혀 전달이 되지 않았고 5번 아이는 양치를 마치고 교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2번 아이가 5번 아이를 부르더니 양치한 흔적을 치우고 가야 한다 말하고 그 말에 기분이 상한 5번 아이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 보고 1번, 3번 아이는 노래를 부르고, 4번 아이는 제 표정을 흉내 내려 하고 2번 아이는 자신의 주장에 동의해 달라며 눈짓을 하고…


그때 조회시간을 알리는 종이 칩니다.

“얘들아~ 일단 각자 반에 가서 조회하고 내려오너라~.”

아이들은 그제야 가방을 챙겨 각자 반으로 갔습니다.

교실은 조용해졌습니다.

귀에 왱왱 소리가 돕니다.

10분 만에 폭풍이 지나갔습니다.

식은 커피 위로 뭔가 떠다닙니다.

출근한 지 고작 30분 지났습니다.

저는 커피를 다시 타려고 물을 끓이려다 멈췄습니다.

오늘 1교시 아이들이 모두 함께 하는 수업이 거든요. 5분 뒤 조회가 끝나면 다시 그 폭풍이 교실을 찾아올 테니까요.

“아이고 내 팔자야…”

저는 혼자 웃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