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교사살이 2
우리 학교는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정원 7명의 특수학급이 각각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공식 명칭은 통합교육지원실이다. 올해 처음 발령받아 왔을 때, 중등 통합교육지원실은 전일제 학생 1명, 시간제 학생 2명, 완전통합학생 4명이 재학 중이었다. Integrated Education Support Center라는 멋들어진 명판이 교실 문 위에 달려 있었다.
아이들을 만나던 첫날 아침 교실에서 바퀴벌레 두 마리가 나타났다. 난생처음 보는 동남아 바퀴의 몸집과 속도의 위세에 눌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인사를 채 나누기도 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마구 소리 지르고, 저마다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한 남학생이 용감하게도 현란한 발놀림을 놀리며 바퀴를 밟았다.(세게 밟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충격적인 서프라이즈 신고식이었다. 점잖고 차분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첫인사를 나누고 싶었건만...
컴퓨터와 프린터는 고장 나 있는 바람에 첫 주에 제대로 일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학교 환경을 차근히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이곳은 중고등학교 소속이지만 중고등 건물은 아니고, 초등학교 건물에 있으나 초등학교 소속은 아니다. 교실이 중고등학교가 있는 신관이 아닌 초등학교 구관 1층에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중고등 수업이나 행사에 참여하러 교실이나 강당에 가려면 광장을 가로질러 100미터쯤 걸어야 했다. 점심시간에도 식당에 가지 않고 교실에서 배식 카트를 받아 식사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또래를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 교실마다 쌓여있던 특수교육 교과서는 한 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장 수업은 어떡하지. 무인도에 상륙한 로빈슨 크루소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특수교사가 초중등 각각 1명뿐이라 강사를 채용하지 않고는 주당 36 시수를 감당할 수 없었다. 교육부의 연간 특수교육 교부금으로 초등과 중등 특수학급 운영비, 특수교육실무원 2명과 강사 인건비, 체험학습비를 모두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예산이 팍팍했지만 먼저 가용 자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도 나는 그나마 가까운 곳에 육지가 있는, 운 좋은 로빈슨 크루소였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 부서가 있는 신관 교무실까지 광장을 건너 계단을 올라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꼭 필요한 물품과 기자재를 갖출 때까지 바리바리 싸왔던 교구로 버틸 수 있어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환경이 구색을 갖추어 갔다. 주변 선생님들이 열악한 교육 환경에 공감해 주고 예산을 찾아주거나 덜어주면서 도와주었다.
학기 초 중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퀴즈와 강의를 곁들인 장애이해 교육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호응해 주긴 했지만 일회성 이벤트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의미 있는 통합교육을 하려면 계기가 필요했다. 학교 주체는 학생이고, 통합교육 주역은 또래 친구다. 친구는 자주 만나고 교류할수록 좋다. 우리 교실은 외딴섬처럼 동떨어진 곳이지만, 달리 보면 정문에서 가깝고 모두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길목에 있었다. 아무래도 통합교육지원실 개방이 좋을 터였다. 학생과 교직원이 꾸준히,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다면 돌멩이를 던진 못의 파문처럼 새로운 학교 문화의 확산이 일어날지 모른다. 누구나 자원해서 드나들게 하려면 뭘 하면 좋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학교 카페였다. 한국은 특수교육대상 학생을 위한 직업교육과 통합교육의 장으로서 바리스타 교육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고, 나도 근무하던 학교에서 직업교육과정으로 학교 카페를 운영한 경험이 있었다.
띵동
때마침 메신저로 한 쪽지가 날아왔다.