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동안 학생들을 만나면 ‘성장’이라는 단어를 체감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장소에 있는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면 더욱이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수연이는 자폐가 있는 아이였어요. 똥글똥글한 인형 같은 아이는 늘 물고기와 관련한 말만 했죠.
“수연아, 오늘 운동장에 나갈까?”
“음… 난 커서 물고기랑 결혼하고 싶어.”
“수연아, 마트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죠?”
“물고기는 하늘을 날지요.”
수연이를 만나는 선생님들은 생뚱맞은 수연이의 말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무표정이 귀여워 어쩔 줄 몰라했지만, 담임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어울리는 말들을 알려주느라 항상 애쓰셨죠.
한 번은 옷과 얼굴에 온통 빨간 물감이 묻은 수연이가 땀에 푹 젖은 선생님 손을 잡고 지나가고 있어서 무슨 일이냐 물었어요.
선생님은 물감들을 준비해서 촉감을 활용한 미술수업을 하는 중이었는데, 수연이가 빤히 빨간 물감을 보더니 순식간에 들고 마시려고 했나 봐요. 교실에서 한바탕 난리가 나고 선생님은 급하게 수습하고 아이를 씻기러 가는 길이었어요.
수연이는 자기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물고기랑 딸~기를 먹을 거야.”
담임선생님과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빵 터졌어요. 아, 수연이가 물고기와 함께 딸기가 먹고 싶었구나. 그래서 빨간 물감을 맛보고 싶었구나.
얼마뒤 저는 근처 일반학교로 전근을 갔어요. 그 후로 10년 가까이 지났을까요?
신입생 명단을 보는데, 어라? 익숙한 이름. 물고기를 좋아하고 아무것이나 입에 넣던 수연이 이름이 있는 겁니다. 워낙 인상 깊은 아이라 오며 가며 보기만 했어도 기억에 확실히 남았는데, 이젠 제가 가르치는 학생이 된다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수연이가 입학하기 몇 주 전부터, 물고기를 활용한 수업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입에 넣고 삼키는 버릇이 있으니 어지간한 물품들은 안전한 것들로 다 바꾸고, 교실 소독을 위한 도구들도 구비를 했죠. 입학하기 전에 아이에 대한 경험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제 교실로 온 수연이는 물고기를 찾지 않았어요. 자폐아 특성상 제한된 주의집중과 반향어(같은 말 반복)가 자주 나타나는데 고등학생이 된 수연이는 다른 자료나 질문에도 답을 잘하고 의사소통도 어릴 때에 비하면 더나위 없이 확장되어 있었습니다. 깨끗한 것들로 싹 바꾼 학용품은 수연이의 입에 들어가지 않고 공부를 하는데(?) 사용했고요. 저는 뭔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섭섭한 기분도 들었답니다.
수연이의 어머님과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 수연이를 기억하는데 지금은 많이 컸네요~,라고 하니 그동안 많은 사람들과 가족이 해온 노력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아이의 반향어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대체할 수 있는 말을 끊임없이 알려 주고, 학교와 가정은 같은 규칙을 만들어 가면서 일관적으로 수연이를 대했죠. 특히 학교에서 물감을 마시는 일도 더러 있었지만 선생님들은 최대한 건조하게 반응하면서 행동 소거를 위한 노력을 엄청 하셨더군요.
그래서 큰 마음을 먹고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켰고, 다행히도 수연이는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자폐로 인한 특유의 행동은 쉽고 빠르게 수정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그런 행동을 컨트롤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해요. 아마도 그간 학교와 가정은 꾸준히 노력을 해오셨을 테고, 덕분에 저는 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10년 전과 후를 댕강 잘라서 본 저는 아이의 성장이 놀라웠습니다. 성장할 수 있는 작은 아이의 가능성이 부러웠습니다. 내가 내 일을 사랑할 이유를 알려준 계기가, 나의 노력보다 10년간 애써온 많은 사람의 애씀임에 감사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성장은 선생님을 성장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