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기

by 김다라





이 글을 쓰는 지금을 기준으로 교직, 교권, 인권에 대한 사건과 기사들이 많이 쏟아집니다. 특수교사에 대한 전에 없던 관심들도 생깁니다. 슬픈 마음, 섭섭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 두려운 마음이 생겨 뉴스도 못 보는 지경에 왔어요.

유명한 장애학생 부모님의 녹음기 사용이 화두가 된 일도 있었죠. 모르겠어요, 저는 그 일에 대해 첨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분의 인터뷰에서 숨을 턱 막았던 한 문장이 몇 날 며칠이고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보호자, 수호자, 대변자가 되는 버튼이 있습니다. 특히 특수교사는 이 버튼들이 상당히 예민하게 작동해요. 장애학생을 담당하게 되면, 이런 버튼 몇 개가 동시에 따다닥 하고 켜집니다.

자녀는커녕 조카도 한번 가져보지 않았던 젊은 선생님이 엄마, 아빠가 되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외로운 변호사가 되기도 합니다. 아이의 건강에 어려움이 있으면 간호사가 되기도 하고, 사건이 생기면 경찰이 되어 뛰어다닙니다.

그 이유를 아이에 대한 사랑, 관심이라는 단어로 치환하기엔 단어교환이 뚜렷하게 성립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관심에 둔감한 사람도 선생님이 되는 순간 버튼이 작동하거든요.

제 생각에는, 아이를 만나는 순간 하나의 문장이 자동으로 전제되기 때문인 듯합니다. 바로 ‘나는 이 아이의 보호자다.’라는 문장이죠.

보호자는 단순히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상의 함의를 가집니다. 그래서 왁자지껄 복잡복잡한 시간이 흐르고 탈진해 퇴근하더라도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나의 일이 갖는 의미를 확인합니다.


녹음기 사용에 대해 장애아의 부모님인 유명인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녹음기 사용 같은 기본적인 방법도 허용이 되지 않으면 의사표현이 어려운 장애인, 노약자 들은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느냐.”

이 문장으로 아이의 보호자에 속해 있던 특수교사는 순식간에 보호하는 사람의 자격이 박탈되고 말았습니다. 아이의 엄마 아빠는, 교사와 함께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려 합니다. 부모, 변호사, 간호사, 경찰 역할을 하면 이상해져 버렸습니다.


위험하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라는 말이 교사들 사이에서 들립니다. 동시에 지도하기 어려운 학생을 어떻게든 키워내기 위해 함께 애썼던 수많은 선생님들이 머릿속에 스칩니다.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저 같은 특수교사는 힘을 합쳐야 할 다른 선생님들이 위험을 느껴 위축될까 걱정합니다. 특수교사는 마법사가 아니어서 학교 구성원 모두의 역할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영향력 있는 한 두 사건이 미칠 파장이 벌써 두렵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곧 밀어닥칠 쓰나미 경보가 울린 기분이었어요.


제 카톡 사진은 지체장애가 있던 학생이 몇 해 전 스승의 날에 비뚤배뚤한 손으로 그려준 제 얼굴 그림이었습니다. 펜을 잡기도 어려운 아이가 색연필까지 써 가면서, 저녁에 집에서 그려왔다며 저에게 선물한 그림입니다. 그날 집에서 그 그림을 보며 내 일의 가치를 확인했었습니다.

카카오톡 프로필로 저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가 교사임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제가 아이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로부터 지켜야 할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간신히 지탱한 무엇이 산산이 부서져버릴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모두 지웠습니다.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 머릿속에 돋아나는 생각들을 외면하려 고군분투했습니다. 생각은 외면해도 감정은 아파서 몸이 저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졸업한 지 한참 지난 학생의 어머님이 몇 년 만에 카톡을 보내주셨습니다.


“선생님, 잘 계시죠? 요즘도 선생님과 함께 했던 날이 생각이 납니다.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선생님도 헤쳐오셨을 거라 짐작합니다. 이기적인 장애아이 엄마 입장에서, 선생님이 이런 상황 때문에 아이들에게 해주려고 했던 것들을 멈추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 배우고 있고 앞으로 만나게 될 아이들이 있을 텐데. 그 아이들도 우리 아들이 느꼈던 행복한 시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저는 답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카톡으로부터 느낀 감정이 감사함이 아니라 슬픔이어서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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